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장 6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예레미야 18장 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1. 옹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고 있는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전통 음식의 깊은 맛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바로 ‘옹기’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내내 옹기 속에 담겨 있는 된장과 고추장은 세월을 견디며 진정한 맛을 찾아갑니다.

 

그 비결은 옹기가 살아 숨 쉬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외부의 좋은 공기를 받아들이고, 안의 불순물을 내보내며 장을 가장 맛있고 건강하게 익혀냅니다.

 

치대고 때리는 고난의 시간

이처럼 신비로운 옹기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옹기장이는 좋은 흙을 가져와 수없이 치대고 때립니다.흙 속의 공기를 빼내기 위해 밟습니다. 흙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내리칩니다. 불순물을 골라내며 모양을 잡습니다. 진흙의 입장에서는 온몸이 찢어지고 부서지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왜 나를 이토록 때리십니까?”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옹기장이가 흙을 때리는 이유는 단 하나, 깨지지 않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최고의 그릇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삶의 고난이 우리를 짓누르고 때리는 것처럼 아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불순물을 빼내고 부드러운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과정입니다.

 

 

  1. 옹기 속에 불

예레미야 18장 3~4절: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이사야 64장 8절: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1) 녹로 (물레):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 때 빙글빙글 돌리는 둥근 회전판(물레)을 뜻합니다.

 

2) 손에서 터지매 (망가지매):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는 과정에서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갈라지거나, 터져서 못쓰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망가지다’, ‘부패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마속으로 들어갑니다. 풀무불과 도가니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가니는 연단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성령의 불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잠언 17장 3절: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옹기를 가마에 집어넣는 과정”을 강조하고 싶으시다면, 성경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의 불(사도행전 2장)’ 사건과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시면 매우 은혜롭습니다. 교회의 시작도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손에서 멋지게 빚어진 질그릇도, 마지막에 뜨거운 가마의 불을 통과하지 않으면 물 한 방울 담지 못하고 풀려버리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동안 주님의 손에서 아름답게 빚어졌지만, 가마의 불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는 작은 충격에 깨어지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의 불’이 임하여 그들을 가마처럼 뜨겁게 구워내셨을 때, 그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단단하고 귀한 복음의 옹기가 되었습니다!”

 

무려 2000도가 넘는 맹렬한 불꽃 속에 온전히 던져져야 합니다. 그 뜨거운 불을 통과하고 견뎌낼 때, 비로소 평범한 진흙은 ‘살아 숨 쉬는 옹기’로 거듭납니다. 처음 하나님이 루허 생기를 인류에게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기는 없고 악한 영이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전에 그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평강이 있을찌어다, 생기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다 성령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호렙산에서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시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제단에 불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왕상 18장 24절)

 

마틴로이드 박사는 “개혁주의와 성령운동이 손잡을 때,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A.W 토저 목사님도 “성령 충만의 목적은 하나님께 온전히 몰두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영광 받도록 함이다.”라고 말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디 선생님은 평생 성령충만한 사역을 위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구멍 뚫린 그릇이다. 우리는 항상 성령의 샘가에 있어야 한다. 10년 전 주신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다시 성령 충만 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간구하면 충만히 받는다.” 무디 선생님은 성령충만함의 현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생전에 자주 사용하셨던 유명한 영어 표현은 “Let’s go, Holy Spirit!” (성령님, 같이 가십시다!)입니다. 이 고백에 담긴 신앙적 의미와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Let’s go, Holy Spirit!”의 의미는 인격적인 성령님과 동행을 의미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성령님을 어떤 거대한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닌, 인격적인 분으로 대했습니다. 문을 나서며 “성령님, 가십시다”라고 말한 것은 문자 그대로 성령님을 삶의 동반자로 인정한 행위입니다.

 

큰 집회, 브라질성회, 유럽성회, 아시야, 인도 성회에 전 하루 종일 호텔에서 기도하신 이유는 자신의 지식이나 언변을 내려놓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자신을 통하여 일하시도록 통로를 여는 과정이었습니다.

 

 

  1. 누가 옹기를 만들었고 사용 목적은 .

예레미야 18장 3~4절: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하여 성공하려고합니다. 돈을 버는 일, 사업을 시작하는 일, 공부하는 일, 권력을 잡는 일,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여 얻으려고 하는 인간들은 노력합니다.

 

일을 일루시는 하나님 그것을 성취하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야곱도 장자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 꿈꾸는 자였습니다. 그 꿈때문에 형들로 부터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

 

모세도 애굽 왕궁의 모든 보화와 권력을 포기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 이하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큰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골리앗을 만날 때 자신의 무기가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궁궐보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성막을 먼저 염려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절

아들로 부터 왕위가 박탈되어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시편 51편 11절

 

 

유대영박사님의 간증

 

“교회만 다니면 성령이 늘 내 마음에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우리가 왜 매일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장님의 등불 비유가 잘 설명해 줍니다.

장님의 등불이 꺼진 줄 모르는 이유는 영적인 둔감합니다.

장님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에 든 등불이 활활 타고 있는지 아니면 기름이 떨어져 꺼졌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형식만 남은 신앙: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을 맡고, 종교적인 형태(등불)는 쥐고 있지만, 내 안의 성령의 불꽃(기름)이 이미 꺼졌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고 나서야 압니다. 내 마음에 성령이 없으니 세상 유혹에 넘어지고, 사람들과 갈등하며 삶이 삐걱거립니다(부딪힘).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으면, 내 안에 불이 꺼진 줄도 모르고 “나는 등불(교회 직분)을 들고 가는데 왜 자꾸 불행하고 부딪힐까?”라며 남 탓을 하게 됩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유태영 박사님이 간증을 통해 주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성령의 내주(계심)’와 ‘성령의 충만’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기름은 매일 채워야 합니다: 자동차에 주유를 한 번 했다고 평생 가는 것이 아니듯, 성령 충만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기도가 쉬어지고 말씀과 멀어지면, 아프리카 장님처럼 등불이 꺼진 줄도 모르는 채 어둠 속을 헤매며 부딪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 마당만 밟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령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매일 기도의 기름을 공급하는 영적 관리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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