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2장 9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0월 10일

 

 

개역개정 다니엘 12장

  1.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2.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3.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4.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5.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1. 序

다니엘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1) 스스로 정결하게하며 희게하라고 합니다. 마지막 때가 심히 가까우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성경이 무뎌지고 더러움에 익숙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깨끗하게 살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깨끗하게 살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깨끗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2) 10절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연단하는 이유는 불순물을 빼기 위함입니다. 금을 연단하는 것은 순금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세마포와 두루마를 빠는 행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세마포를 ‘입는 것’과 그 세마포가 ‘성도들의 옳은 행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3장 5절”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사탄, 마귀는 매일 드리는 제사 (상번제)를 드리지 못하게합니다. 매일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사람들은 음녀와 짐승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다니엘 시대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성전을 허물고 돼지 피를 뿌리게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 (개역개정)”말세를 당할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 1,260일 (3년 반 / 한 때 두 때 반 때):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극심하게 박해하는 ‘대환난’의 중심 기간입니다.
  • 1,290일 (1,260일 + 30일): 적그리스도의 권세가 꺾이고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해진 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가해지는 정화와 마감의 기간입니다.
  • 1,335일 (1,290일 + 45일 / 1,260일 + 75일): 박해와 심판의 폭풍이 완전히 지나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전히 세워지는 복된 시점입니다. 즉, 1,260일의 환난이 끝난 후 약 75일간의 영적 정리와 회복 기간을 거쳐 마침내 도달하는 영광의 날입니다

 

 

  1.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할 일
  2.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나 종종 시간을 내서 영화관에 가곤합니다. 영화를 보는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영화를 보게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무서운 영화 공포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영화를 말해 줄 때가 있습니다.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인생의 삶도 마치 영화와 같은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고 성공하고 이기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꼭 패망합니다. 주인공을 꼭 살아남습니다. 주인공을 향하여 늘 악한 세력은 뒤통수를 칩니다.

 

인생도 마찮가지입니다. 인생의 삶속에서 나의 삶속에서 원수마귀는 꼭 뒤통수를 칩니다. 사람들의 손길을 통하여 뒤통수를 치게 됩니다.

뒤통수를 치게 될 때에 언제 뒤통수를 때릴 지 알수 없습니다.

 

인생에도 뒤통수를 때릴 것을 대비하여 우리는 보험을 들어놓고, 통장에 많은 돈을 축척하고,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하고 자녀들에게 물질을 물려주고 그렇게 뒤통수를 맞을 준비를 하지만 가장 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사망입니다.

 

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저는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서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우면 밖에 잠깐 나가있습니다. 인생의 무서운 사건이 오면 우리가 설계해 놓지 않는 일들을이 닥처오면 우리는 우리는 그것을 정면을 맞이합니다. 마치 우리 평강의 결혼식날과 우리 장모님 장례 날짜가 한 날 한 시에 닥처오면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처나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가는 것입니다. 기차 안에서, 장례식장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적 사망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입니다. 저는 88살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만큼만 살아도 좋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 ‘절망(Despair)’입니다. 는,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 즉 영혼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며 스스로 절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제한 채, 스스로의 힘으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절망’이라는 영적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3년에 깊은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다니엘은 민족의 미래에 대한 큰 전쟁의 환상을 보고 세 이레(21일) 동안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응답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고, 마침내 12장에서 인류 역사의 종말과 부활의 약속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우리가 해야할 일은 환난기간에 두루마리를 빠는 행위를 해야합니다. 회개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합니다. 1,335일까지 인내하는 자는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각자의 복된 ‘몫’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죽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자어로 죽을 사, 망할 망입니다. 사망입니다. 죽고 망하는 것은 옥황상제까지 가는데 노자돈이 필요하고 칼티고개 불티고개가는 동안 고통을 당하고 굶주림을 당하여 입에 쌀을 집어 넣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천국환송예배를 드립니다. 몇칠후 몇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고백한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역설과 부활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 죽음은 절망이나 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III. 마지막을 기다리라

13절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1) 번역본

다니엘 12장 13절은 성경의 여러 번역본에 따라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다니엘 12:13 번역본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라” 네 업을 네 몫으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새번역 “너, 다니엘아, 너는 끝까지 신실하여라. 너는 죽겠지만, 끝 날에는 네가 일어나서, 네게 돌아올 보상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신실하라 왜 신실하게 살아야합니까?

구약성경중에 네가 일어나서 부활하여 영원한 보상 있다는 말씀을 말하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신실하라는 이유는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때문에 신실해야합니다. 5달란트, 2달란트 처럼 끝까지 신실해야합니다.

 

끝까지 신실해야하는 이유는 정확한 날짜를 계산하기 보다는 더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의 신실합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성실함으로 기다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끝까지 신실함을 유지하라는 이유는

예정론자들,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 영지주의자들은 나의 운명과 팔자는 주어졌다고 하여 무의도식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생애를 살아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신실함을 유지하는 자들은 부활을 기다리고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은 오늘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꼭 결말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결말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요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집나가면 개고생이나, 왜 내가 어러한 고생을 사서하는냐 하면서 불평하면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ㅅ브니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지 하면서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허무주의와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여행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연 경관을 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전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확신과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 성막 텐트에서 살고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출애굽하는 시간부터 가나안 땅에 도착할 때까지 신실한 하나님임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실함 이 단어는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계약에 대한 신뢰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쌀 10가마니를 산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지금 10가마니가 없지만 내일 10가마니를 갔다 놓을 때니 내일 와서 10가마니를 사겠다고 계약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계약했만 그것을 신뢰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약이고 신뢰입니다.

 

우리 아들이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집을 사는데 계약금을 걸고, 중도금을 내고 마지막 잔금을 치룰 때에 그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뢰하면 충성하는 것입니다. 신뢰하면 끝까지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배신하지 않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내가 여렵든지 힘들든지 언제나 그 말씀을 믿고 실뢰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김경애 집사님의 아들들이 양권사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항상 어머니를 잘 돌보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절대로 요양원에 보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더 건강하고 튼튼했는데 많은 요양원 노인들로 인하여 한 사람만 관심을 둘수 없기 때문에 방치할 수 있고 신경써서 먹을 것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항상 신뢰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에 그 친구는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나를 떠나도 신용이와 이창호는 함께 하여서 결혼축가금을 보냅니다. 고등학교 친구가 그렇게 많아도 딱 2사람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내가 실수하여도, 내가 넘어져도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여도 신실한 하나님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처럼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우리 평강이 친구들, 수빈이 다빈이 평강, 선민이 수민이 충의 충환이, 아름이 이슬이 슬기 대범이등 많은 아이들이 우리 교회 유년 주일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이들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에 일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을 실패하였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망했다고 하면서 이 생애는 망한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살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았습니다. 20살도 안되는데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생애의 삶을 남았는데 시험 한번 못봤다고 인생이 망합니까? 고등학교 못들어갔다고 망합니까? 우리 동생 정기 동생을 보세요입니다.

 

우리 어머니의 집을 정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모든 짐들을 버리고 완전히 청소하는데 약 300만원정도 든다고 합니다. 그곳은 우리 아내와 우리 평강이가 살던곳입니다. 평강이 엄마 식구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곳에 정취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곳은 나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나의 영원한 집은 천국입니다. 나의 영원한 고향은 바로 요한 계시록의 천국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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