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2장 20절 마라나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10월 23일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22장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추워지면서 우리는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준비해야 할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 성가대 칸타타, 성도들의 선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정말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사도행전 1장 11절에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언제든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흔히 ‘마라나타’라고 하는데, 아람어에서 유래한 단어인 마라나타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의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라는 말입니다.
I.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의 신앙)
–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대명사로 꼽히는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평화로울 때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국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나라의 안위를 위해 상비군 10만을 기르자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참혹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옛날에 부자 농사꾼이 미련한 머슴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부자 주인은 머슴이 하도 미련한 짓을 해서,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미련한 지팡이’라고 새겨서 머슴에게 주면서, “이 지팡이를 너보다 더 미련한 놈을 만나면 주어라.”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병들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머슴은 주인에게, “이제 얼마 후면 이 세상을 떠나는데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십니까?” 라고 물으니, 주인은 “이 미련한 놈이 주인이 죽어가는 자리에서까지도 미련을 떠느냐? 이놈아, 내가 또다시 올 수 있는 길이라면 왜 슬퍼하겠느냐?” 고 탄식했습니다. 그러자 머슴은, “그럼 영원한 길을 가실 준비는 다하셨습니까?” “이놈아, 내가 죽는 마당에 준비는 무슨 준비냐?” “주인님, 몇 날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준비를 하는데, 주인님은 영원한 길을 떠나면서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그런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지팡이는 제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히브리어 두 단어인 ‘마트(Muth, 죽음)’와 ‘샬라흐(Shalach, 보내다/던지다)’가 합쳐진 단어로, “그가 죽을 때 그것(심판)을 보내리라” 또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을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이 아이가 죽을 때 세상에 대홍수 심판이 내릴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에녹은 이 경고를 기억하고 세상에 전하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장 21~22절)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유다서 1장 14~15절)
고대 사회에서 ‘창을 던지는 자’는 마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그 파수꾼이 죽거나 무너지면 마을 전체가 멸망(심판)하는 것을 뜻하므로, 므두셀라의 생명이 곧 그 시대의 안전장치임을 의미했습니다. 므두셀라가 969세로 죽던 해에 정확히 ‘노아의 대홍수’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이름에 담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천 년을 하루같이 하나님은 오래오래 참고 계시는 분입니다.
목사님 2000년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데 오신다고 설교만 하세요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오래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고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III.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의 신앙)
–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Dodd는 교회가 기다림의 공동체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사는 공동체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 (개역개정)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더니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누가복음 17장 26~27절 (개역개정)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으며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영적인 일이나 다가올 심판에는 완전히 무관심한 채, 오직 육체적인 즐거움과 세상의 일상에만 빠져 살다가 갑작스럽게 심판을 맞이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즉,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영적으로 깨어 있음을 강조하시는 비유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말씀하신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은 동일한 상황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과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경의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광야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권을 기다리고, APT 입주를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III.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의 신앙)
개역개정 요한계시록 22장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세계에서 이젠 완전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눈물이 없고 아픈 것이 없고 고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장모님 중환자실에서 15일 동안 아프셨습니다. 그것이 행복입니까?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때에 행복이 있습니다. 여행을 오래 하면 할수록 피곤하고 힘듭니다. 집에서 쉬는 것이 행복입니다.
• 이사야 11장 6-9절 / 65장 25절: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약육강식의 법칙과 소외가 지배하는 세상과 달리, 천국은 가장 강한 자와 가장 연약한 자가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대동(大同)의 세계입니다.
• 갈라디아서 3장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요한계시록 7장 16-17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광야 같은 세상에서 겪었던 생존을 위한 가난과 배고픔, 갈증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돌보심 안에서 완벽하게 채워짐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하여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잘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러시아, 중국, 북한이 포기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도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