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54절  성령충만한 얼굴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사도행전 7장

  1.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2.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3.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20세 마지막 히브리 사상가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입니다. 이분의 대표적인 책 예언자들입니다.

 

라디오 프로에 출연한 헤셀은 당신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한 권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의 대답이 예언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입니다. 자신의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가장 강조한 내용은 학문은 조용한 서재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시끄러운 장터에서 완성된다는 지리를 그의 책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다시 말하면 영적인 능력은 조용한 새벽기도회 시작되지만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그는 장터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닉슨 후보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다가 외롭게 숨졌습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깊이 돕고 함께 사회 운동을 이끈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20세기 개신교와 유대교 간 종교를 초월한 가장 아름다운 우정으로 꼽힙니다.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현장(광장)’으로 나와 행동한 지식인을 뜻하는 은유입니다.

 

몽고메리 행진에서 헤셀은 킹 목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맨 앞줄에서 걸었습니다. “내 다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행진을 마친 후 헤셀 박사는 “흑인들과 함께 걸을 때, 나는 내 다리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헤셀은 자신의 어머니와 세 누이가 나치의 학살로 잃었습니다.

 

짐승처럼 다른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설교해야 합니다. 주중에는 세상과 똑같이 사나운 맹수처럼 남을 착취하고 경쟁하면서, 주일에는 경건하게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잘못된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1. 예언자 스데반 집사 얼굴과 성령충만

사도행전 7장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으로 충만하면 세상의 말들이 나오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 615

 

마태복음 15장 18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4절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우리나라의 말에 얼굴은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얼은 정신 영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굴은 구멍으로 눈, 코, 입, 귀와 같은 구멍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얼이 빠지면 얼간이가 된다’는 말과도 잘 연결됩니다.

 

신영복 교수의 저서 등에서는 영혼의 모양이라는 뜻의 ‘얼의 꼴(얼꼴)’이 변해 얼굴이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모와 평강이) ‘여러 요소가 얽혀 이루어진 전체적인 몸의 형체’라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서 그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우리의 입에 무엇이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건강합니다. 좋은 음식이 들어오면 우리가 건강하고 상한 음식이 들어오면 몸이 아픔니다. 우리의 얼굴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기도 하고 우리의 영혼이 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싸우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십시요. 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험집을 내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당이 죽어야 내가 살고, 다른 당이 망해야 내 당이 사는 것입니다. 당에 속하여 있는 지도자가 죽어야 우리 당이 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을 꼭 먹는 술로만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유튜브, 세상의 물질(돈), 세상의 스포츠, 세상의 영화 드라마등으로 체워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45절과 누가복음 11장 24~26절.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더 악한 귀신들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울 때에 악한 귀신이 물러가고 성령으로 채울 때에 평안함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45절 (개역개정)”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령충만함은 내가 주인이 되어 성령님을 이끌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성령에게 이끌리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광야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품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물이 가득한 컵이 흔들리면 물이 쏟아지듯이 고난과 환난으로 흔들릴 때에 내 안에서는 성령이 흘러 넘처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원망, 불평, 두려움, 미움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전도서 8장 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사람은 외모로 그 됨됨이를 알고 사려 깊은 사람은 얼굴을 대하면 알게 된다. 사람은 옷차림과 큰 웃음과 걸음걸이로 그 인품을 드러낸다.”(집회서 19장 29-30절 / 가톨릭 성경)

 

 

창세기 33장 10절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러 올까 봐 깊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얍복강가에서 밤새 천사와 씨름한 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라며 그곳 이름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 불렀습니다.

 

 

얼굴은 유전적 조합을 따지면 무한대에 가까운 개별성을 가집니다. 또한 사람은 평생 성장하고 늙어가며 뼈, 지방, 피부의 변화로 인해 수없이 많은 변화됩니다. 무한대에 가까운 개별성을 가집니다. 81억 지구 인구 중 완전히 똑같은 얼굴 모양을 가질 확률은 1조 분의 1에 불과합니다. 즉, 사람의 수만큼 얼굴 모양이 존재합니다. (여권, 은행)

 

이 조그만한 얼굴에 그렇게 많은 얼굴의 형태가 있을 수 있고 나이에 따라서 유아기 얼굴, 청소년기 얼굴, 청년기 얼굴, 중장년기 얼굴, 노년기의 얼굴이 있습니다.

 

 

  1. 예언자들의 얼굴과 성령충만

예레미야 20장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1.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2.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그 시대에 말씀하시는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고 용서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듣지 않으면 심판하십니다. (김예기권사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의 마음이 얼마나 마음이 아풀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듣고 회개하여도 마음이 아픔니다. 마치 요나가 니느웨에 심판을 경고하였을 때에 그들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에 그들이 멸망받을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도 설교하면서 그러한 심령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예언자?입니다. 홍철기목사!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살지 않고 자신의 옳은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일날 주일 성수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과 십일조를 바르게 드려야하는데 그로지 못함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설교하게 되었을 때에 예레미야의 심장과 요나의 심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나를 권유하셨습니까? 히브리어로 파타흐입니다.

 

남자가 처녀를 꾀어 잠자리를 함께한다 (출22장 16절)

힘쎈 사람이 이웃을 꾀어서 나쁜 길로 유혹하다 (잠 16장 29절)

악한 영이 아합을 꾀어 전쟁중에 죽게 하다 (왕상 22장 20절 22절)

 

파타흐(פָּתָה, Pathah)는 ‘꾀어내다’, ‘유혹하다’, ‘설득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예레미야서 20장 7절 등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유혹하시므로)”라고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둘째 단어 하작입니다.

하작 (חָזַק, Chazaq) — “강하사”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유혹하셨으므로(파타) 내가 유혹을 당했고, 주께서 나를 강하게 압도하셔서(하작) 이기셨습니다.”

 

여자에게 혼외정사를 강요하는 것으로써 그녀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것 (삿 19장 25절, 삼하 13장 11절)

 

하나님이 자신을 부를 때에 억지로 강제적으로 억업하여 사역을 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막무가내로 강제적인 힘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피동적으로 끌려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1. 스데반의 말씀선포와 예레미야의 말씀 선포

예레미야 20장 9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 멸망에 대하여 신실하게 외쳤으나 돌아온 것은 성전 총감독 바스훌에게 당한 폭행, 착고(형틀)에 채이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종일토록 이어지는 조롱이었습니다(7-8절).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하자, 그는 사역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선지자 사직서’를 제출하려 합니다.

 

그러나 침묵하려는 순간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시작하여 하나님의 압독적 힘(하작)이 작동하여 주의 종의 뼈(골수)에 작동하여 생명의 말씀이 깊은 근원 속에 갇혀있지 않고 밖으로 터져 나오고, 요동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박해가 무서워서 말씀을 전하지 않고 품고 있는 고통 보다 하나님의 강한 힘이 나를 항복시킨다는 말씀입니다.

 

 

문장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10대 족장 이름을 히브리어 어원대로 해석하여 연결한 유명한 기독교적 메시지입니다.

 

각 이름의 의미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인간의 타락과 이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0명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음성은 무엇인가?

 

Adam (아담): 사람, 인간

(Man)Seth (셋): 임명되다 (Appointed)

Enosh (에노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연약한 존재

Kenan (게난): 슬픔, 애통 (Sorrow)

Mahalalel (마할랄렐): 찬양받으실 하나님 (The Blessed God)

Jared (야렛): 내려오시다 (Shall come down)

Enoch (에녹): 가르치다, 봉헌하다 (Teaching)

Methuselah (므두셀라): 그의 죽음이 가져올 것이다 (His death shall bring)

Lamech (라멕): 절망한 자, 낮아진 자 (The despairing)

Noah (노아): 안위, 안식, 위로 (Comfort, Rest)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슬픔에 지정되었으나, 복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사 가르치시며, 그분의 죽음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줄 것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