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5장 17-19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9월 4일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짧은 예배 시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들려져야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아말렉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출애굽 여정속에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공격을 했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약한 쪽을 공격하는 마귀와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여정속에서 만난 족속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천국에 들어가면 꼭 만나는 족속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하지 않았스면 발생하지 않았던 영적인 싸움의 대상입니다.
아말렉은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지쳐있을 때, 정면대결을 피하고 행렬 맨 뒤에 처진 약자, 병자, 노약자들을 비겁하게 기습했습니다.
신명기 25장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들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물질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생활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의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가장 취약한 ‘나만의 아말렉(약점)’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아파하고, 흔들리기 쉬운 그 틈새를 찾아 영리하게 치고 들어오는 것이 영적 영토에서의 공격합니다. 그렇게 큰 교회 목사님들이 성적으로 잘못하면 교회와 세상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지만 약점으로 인하여 무너지는 것입니다. 나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음녀가 수많은 왕들과 고관들의 머리위에 있는 것입니다.
- “지워버리라”와 “잊지 말라”의 모순된 표현의 본질행동적 지침 (지워버리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피곤할 때, 행렬의 맨 뒤에서 처진 약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하여 악행을 한 아말렉은 완전히 도말하라는 것입니다. 흔적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죄의 뿌리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위하여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잊지 말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만 영적으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평안하고 안식할 때에 인간적으로 이만하면 된다하고 방심할 때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오기 전에 순복음 인천교회에서 최성규목사님이 주의 종들은 한가하면 죄를 짖는다고 하면서 월요일은 월요축복예배, 화요일은 화요지도자 예배, 수요일은 수요 1부 2부예배, 목요일은 교구단합예배 및 심방, 금요일은 금요철야, 토요일은 결혼식 돌예배로 열심히 준비하였고, 새벽에는 101 성경통독을 통하여 새벽마다 나와서 성경을 통독한 기억이 있습니다.
평은교회 시절에는 교회가 성장할 때에 25명 30명 되었을 때에 동기목사님들에게 자랑하다가 다음 주일날 너무 적게 나와서 많은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가장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잘되고, 우리 삶에 평안하고, 교회가 부흥하면 기도해야 할 줄 알고 있으면서 게을러서 평안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잘될 때에도 기도하고 안될 때에도 기도해야합니다.
성미산 산보는 당장 다음 날 티가 나지 않지만,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 또래들과 ‘병원에 가지 않는 건강함’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과 관절은 쓰지 않으면 퇴화합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다진 하체의 힘이 건강한 노년을 선물한 것입니다.
철야와 새벽기도와 영적 근육은혜의 복리 효과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 역시 영적인 산보와 같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은 당장 내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칼 융의 ‘진짜 나(Self)’를 만나는 길은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이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에 갇혀 ‘진짜 나(Self)’를 만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간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산책과 기도가 주는 선물로 홀로 성미산을 걷는 시간, 그리고 새벽에 무릎 꿇는 시간은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그 꾸준한 축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허상이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 창세기 (Genesis)의 아말렉입니다.
창세기 36: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창세기 36:16 :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의 족장들이요…
야곱의 형인 에서의 손자로서 영적인 장자권을 경홀히 여긴 에서의 혈통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족보에서 뒤전으로 물러났습니다. 에서는 육을 쫓는 사람이고 야곱은 영을 쫓는 사람입니다.
1)‘지금 당장의 만족’ vs ‘영원한 약속’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배고픔, 물질적인 유익, 당장의 쾌락을 위해 영적인 축복을 아낌없이 버립니다. 에서가 팥죽을 보며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라고 말한 것이 육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비록 현실은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신령한 복을 갈망합니다. 영의 사람은 잠시 받는 고난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더 크게 봅니다.
창세기 36장에서 아말렉을 설명할 때 ‘족장’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번성하여 힘을 가졌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육의 번성’일 뿐입니다.
겉보기에는 야곱처럼 속이기도 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나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심으로, 세상 계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은혜와 구원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2)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대적함’ vs ‘두려워함(경외)’
로마서 8장 7절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경외합니다. 내 육신의 소욕을 성령의 법 아래 복종시키려고 날마다 영적인 싸움을 싸웁니다.
(이영훈목사님 간증 워싱턴순복음교회 간증)
특별히 저에게도 기도 매일 해야할 줄 아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고 성도가 부흥하면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성도들도 물질적으로 여러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물질적으로 문제가 풀리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목회 말년에 지방회 목사님 중에 목회의 원리를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난 뒤에 결심만 앞서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물소리와 같은 방언기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부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손끝에 무엇이 나가는가? 예수님의 손 끝에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의 손끝에 바로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손끝의 능력이 예수님의 이름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2천년 전의 사건이 오늘 우리 공교회에서 천주교회에서가 아니라 모든 교회 내에서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을 가장 비열하게 공격합니다. 사탄 마귀가 바로 그렇게 가장 비열하게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출애굽기 17장 8절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 것입니다.
- 기도의 손을 올릴 때에 아말렉이 물러갑니다.
출애굽기 17:16 :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내려가면 집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이 아파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의 승패 역시 기도입니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이 ‘아론과 훌’ 같은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양순옥권사님, 최해금권사님입니다. 모세도 결국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에 피곤하여 팔이 내려왔습니다. 이때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와 앉히고 양팔을 지탱해 준 것처럼,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의 동역자가 되어줄 때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는 승리의 기도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승리의 깃발을 쏟기를 원합니까? 여호와 닛시가 필요합니까? 기도하십시요. 주의 종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와 사무엘상하의 아말렉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공격하여 범죄하게 만드는 족속입니다.
사사기 6:3 :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사울왕이 폐위된 계기도 바로 아말렉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2~3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사무엘상 15:9 : “사울과 백성이 아각(아말렉 왕)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이 불순종으로 사울은 버림받습니다).
사무엘상 30:1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다윗이 사로잡힌 가족들을 다시 찾아옵니다).
사무엘하 1:13 :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사울 왕의 죽음을 전한 자 역시 아말렉 인이었습니다)
- 끝까지 괴롭히는 아말렉
에스더 3장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사무엘상 15장 8절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사로잡으며 칼날로 그의 온 백성을 진멸하니라”
아말렉의 왕 이름이 ‘아각’이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스더서의 ‘아각 사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라는 의미합니다.
모르드개의 계보는 (에스더 2장 5절):“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무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베냐민 지파 기스의 후손입니다. 과거 아말렉 왕 아각을 온전히 진멸하지 못해 책망받았던 사울 왕(기스의 아들)의 가문입니다.
- 신약 및 요한계시록 (Revelation)에서는 아말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계속적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기도를 방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요한계시록 20:10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순복음의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성령충만과 말씀 충만입니다.
시편 119편 히브리어 단어 ‘다바크(דָּבַק)’
고난 속에 있는 성도가 어떻게 말씀으로 살아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25절: 진토(먼지 바닥)에 달라붙은 영혼 (다베카, דָּבְקָה)
시인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붙다’가 바로 ‘다바크’입니다.극심한 고난, 낙심, 혹은 죄의 무게로 인해 영혼이 마치 죽은 자처럼 땅바닥 먼지 구덩이에 완전히 밀착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26절: 내 행위를 아뢰고 구하는 상황입니다.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먼지 바닥에 붙어버린 비참한 자신의 삶과 상황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쏟아놓는(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처절한 고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비추어지며 영적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31절: 말씀(주의 증거들)에 달라붙은 영혼 (다바크티, דָּבַקְתִּי)반전: 25절에서 땅바닥(진토)에 달라붙어 있던 시인의 영혼이,
31절에 이르면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달라붙었사오니)”로 바뀝니다.
‘다바크’이지만 달라붙는 대상이 ‘죽음의 흙’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바뀐 것입니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접착제처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상태입니다.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감 (아루츠, אָרוּץ)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로 선포합니다.먼지 바닥에 붙어 꼼짝도 못 하던(25절) 영혼이, 말씀에 단단히 붙었더니(31절), 이제는 묶였던 자리가 풀어져 하나님의 나라와 계명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32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