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14절 오로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6월 14일

 

사도행전 1장 14절

  1.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2장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6장 4절

  1.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저는 이번 부흥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오로지입니다.

 

오로지라는 의미는 다른 것 없이 오직 한 방향이나 길로라는 뜻을 가진 부사입니다. 표준한국어대사전에 오직 한 곬으로라는 의미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그것 하나에만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성철목사님의 목회의 길을 읽어보았습니다. 당시 80명의 교회에서 현제 교인 900명의 교회로 성장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주일학교 아이들이 매일 아침 교회에서 모여서 큐티하고 식사하고 학교로 간다.
  2.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 자체적으로 저녁 기도회를 교회에서 한다.
  3. 매일 방과 후에 교회에 모여서 독서 클럽을 한다.
  4. 대다수의 아이들과 학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5. 아이들 중에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매일 새벽 예배 참석한다.
  6. 매일 새벽 예배가 다른 교회 특새와 같은 느낌이다.
  7. 부흥회에 아이들도 함께 참여한다. 아무도 떠들지 않는다.
  8. 주의 종으로 헌신한 주일학교 아이들이 40명이 넘는다.
  9. 교회 안에 입양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
  10. 교회 건축을 교인들이 노가대 직접 뛰면서 하였다.

 

목사님의 생활 방식입니다.

  1. 매일 새벽 3시간 이상 씩 기도한다.
  2. 휴가 없이 매일 사역한다. (사모님과 가족이 모두 함께)
  3. 가정에 어떠한 미디어도 없다.
  4. 자녀들은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웠다.
  5. 자녀들은 자기 부모를 최고로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한다.
  6. 첫째가 자폐아인데, 교회 찬양팀 싱어로 서고 있다.
  7. 사례비 많이 안 받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8. 말씀과 기도에 있어서 최고의 진심이다.
  9. 인격자다.
  10. 아이들 3명 다 키웠는데, 아기 2명을 다시 입양을 한다.

 

 

우리 사모가 요즘 학교를 출근합니다. 우리 사모가 학교 가기 전에 새벽기도회를 합니다. 새벽기도회 피곤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졸면서 새벽기도회를 참석합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에 가지 않는 길이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명시입니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좁은 길, 영적인 길, 예수님을 믿는 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살아가는 길, 주의 종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1. 가지 않는 길 속에 통찰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요한복음 16장까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오로지 성령충만함에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이 바로 기도하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0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120명으로 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을 보시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관심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통일이 언제 됩니까?와 같은 물음입니다. 예수님은 동문서답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리하면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오늘 성경 본문에서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6절 후에 그들은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자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의 아우들 야고보와 유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을 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나 주의 종들은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시세를 아는 힘이 필요합니다. 잇사갈 지파는 시세를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마땅히 해할 일들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통찰력에 대한 예화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로마의 사령관의 함정에 빠진 유대 청년이 놀라운 지혜로 목숨을 건지는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와 청년의 통찰력으로 기막힌 해결책입니다.

 

한적한 골목에서 로마 군인 한 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로마 사령관은 범인을 찾으려 모든 힘을 집중했으나 끝내 찾지 못합니다. 사령관은 유대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대낮에 길을 가던 무고한 유대 청년 한 명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비열한 제안을 합니다.

 

“이 항아리 안에는 ‘사형’과 ‘석방(사형 면제)’이 적힌 두 개의 제비가 들어있다. 네가 살인자가 아니라면 ‘석방’을 뽑을 것이니, 네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하나를 뽑아라.”

 

사령관은 항아리 안에 두 개 모두 ‘사형’이라고 적힌 제비만 넣어두었습니다. 청년이 무엇을 뽑든 무조건 사형을 시키려는 악랄한 속셈이었습니다. 유대 청년은 사령관의 속임수를 알고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막힌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청년은 항아리에 손을 넣어 제비 하나를 뽑자마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제비를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사령관과 군인들은 청년의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하며 “무슨 짓이냐! 네가 뽑은 제비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어떻게 확인하란 말이냐?”라며 화를 냈습니다. 청년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뽑은 제비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항아리 안에 남아있는 나머지 제비를 확인해 보십시오. 만약 남은 제비에 ‘사형’이 적혀 있다면 제가 삼킨 제비는 ‘석방’일 것이고, 남은 제비에 ‘석방’이 적혀 있다면 제가 삼킨 것은 ‘사형’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그 통찰력이 있습니다.

 

1) 잠언 9장 10절 (개역개정)”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통찰력)이니라”

 

2) 잠언 16장 16절 (개역개정)”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통찰력)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3) 잠언 8장 14절 (현대인의 성경)”나에게는 조언할 말과 건전한 지식이 있으며 통찰력과 능력도 있다.”

 

 

통찰력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통찰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도의 집에 심방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집을 내어 보이기가 목사님에게 힘듭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여유도 없고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그 성도가 기도할 때에 생각나게 하시고 그리고 심방하고 말씀을 주도록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습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부흥회입니다. 마음속에 자꾸 생각나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일년에 두번씩 대심방을 하게하셨는데 점점 대심방과 구역예배를 없에냐고 책망하시면서 최소한 일년에 두번씩 부흥회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성도들의 신앙이 떨어지고 낙후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저에게 주시는 통찰력인 것입니다.

저절로 세상이 이루워지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저절로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통찰력을 주시고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두번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얻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1.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합니다.

사도행전 2장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장 42절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적인 감각이 있었습니다. 균형감각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4가지 감각은

 

1) 말씀 중심 (사도의 가르침)

 

주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합니다.

 

2)서로 교제하게 합니다. 고립을 방지하고 혼자 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게 합니다.

 

3) 떡을 떼며 함께 먹고 함께 생활합니다.

일상 가운데 함께 성화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식사하게 하고, 오후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4)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영을 깨우는 것입니다. 신비주의 경계하고 은사만 좇지 않고 말씀과 기도가 병행하는 균형감각이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성막을 지을 때에 지성소의 가장 핵심적인 외형적 특징은 말씀하신 대로 가로, 세로, 높이의 길이가 모두 똑같은 정육면체(정방형) 구조라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성막과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는 크기만 다를 뿐 이 완벽한 대칭 구조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1. 모세 지성소 크기

출애굽기 기록에 따른 성막 지성소의 크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로: 10 규빗 (약 4.5m), 세로: 10 규빗 (약 4.5m), 높이: 10 규빗 (약 4.5m)특징: 이동식 텐트 구조였으며,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0 규빗인 완벽한 정육면체 공간이었습니다.

 

  1.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크기

열왕기상 6장 20절에 기록된 솔로몬 성전 지성소의 크기는 성막보다 정확히 2배씩 커졌습니다. 가로: 20 규빗 (약 9m), 세로: 20 규빗 (약 9m), 높이: 20 규빗 (약 9m)입니다. 고정된 돌과 백향목 건물로 지어졌으며, 부피(체적)로 계산하면 성막 지성소보다 8배 더 커진 정육면체 공간입니다.

 

  1.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와 구조 (요한계시록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2,000 스타디온은 오늘날 거리로 환산하면 약 2,200km에 달합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약 2,200km인 거대한 정육면체(정방형)입니다.

 

(구원의 역사)의 흐름에 따라 크기와 대상이 엄청나게 확장되었습니다.

 

모세 성막 지성소: 가로·세로·높이 10 규빗 (약 4.5m)

솔로몬 성전 지성소: 가로·세로·높이 20 규빗 (약 9m)

새 예루살렘 성: 가로·세로·높이 12,000 스타디온 (약 2,200km) 온 열방과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수용하는 우주적 임재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균형이 필요합니다.

교회내에서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습니다. 이곳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수가 잘못하면 보수를 치시기고, 진보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진보도 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은 균형이 잡힌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있는지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살아야할지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사무엘상 6장에 등장하는 벧세메스로 향하는 두 암소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완벽한 영적 균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성경적 모범입니다.

 

벧세메스 암소의 걸음이 보여주는 영적 균형의 특징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본질 중심 (사무엘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젖나는 소가 갓 낳은 새끼를 뒤로하고 앞만 보고 걷는 것은 동물적 본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본능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앞세울 때 가능해집니다.

 

 

  1. 성도(주의 종)은 오로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해야합니다.

사도행전 6장 4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모세를 대적하는 고라의 무리에 대한 말씀이 민수기 16장에 나타납니다. 고라의 자손들이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 왜 스스로 높이느냐하고 대모가 일어날 때에 민수기 16장 4절에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모세는 충분히 자신의 권위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성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사업과 장막의 문제가 하나님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왜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들이 많이 있는데 이상한 여자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선택하였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죄인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밧세바의 몸에서 첫 아이가 죽었습니다. 죄의 댓가입니다. 다윗의 회개를 통하여 솔로몬 여디디야(사랑을 입은 자)가 출생하였습니다.

 

서열상으로 한참 어린 솔로몬입니다. 그위에 형들이 있습니다.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 같은 쟁쟁한 형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가장 어린 솔로몬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천번제를 드리게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개역개정 고린도전서 1장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가장 부끄러운 배경을 가진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왕권이 인간의 힘이나 권리(혈통)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으로 이루어짐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폴란드의 국민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작품 코바디스입니다.

 

시엔키에비치가 고대 로마 네로 황제 시절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쓴 역사 소설 《쿠오 바디스》입니다. 1895년부터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1905년 노벨 문학상: 《쿠오 바디스》의 엄청난 세계적 성공에 힘입어, 시엔키에비치는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 주연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둔 영화 《쿠오 바디스》의 개봉 연도입니다.

 

네로 황제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성도들은 “당신만은 살아남아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베드로에게 피신을 간청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로마의 아피아 가도를 통해 안전지대로 탈출합니다.

 

새벽녘 언덕을 내려가던 베드로는 눈부신 빛 속에서 로마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마주합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묻습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니, 내가 로마로 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베드로는 통곡하며 발길을 돌려 다시 로마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주님과 똑같이 똑바로 못 박힐 자격도 없다며,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복음을 위해 순교합니다.

 

오로지 한 길가게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때로 목회에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은 한 길 오로지 그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넓은 길 안전한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좁은 길 사명의 길로 가길 원합니다. 눈앞에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고통의 길속에 부활의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새벽기도의 길 금요철야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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