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6장 32절 회복을 위한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4월 17일 금요철야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1987년 부터 설교를 시작하여 40년동안 설교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설교를 그렇게 많이 하여도 성도들이 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기억되는 성도중에 한경애권사님이라는 분입니다. 대원아파트 사시다가 천안으로 내려가시 소망교회 다니셨던 권사님입니다. 우리 교회 다니셨지만 우리교회를 자신의 교회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받기 위하여 교회 오지만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혼적인 생각으로 가득차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10장 4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저는 성도들을 처다보면서 설교를 하지만 성도들도 저의 얼굴을 처다보고 설교를 듣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고, 눈은 핸드폰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변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여러번 질문을 하지만 하나님은 답변이 없습니다.

 

간혹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전 문을 나기는 순간 자신의 습관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믿음 좋은 성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을 아는 만큼 믿음으로 살아야하는데 성경적인 지식을 통하여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8:1)

내가 설교하고 있다고 내가 가르치고 있다고 내가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행하지 않으면 아는 것도 교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실천하는 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입니다.

 

  1. 실천하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코이노니아 (Koinonia): 교제입니다. Fellowship입니다. 단순히 아는 사이를 넘어선 깊은 교제, 사귐, 분담, 파트너십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돕는자 (파트너, Helper)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하여 오신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우리가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과 함께 하면 설교도 잘 되고 전도도 잘되고 선교도 잘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동역자(Partnership)입니다.

 

저는 성령님을 생각할 때에 늘 이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사모가 제가 인천으로 학교를 갈 때에 그분과 함께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부평역까지 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전철안에서 교제하고, 전철안에서 나를 도와주셔서 안전하게 하시고, 그리고 성령님과 동역하여 학교 생활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령님과 실시간 교제하는 것이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그리고 문자를 보내고 서로 실시간 교제하는 것입니다. 몸은 전철안에 있지만 서울과 인천을 교통(오고가고)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늘 성령님과 교제하는 것이빈다.

 

성령님을 이용하지 말고 성령님을 속이지 말고 성령님을 훼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행하라고 하는 명령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들을 복을 주시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 그를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생활속에 거짓말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엘리아셀, 이스마엘, 이삭을 낳는 순간에도 그러나 그가 이삭을 드리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12) 그 후로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하셨습니다.

  1. 에스겔 36장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한 후에 절망속에 있던 포로민들에게 회복의 말씀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2차 포로(B.C. 597년) 때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제 1차 포로시기에는 (B.C. 605년) 다니엘과 왕족들이 끌려갔습니다.

제 2차 포로시기에는 (B.C. 597년) 여호야긴 왕과 함께 제사장 가문들이 끌려갔습니다. 그 때에 에스겔과 만명의 기술자와 군인들이 끌려갔습니다.

제 3차 포로시기는 (B.C. 586년):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유다 왕국이 멸망한 시기입니다.

 

본문, 에스겔 36장은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함락된 3차 포로 이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렵히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무능해서 자기 백성을 못 지켰다”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의 상황은 그들의 뼈가 말랐고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극심한 심리적인 침체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36장에서 새 마음과 새 영을 그들에게 부워주시겠다고 약속하였고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황폐한 땅이 이제 다시 에덴동산처럼 비옥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속에 사는 사람들이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워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6:26-27).

 

이제 오늘 주제인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하시며 성도의 기도를 촉구하십니다.

 

 

  1.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시게 하시는 목적은

  1.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회복입니다.

에스겔 36장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1.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워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 36:28)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은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 요셉의 회복입니다.

애굽의 법률과 관슴에 의하면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겁탈 하려고 하였다면 당장 현행범으로 사형에 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멍석말이나 처형입니다. 하지만 보디발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보냈습니다. 왜 보디발은 그렇게 행하였는가? 아내의 평소 행실에서 아내가 성결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은 그 집안의 모든 일에 충성스럽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말이 거짓인 것 같아도, 가문의 체면(스캔들) 때문에 요셉을 처벌하는 흉내를 내야만 했던 ‘타협점’이 바로 감옥행이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뺏긴 옷(겉옷) 대신, 하나님은 훗날 애굽의 세마포 옷과 인장 반지를 요셉에게 입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몇년 뒤에 요셉을 총리로 삼았을 때에 보디발의 가정은 어떻했을까 성경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짐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언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세상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함으로 포로가 되고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주교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유럽에서 강대한 민족으로 복을 주셨고 예수님을 전세계에 증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유럽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동거하는 유대인들을 그렇게 핍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정을 가장 나쁜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유럽사람들은 돈을 만지는 사람들을 처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로 가장 많이 돈을 벌은 사람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Rothschild Family)

 

18세기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다섯 아들을 유럽의 주요 도시(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빈, 나폴리)에 보내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분자들

1) 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Oracle)의 창업자입니다. 세계 부호 순위 최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립니다.

2)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 메타(페이스북)의 창업자로, 현대 기술 권력과 부의 상징입니다.

3) 래리 페이지 & 세르게이 브린 (Larry Page & Sergey Brin): 구글(Google)의 공동 창업자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유대인 혈통입니다.

4)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금융 정보 서비스인 블룸버그 L.P.의 창업자이자 전 뉴욕시장입니다.

5) 조지 소로스 (George Soros):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며 금융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주의 종과 성도들을 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야할 일을 해야합니다. 주의 종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 (엘로힘, Elohim)과 여호와(Yahweh) 관계

 

  1. 하나님(엘로힘, Elohim): 능력의 창조주, 엘로힘은 ‘강하고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절대 주권자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세상을 만드실 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1. 여호와(Jehovah/Yahweh):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인간(백성)과 언약(약속)을 맺으시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찾아오셔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와가 되는 놀라운 일, “하나님(엘로힘)은 언약을 행하시는 여호와” 에스겔 36장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하신 것도, 창조주의 능력(엘로힘)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여호와)을 성취하겠다는 선포입니다.

 

 

  1. 우리가 해야할 일, 회개 해야합니다.

에스겔 36장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절대로 그것을 잊지 않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데 제가 실수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 마다 나의 잘못을 구하여도 계속 가끔씩 어려울 때 마다 우리 평강이 낳을 때 마다 이야기 합니다. 잊을 때도 되었는데 그런데 아들은 용납합니다. 모든 것을 품고 해결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고 두고 해산의 고통을 이야기 합니다. 이 때의 이야기를 하면 2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 때 가장 더웠습니다. 왜 필리핀 선교여행갔느냐입니다. 왜 교회에서 기도회 참석했느냐입니다. 함께 하지 않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할 때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1)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편 103:12)

2)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38:17)

3)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4)

4)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 7:19)

 

  • 베드로의 회개와 가룟유다의 회개의 차이점

마태복음 26장 75절

1) 지적 단계 (생각남): “예수의 말씀에… 생각이 나서”

2) 의지적 단계 (돌이킴): “밖에 나가서” 죄의 자리에 떠나서 부인했던 현장을 떠나는 결단입니다.

3) 감정적 단계 (통곡): “심히 통곡하니라”

 

그러나 가룟유다는 후회하였습니다. 다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라며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살하였습니다.

 

  1. 기도해야합니다.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지말라와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8개 개명은 하지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2개명은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말라는 명령은 1)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살인·간음·도둑질·거짓 증거·탐내지 말라.

 

하라는 명령은 적극적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복임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제4계명): 하나님과의 교제, 즉 예배와 기도에 힘쓰라는 명령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5계명): 인간관계의 기초이며,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는가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아 죄를 이기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이 그곳에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2절) 기도하는데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한 일,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기도하게 하시는 일, 선교와 구제 한 일, 엘림복지 타운과 세계 선교대회를 매년마다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앞에서 철저하게 한 모습을 성경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과 계속적인 음난의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사자 나단이 책망합니다. (인천에서 성대가대원 책망한 사건)

 

열왕기상 1장은 다윗의 마지막 시대를 보여줍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다하고 피가 식어 몸이 차가워지자, 신하들이 젊은 처녀 수넴 여인 아비삭을 데려와 그의 품에 들게 합니다. [1, 3]

 

성경은 다윗이 아비삭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다윗이 왕으로서의 육체적 정욕을 쫓는 단계가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리하는 경건한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에 회개를 하고 다시는 그길로 들어서지 않고 다른 길로 가야합니다. 다윗의 이런 태도가 있었기에 그의 가문에서 솔로몬이 태어나고 왕위가 이어지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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