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장 3절 다윗의 길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7월 1일 금요철야
열왕기상 15장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열왕기상 15장 34절 (여로보암의 길)
-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좁은 길로 가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좁은 길속에 진리가 있는데 그 길은 좁고 협작하여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다보면 나가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철새들은 매년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정확한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거센 바람이 불고 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철새들의 머릿속에는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미세한 생체 나침반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철새들은 눈앞의 안개를 보지 않고, 창조주가 심어놓은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길을 찾아갑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
최민식 주연 《맨 끝줄 소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소설입니다. 열등감에 빠진 교수와 천재 소년의 만남니다. 20년째 소설을 쓰지 못해 심각한 열등감과 염세주의에 빠진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최민식 분)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학생들의 한심한 리포트를 채점하다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아 존재감 없이 지내던 소년 이강(최현욱 분)의 작문 과제를 발견합니다.
소년의 글은 단순한 수필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 은밀히 침투하여 그들의 일상, 행동, 숨겨진 공기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묘사한 일종의 ‘관음적인 기록’이었습니다.
글의 맨 마지막에는 늘 “다음 호에 계속”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강의 서늘한 천재성과 문학적 재능에 매혹된 허문오는 소년의 글을 계속 읽고 싶어 비밀스러운 개인 수업을 시작합니다. 허문오는 소년에게 글을 더 잘 쓰게 하려고 조언을 건네지만, 이는 결국 소년이 친구의 가정을 더 대담하게 뒤흔들고 관찰하도록 부추기는 꼴이 되며 겉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인간의 관음증과 집착입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다룹니다. 창작과 도덕의 경계: 예술적인 글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의 현실을 파괴해도 되는가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의 천재성에 매혹.
- 다윗의 길
-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왕을 꼽으라면 다윗왕입니다. 그리고 2명의 왕이 있습니다. 히스기야왕이고, 요시야왕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다윗은 여러 장점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는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용기있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뭉개지 않고 회개하며 결단한 행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사울왕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은 사람입니다.
아말렉의 모든 사람과 가축을 남김없이 진멸하라 (사무엘상 15:3).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겼습니다(사무엘상 15:9). 백성들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좋은 것을 남겼다 (사무엘상 15:15).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보다 자신의 합리적 생각과 대중의 인기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울을 책망합니다.”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22).
둘째로 다윗은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짖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법궤(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면서 기쁘게 춤을 추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 역대상 15장에 기록되었는데 왕의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의 향한 수순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처음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오다가 웃사가 법궤를 만지므로 죽게 되엇고 두번째 레위인의 어깨에 매고 이동함으로 안전하게 예루살렘성으로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왕의 옷이 벗어지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께 기뻐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아내는 비난하였지만 다윗은 어린아이 모습을 기쁘게 찬양하였습니다. “…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 일을 하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성전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기회가 있으면 이것이 하나님에게 나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생각해야하는데 성전짖는 일에 도망가가나 다는 교회로 가는 것을 피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37명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는데 17명 남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로 높아지고, 평안하게 목회하고 집 걱정없이 하나님앞에서 목회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성전을 지으면 우리교회에 대항 하는 사람들이 죽었고 그리고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 히스기야도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장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 올라가리이까? 하고 전쟁 가운데서도 주님께 물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순간 주님께 물어야합니다.
1) 사무엘하 5장 19절 (블레셋과의 전쟁)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2) “사무엘상 23장 2절 (그일라 구원 사건)”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와서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사무엘하 2장 1절 (왕이 되기 전 거취를 물을 때)”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이르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히스기야는 2증고를 격게 되었습니다. 전쟁 가운데 몸은 아프고 진퇴 양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림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하나님의 성전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4절”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이사야 37장 1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갔고”
- 죽을병(질병)에 걸렸을 때 기도한 구절
열왕기하 20장 2~3절”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 38장 2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성경적 및 역사적 연대기를 분석해 보면 히스기야 왕의 질병과 앗수르의 예루살렘 침공(산헤립의 압박)은 같은 해(기원전 701년경)에 겹쳐서 일어난 동시대적 사건입니다.
성경의 편집 순서상 전쟁(이사야 36~37장)이 먼저 나오고 질병(38장)이 나중에 배치되어 있어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기 쉽지만, 본문 속 증거들은 두 사건이 강력하게 맞물려 있음을 증명합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이라고 명시합니다(이사야 36:1).
히스기야는 총 29년을 통치했는데 병 고침을 받은 후 15년을 더 살았습니다(이사야 38:5). 즉, ’29년(총 재위) – 15년(연장된 수명) = 14년’이 되므로 그가 죽을병에 걸린 해 역시 재위 14년으로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기도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위협 가운데 우리나라는 기도하였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 74 EXPO, 조용기목사님의 10.3일 기도회등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오산리금식기도원 청계산 기도원, 양평기도원, 용문산기도원 수많은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기도원들이 문을 닫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고00목사님의 국부협에서 기도회하는데 사람들이 모이지않습니다.
저는 이 성경구절이 좋습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며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는 ‘일대일’의 영적 소통을 뜻합니다.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의 기적에서 문을 닫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 역시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릴 때나 과부의 기름 병에 기적을 베풀 때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고 하였습니다. [왕상 17:19, 왕하 4:4, 왕하 4:33]
창문과 문을 닫았다는 것은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죽었다”, “이제 끝났다” 통곡 소리가 기도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아사 왕과 히스기야 왕은 극심한 질병 앞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히스기야는 목숨을 위협하는 심한 종기(피부병)에 걸렸고 [사 38:21],
아사 왕은 위독할 정도로 심각한 발의 병에 걸렸습니다 [대하 16:12].
질병을 마주한 첫 번째 행동 (기도 vs 의원)
히스기야 (철저한 신앙의 의지): 죽을병에 걸렸다는 선지자의 선고를 듣자마자, 즉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오직 여호와께만 기도했습니다 [사 38:2].
아사 왕 (인간적 수단의 의지): 발의 병이 심하게 중해져 위독한 상황이었음에도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습니다” [대하 16:12].
히스기야 (통곡과 겸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했던 것을 기억해 달라고 심히 통곡하며 은혜를 구했습니다.
아사 왕 (돌이키지 않는 완악함): 아사는 통치 말년에 이미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도 노하여 선지자를 옥에 가두는 등 마음이 완고해져 있었습니다 [대하 16:10].
- 열왕기하 22장 2절, 23장 25절
개역개정 열왕기하 22장
-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요시야는 8살 때에 남유다왕 16대왕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34장)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하며 신앙의 각성은 20세 때에 재위 12년에 유다의 우상 제단과 아세라 목상들을 부수며 종교 개혁을 시작합니다.
26세 (재위 18년): 성전 청소 및 수리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였고, 이를 계기로 유다 전체에 대대적인 신앙 정화 운동과 유월절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요시야는 기원전 609년에 39살 때에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앗수르와 애굽의 강국사이에 하나님의 경고를 분별하지 못하고 독단적인 참전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장소는 므깃도(Megiddo) 평야입니다.
요시야는 변장하고 전투에 참여했으나, 애굽 군사들이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지고 있던 해인 아시리아(앗수르)를 멸망시키려던 격변기였습니다.
애굽 왕 느고 2세는 바벨론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망해가는 아시리아를 도우러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계산은 유다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아시리아가 확실히 망하기를 바랐던 요시야는, 아시리아를 도우러 가는 애굽 군대를 길목(므깃도)에서 막아섰습니다.
영적 분별력의 한계입니다. 애굽 왕 느고는 “나는 너를 치러 온 것이 아니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길을 비켜라” 하고 유다와 싸울 뜻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요시야는 이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전쟁을 강행했습니다(역대하 3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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