하박국 3장 1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0월 2일
하박국 3장
-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와 홈런왕 행크 에런(Hank Aaron)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 내용은 두 선수의 명언집이나 야구 역사 속 유명한 일화(에피소드)들을 다루는 책, 스포츠 뉴스 기사, 야구 커뮤니티 등에서 자주 소개되었습니다.
1957년 또는 1958년 월드 시리즈 경기 당시, 뉴욕 양키스의 포수였던 요기 베라는 타석에 들어선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타자 행크 에런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말을 건넸습니다. “행크, 배트 상표(로고)가 네 눈에 보이게 돌려 잡아야지. 안 그러면 배트가 부러질 수 있어.”
당시 야구에서는 배트의 제조사 상표가 타자 자신을 바라보게 쥐어야 나무 결에 맞지 않아 배트가 덜 부러진다는 상식이 있었습니다. 행크 에런은 흑인이고 글을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행크 에런은 날아오는 공에만 온전히 집중한 채 홈런을 쳐냈고, 베이스를 돌며 요기 베라에게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글 읽으러 올라온 게 아니야. 공 치러 올라온 거지.” (“Yogi, I came up here to hit, not to read.”)
우리 동생 홍정기 동생이 있습니다. 천안에서 제법 사업을 크게하고 있습니다. 동생은 하나님께서 돈 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부의 지적인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물질을 버는 힘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매력이 떨어질 때에 정이 떨어지고 정이 떨어지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우리 행복이의 매력은 연약하고 귀여움입니다. 우리 축복이의 매력인 저돌적이고 통통함있습니다. 만지고 싶은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 사모는 선생님으로 매력이 있고 투자에도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자신의 일에 충실합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교회의 장로님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전도사님이셨습니다. 매력이 떨어지니 함께 살지 못하였습니다.
잠언 22장 29절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능숙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자기 일에 묵묵히 집중하는 사람은 결국 왕과 같은 귀한 지도자들 앞에서도 인정받게 된다는 지혜의 말씀.
구한말(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 땅에 기독교(야소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일어났던 감동적인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교 사상과 제사 제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불효자, 반인륜적인 집단이라며 대놓고 핍박과 미움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전염병(콜레라, 천연두 등)이라는 가장 무서운 재앙 앞에서 어떻게 세상과 전혀 다른 거룩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온 동네에 무서운 전염병(콜레라)이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죽어 나갔고, 숨진 시체에서 병이 퍼질까 두려워 가족조차도 시체를 내다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누구도 가기 싫어하고, 누구도 만지기 싫어하는 죽음과 절망과 공포가 가득한 장례식 현장이었습니다.
“송장을 메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 바로 그 공포의 한복판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는 전염병 환자의 송장(시체)을 거두어 정성껏 장례를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입에는 하늘의 소망을 담은 찬송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가장 무서운 현장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무리, 성도(聖徒)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그토록 손가락질하고 미워했던‘야소교(예수)를 믿는 사람들’임이 밝혀졌습니다.
창세기 34장 30절~31절 (야곱과 아들들의 갈등) 아버지와 아들들의 격렬한 논쟁입니다.
30절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은 아들들의 잔인한 행동으로 악취가 난다고 하였습ㄴ디ㅏ. 가나안 부족의 보복이 두려운 것입니다.
31절에 아들들이 반박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옳습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가 가문의 명예와 동생의 억울함보다 현실적인 안전만을 계산하는 것에 실망하며, 보복이 정당했다고 당당하게 반박한 장면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싸움이 중심이 아니라 다툼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고 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1)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잠언 20장 22절: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저주의 악순환이 야곱의 자녀들의 가정에 임하였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독자적인 영토를 얻지 못하고 유다지파 영토 안에서 흩어져서 살게 되었고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전국 48개 성읍에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바벨론이라는 잔인한 나라를 들어 유다 백성을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경 하박국서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박국의 대화 내용:
하박국의 첫 번째 탄식 (1:2~4) “어째서 유다 백성의 죄악과 강포를 방치하십니까?”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악인이 선인을 괴롭히는데 왜 침묵하십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 (1:5~11): “잔인하고 사나운 바벨론(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심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바로잡기 위해 당시 더 포악한 제국인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 대화 (하박국 1장 12절 ~ 2장)
하박국의 두 번째 탄식 (1:12 ~ 2:1): “어찌하여 더 악한 바벨론을 잠잠히 보십니까?” 유다보다 훨씬 악한 국가 바벨론 왜 가만 두십니까?
하박국은 파수하는 처소에 올라가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2:2~20)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벨론은 당장 보기에는 승리하는 것 같지만 멀리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째 대화 (하박국 3장): 자신의 좁은 시야를 회개합니다. 눈앞에 환난과 궁핍이 닥쳐올지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3:17~18)으로 성경의 기록을 마무리합니다.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 양식 (식물성 양식의 부재) 열매가 없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라
2) 음료 (마실 것과 기름의 부재) 소출이 없음: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3) 육축 (가축과 주식의 부재) 사업이 잘 되지 않아도, 먹을 것과 가축이 없음: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 유다의 가장 선한 왕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실뢰하고 유다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종교개혁을 한 선한 군주입니다.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책을 바탕으로 우상을 타파하고 유월절을 지킨 왕입니다. 강대국 애굽의 느고 왕과 므깃도 전투에서 전하였습니다. (둘째 아들 (여호야김): 즉위 당시 25세, 셋째 아들 (여호아하스): 즉위 당시 23세, 넷째 아들 (시드기야): 형들이 왕위에 오를 때 약 10)
요시야의 셋째 아들 여호아하스 왕은 비운의 3개월 통치자입니다. 요시아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죽은 후에 왕에 올랐습니다. 애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투쟁하였지만 느고의 분노로 3개월만에 강제 폐위되었습니다. 애굽으로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 왕입니다. 하박국 시대의 왕입니다. 애굽을 입김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백성을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사치로 폭정을 행하였습니다. 강대국(애굽, 바벨론)의 눈치를 보며 나라의 은과 금을 무리하게 쥐어짜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탈하고 압제하는” 사회적 부조리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야김의 악정을 왜 하나님이 가만두고 계십니까? 하면서 질문하였습니다.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로 시작합니다. (1절)
‘시기오놋’ 격정적이고 빠른 리듬을 가진 열정적인 음악입니다. 보혈찬송가와 같은 것입니다.
탄식이 변하여 기쁨의 열정적인 찬송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환경과 상관없이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는 절대적인 신앙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되고, 내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하나님께 무릎 꿇는 일을 소홀히 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높으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5장 8~9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누가복음 10장 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파송받았던 70인의 제자들이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흥분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라고 보고했습니다. 눈앞에서 귀신들이 떠나가고 능력이 나타나니 너무나 신이 났던 것입니다.
주의 종들에게 얼마나 간절히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못받아서 그렇지 모든 주의 종들이 받기를 원하는 사실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나 세상의 성공은 영원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역이 잘될 때는 기쁘고, 안 될 때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선물이기에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하박국 3:17-18)
무언가를 ‘행하는 능력(Doing)’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존재의 신분(Being)’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도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로 된 것이기에, 우리는 겸손히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제자들이 귀신이 떠나가는 현장에서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도 삶에서 기도가 응답되거나 큰 성과를 거둘 때 기뻐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지금 네 능력이 나타나는 것에 기뻐하고 있느냐, 아니면 네 이름이 내 생명책에 기록된 것에 기뻐하고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