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장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5월 12일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44,000명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의 비교

  • 십사만 사천은

1) 인을 맞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2) 땅에서 증거하는 일

3) 정절을 지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로, 영적인 순결을 유지하는 자들입니다. (계 14:4)

4) 거짓이 없음: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로 증거됩니다. (계 14:5)

 

  •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

1) 구원의 선포: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외치며,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증거합니다. (계 7:10)

 

2) 종려 가지: 승리와 기쁨을 상징하는 종려 가지를 흔들며 죽음을 이긴 구원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레위기 23장 성경 말씀 40절: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3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광야 생활의 기념과 감사를 위하여 종려가지를 들고 찬양

초막절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텐트(초막)를 치고 살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한 절기입니다. 척박한 광야에서의 생존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2) 종려가지는 승리와 번성을 상징합니다.

초막을 짓고 축제를 즐기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기쁨을 표현하는 데 쓰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큰 무리’가 종려가지를 든 것은 사망과 환난을 이긴 최종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느낀 것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우리 평강이에게 음식을 사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꽃을 사지 못하여 꽃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보기 위함입니다. 음식과 꽃을 통하여 우리는 더 많은 것, 더 엄청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즐겨 드리는 예배가 어찌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입니다.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며 왜 찬양하는가?

 

1) 보좌에 앉으신 이

보좌에 앉으신 분은 누구인가? 온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입니다.

 

2) 어린 양

보좌 위 왕이신 하나님의 결정과 주권에 의하여 구원의 방법이 어린 양의 희생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입고 있는 흰 옷은 어린 양의 피로 희게 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희생이 없으면 우리의 구원도 없습니다.

 

  1. 환난에서의 구출에 대한 감사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시편 3:8)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

 

요한계시록은 7을 참 좋아합니다. 완전한 숫자이고 유럽 사람들이 이래서 ‘럭키 세븐’이라고 합니다.

 

1) 찬송(Blessing):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리는 입술의 고백입니다.

2) 영광(Glory): 하나님의 찬란한 광채와 나타나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3) 지혜(Wisdom):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완전한 지식을 뜻합니다.

4) 감사(Thanksgiving):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5) 존귀(Honor): 가장 높은 가치와 명예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6) 권능(Power): 만물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실질적인 지배력입니다.

7) 힘(Strength): 어떤 대적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능력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3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6년 5월 13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흰 옷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예루살렘의 겨울 날씨와 성경적 배경(마태복음 24:20)

 

1월 예루살렘의 기후 특징: 예루살렘은 해발 약 750~800m의 고지대 산악 지역입니다. 낮에는 온화할 수 있으나, 밤에는 평균 4도까지 떨어지며 체감 온도는 더 낮습니다.

우기(겨울): 이스라엘의 겨울(11월~3월)은 비가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0)

 

예수님께서 종말과 환난을 경고하시며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예루살렘의 실제적 고통을 반영합니다.

 

옷 한 벌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면 추위로 목숨을 잃기 쉽습니다. (대만 추위)

 

서양의 선교사님들은 왜 한국 사람들이 흰옷을 자주 입을까 생각했습니다.

백의민족과 흰 옷: 한국인이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 부르며 흰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제2의 선민으로 선택하시는 이유인 듯합니다.

 

순결과 승리: 환난의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낸 승리자의 복장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 31:40)

 

바디매오의 겉옷입니다. 그에게 전 재산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막 10:50)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갔다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밤이슬 방어막이자 전 재산을 포기했다는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1. 아간의 외투는 탐욕입니다. (수 7:21) 여리고 점령 당시 아간이 훔친 물건 중에는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급 외투는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기에 큰 유혹이 되었습니다.

 

  1. 엘리야의 겉옷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왕하 2:8)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말아 물을 치고 요단강을 갈랐습니다. 이 겉옷은 선지자의 직분과 하나님의 권능을 대행하는 도구였습니다.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벤 사건(사무엘상 24장)은 말씀하신 대로 단순한 천 조각을 자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분과 운명,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손을 댄 매우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근동의 겉옷 자락은 권위와 신분을 상징합니다. 사울의 옷자락은 자신의 왕권을 잘라 다윗에게 옮김을 의미합니다. 옷은 몸의 일부입니다. 옷을 자름은 사울의 몸을 자름을 의미합니다. 인격의 침해입니다. “마음에 찔려” 했습니다(삼상 24:5).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크라스페돈(Kraspedon)’, 히브리어로는 ‘찌찌뜨(Tzitzit)’라 불리는 ‘옷술’입니다. 유대인들은 겉옷 네 귀퉁이에 푸른 끈을 섞은 술을 달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민 15:38-39).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날개)을 비추리니”(말 4:2)

 

‘날개’는 히브리어로 ‘카나프(Kanaph)’인데, 이는 동시에 ‘옷자락’을 의미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그 예언된 메시아로 믿고 그 ‘치료하는 옷자락’을 붙잡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의 자색 옷과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옷이 희어진 사건은 세상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대조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용모가 변화되실 때,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졌습니다(마 17:2, 막 9:3).

 

마가복음 9장 3절에는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인간의 노력(세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신적인 거룩함을 뜻합니다.

평소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은 말씀하신 대로 흙먼지가 묻고 탁한 갈색빛을 띤 투박한 양털 옷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감춰져 있던 메시아의 영광이 밖으로 터져 나와 옷까지도 빛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는 특산물인 ‘검은 양모’로 만든 옷으로 큰 부를 쌓았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최고급 옷을 입었다고 자부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벌거벗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옷: 부유함과 명예를 상징하는 검은 양모 옷 (자기 의, 세상적 자랑). 주님이 권하시는 옷: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계 3:18).

 

예수님의 피로 산 ‘흰 옷’: 이 흰 옷은 라오디게아 시장에서 돈으로 사는 옷이 아닙니다. “내게서 사라”는 말씀은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믿음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피: 계시록의 일관된 증거처럼, 이 옷은 어린 양의 피로 씻어 희게 된 옷입니다. 내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대속을 의지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는 말씀의 완성입니다.

 

 

  1. 흰 옷 입은 자들은 누구인가?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고난을 피한 자들이 아니라, 세상의 박해와 유혹, 영적 전쟁이라는 ‘큰 환난’을 믿음으로 겪어내고 승리하며 나온 자들입니다.

 

2) 흰 옷 입은 자는 인내하는 자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앞(하늘나라)에 도착했음을 의미합니다.

 

1) 흰 옷의 세탁 요령: 어린 양의 피로서 깨끗하게 됩니다.

2) 세상의 고통과 박해(큰 환난)를 뚫고 나온 자

3)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위로를 받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우리 교회 주일 예배는 1시간 30분 드립니다. 그런데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새벽기도회 1시간 드리는데 졸고 자고 하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정성도 없는데 어떻게 복을 받고 응답을 받겠습니까?

 

사탄이 하는 일은 인간을 죄짓게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장막을 치심: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출애굽기 40장 38절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셨습니다. 그 장막은 진영 한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그 장막 가운데 계시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히 임함으로써, 광야 길을 걷는 백성들과 늘 ‘함께하고 있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1.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심 (요한복음 1:14)

 

요한복음 1장 14절의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거하다’는 헬라어 ‘에스케노센(eskēnōsen)’은 본래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육신이라는 장막)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은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시고 다시 얻으시는 ‘사랑과 순종’에 관한 말씀이며, ‘말씀이 우리 위에 거하심’에 대한 직접적인 장막 비유는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갈 때에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기운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편 42편 1-2절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사모와 함께 서울지역연합회 대만 여행을 갔습니다. 도봉순복음교회 김용준 목사님이 식사 대접을 하셨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식사와 음식을 사니 회원 목사님들이 풍족하게 먹었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마셔도 목마르지 않고 계속적으로 흐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