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흥기가 있고 슬럼프기가 있습니다. 개인의 삶도 마찮가지입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습니다. 운동선수의 경우도 한 해 내내 잘되는 선수도 간혹있지만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박찬호, 박지성, 박세리…) 한나라의 경제도 마찮가지입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브엘세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의 경우가도 850명과 싸워서 이긴 사건은 엉청난 큰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믿음있고 용기있는 엘리야가 스럼프에 빠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처럼 만들어진 물건이 아닙니다. 늘 슬럼프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능력을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평강이처럼 건강하고 담력있는 사람도 있고, 범섭이 형제처럼 온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성애권사님처럼 강인한 분도 있고, 김예기권사님처럼 온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삶속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5달란트, 어떤 사람들에게는 2달란트, 어떤 사람들에게 1달란트를 주셨습니다. 1 달란트의 가치는 약 10억에서 5억정도의 가치입니다. 그러한 달란트의 가치를 활용하여 다시 10달란트를 4달란트를 그리고 뭍어두어 세월을 낭비하여 한 달란트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기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저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은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칭찬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버지가 맡긴 양무리를 성실함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것은 골리앗을 죽여서가 아닙니다.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칭찬받은 요소는 바로 성실함입니다. 성실함으로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양무리를 칠 때에 그는 수만번 물매로 연습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할 것을 대비하여 돌맹이 5개를 더 준비하였던것입니다. 한번에 명중 시킬 수 있지만 실수하였으면 골리앗이 다가오기 전에 5개를 모두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실함입니다. 성실하게 예배드리는 자세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가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그리고 가정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려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가 대면예배를 지속하는 것은 헌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헌금 때문이라면 잘못된 예배입니다. 헌금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 믿음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제 강점기, 6.25사변 중, 중국에서 북한 내부에서 예배를 드리가다 잡혀서 처형당하는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예배가 돈 때문에 드린다면 궂이 안드려도 됩니다. 숨어서 기도만하면 됩니다. 그러데 왜 위험을 무릅스고 예배를 드립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 엘리야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세벨은 항상 그러한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입니다. 이방 사람이고 이방 우상을 가져와 이스라엘을 더럽힌 여자입니다. 그가 얼마나 악하냐 아합이 돈주고 사려고한 나봇의 포도 밭을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자 이세벨이 자신의 남편을 위하여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인을 치고 봉하여 성읍에서 나봇과 함게 한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않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함으로 나봇을 끌고가 돌로 쳐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말은 그냥 헛든 소리로 취급했어야합니다 왜냐햐면 정말 죽일 생각이 있었으면 나봇처럼 불량배나 군사들을 통하여 그냥 죽이면됩니다. 그런데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봇과 엘리야는 수순이 다른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엘리야는 백성들이 다 인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 사람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두려워하였고 도망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850대 1과 싸울 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하여 마침내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3년 반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게 되었고, 축지법까지 동원하면서 아합왕과 함께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능력을 행한 뒤에 사람들은 탈진하게 되고 허무하게됩니다. 그것을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휴가나, 안식년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헤르만 부르하페(1668~1738) 근대 임상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날렸던 명의(名醫)입니다. “의학사상 최고 비밀” 가죽정장의 두툼한 노트 한 권이 경매에 붙여졌다. 워낙 유명한 의사였고,‘최고의 비밀’이 담긴 노트이기에 낙찰가가 엄청났다고 한다. 그 책에 이와같이 써졌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을 뜨겁게 하며, 몸 속에는 찌꺼기를 남겨 두지마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의사를 비웃게 될 것이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적인 표현으로 Elihah was a man just like us.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같고 우리와 같은 몸으로 태어나 승천까지 그 몸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도 때로는 두려워하였고 여인의 말로 인하여 큰 스럼프를 격게 되었지만 다시 일어나서 불말타고 하늘나라에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찌보면 엘리야처럼 큰 성취를 얻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그리고 전무후무없는 한국교회의 부흥, 세계에서 2번째로 선교사 많이 보내는 나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급속하게 식고 있습니다. 이제 엘리야처럼 우리가 다시 일어나 그 성장의 속도를 늦추어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본문 2절의 이세벨의 말과 같지 않습니다. 내가 내일 이 맘 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 (850명)과 같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왕기상 17장1절에, 열왕기상 18장1절에 매 장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앞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르밧과부에게 가라, 아합에게 가라, 그 때 그 때의 할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따라서 하면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뭍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2. 브엘세바와 로뎀나무 아래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브엘세바는 예전에 저희 교회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할 때에 이스라엘 게스트 중에 Moria라는 여자 분이 우리 게스트 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북쪽으로 단, 남쪽으로 브엘세바입니다. 최남단입니다. 이스라엘 최 북단에서 이제 제일 남단으로 도망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뎀나무는 유대인들이 가장 비참한 시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햇빛이 비치면 얼마나 덥겠습니까? 광야에서 그늘은 은혜고 햇빛은 저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나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뎀나무입니다. 구글을 검색하니 싸리비 나무입니다. 광야에서 해빛이 비치고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는 요나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가시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그늘을 제공하지 않는 나무입니다. 아무런 쓸모없는 나무, 즉 자기 자신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엘리야도 가장 어려운 환경 가운데 주님을 만나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치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엘라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가장 비참한 곳에서 인간들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주님이 역사하시고 만저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가운데 그리고 교회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런 환경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이곳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은 성원순복음교회를 로뎀나무 아래로 삼으신 것입니다
3.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않았습니다.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브엘세바에서 호렙산, 즉 시내산 하나님이 모세게에게 십계명을 주신 산으로 엘리야를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굴속으로 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굴을 찾습니다. 은밀하고 그리고 조용하고 잠자기 좋고, 그리고 동물들이나 위험한 것들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굴입니다. 대부분 인류의 시작이나 원시인들이 생활터전이 바로 굴인 것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그리고 잠자기도 좋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마틴루터가 유명한 것은 종교개혁를 하여 개신교를 새롭게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어떤 영화에 보니 세상 사람들과 천주교의 신부도 믿지 말라 오직 목사님만 믿고 어려우면 목사님에게 상담하라는 내용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목사님들이 자신의 마을에서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둘째로 흑사병을 이겨내면서 마을과 교회를 지켰습니다.
세 번째로 루터는 가장 많이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자신의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당시의 독일의 문맹율은 95%였지만, 루터의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5%의 문맹율이 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언어로 그리고 이 시대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재 해석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정철목사님과 함께 부산 근처 양산에 감림산 기도원에서 청00 훈련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남이라는 주제로 일주일동안 전0훈목사님에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정말 큰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3구간을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설교하고 목사님의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4번에게 걸처서 국회의원 선거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에서 제가 의심할 만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도 까불면 죽어라는 소리입니다. 목사님이 입에서 그러한 소리를 듣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분이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평가하실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환호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마음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4대째 장로교회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순복음목사가 되었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굽시 거려도 처다보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놀라운 치료가 임해도 언제나 겸손하게 말씀만 증거하는 모습을 보고 영적인 스승으로 지금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교회로 부흥성장하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제 목사님들은 정치를 그만하고 각자의 교회에서 기도할 때입니다. 각자 지역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일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순방향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며 하나님의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하나님은 질병을 치료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한 하나님입니다. 역방향으로 흐르면 하나님이 뜻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마귀가 어려움을 줄때에 역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하나님의 역사는 순방향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 역방향으로 흐르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되고 부흥하고 있으면 더 잘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물어 기도하고 겸손해야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왜 도망쳤을 까요? 성도들이나 주의 종들이 왜 하나님을 멀리합니까? 세상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는 잘 들리 않습니다. 내가 노력하여야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 소리는 라디오나 TV를 켜면 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기도할 때에 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노력해야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엘리야는 850명과 싸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있었습니다. 그러나 1대 1과 싸울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없었습니다. 우리 주의 종과 성도들은 아주 작은 것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엘리야는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그리고 백성들도 엘리야 편인데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두려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두려운 장소를 피하는 것입니다.
● 굴 속, 자신의 아지트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1) 강한 바람입니다. 성경에서 보니 바윗을 부스는 바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태풍이 두 개, 세 개 온다고 합니다. 앞으로 또 한 개 더 온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마이삭 이 태풍은 바람이 어찌나 쎈지 나무가 뿌리체 뽑혔습니다. 성경은 강한 바람이 바윗을 부서뜨리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2) 지진입니다. 저는 1989년에서 1990년사이에 지진을 필리핀 바기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얏트호텔이 무너지고 산들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전철을 한 일년동안 타지 못하였습니다.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진은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여진이 오게됩니다. 그때에 흔들림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땅에 사는 이유는 그곳에 흔들림 없기 때문입니다. 배를 타고 홍도를 가는데 어찌나 흔들리는지 불안해서 혼났습니다.
3) 불입니다. 갈멜산에 불이 내렸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엘리야의 제단에 내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제의 표현으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세미한 음성입니다. 아주 작은 소리입니다. 들리지 않을 듯, 들리는 소리입니다. 고요한 소리입니다. 주변이 극도로 조용할 때에 들리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불로도 응답하시고 또 하나님은 세미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즉 장로교회에서 묵상으로 기도하여도 응답하시고 엘라야의 제단에 불로서, 그리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불로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한 면만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어쩨든 세미한 음성가운데 들렸던 것입니다.
세미한 음성은 바로 읖조림과 같은 것입니다. 묵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1991년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재난을 맞었던 영국 런던 하이드파그에서 15만명의 관객이 모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데뷔 30년 기념 공연에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중간에 우산을 접어주시겠습니까? 라는 누군가의 말에 맨 앞에 있던 찰스 황태자와 다이에나 왕세자비를 비롯해 모든 관중이 우산을 접어두고 비를 맞으면서 노래를 감사하고 무대 뒤에서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파파로티와 인사를 나누는 다이애나비의 털털하고 수수한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였습니다.
4. 여호와의 열심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열심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엘리야가 자신만 남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 말고 칠 천명을 더 남겨두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만 가지고 역사한다고 생각하는 선량한 착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목사님과 세상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워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에 나에게 축복하여주셨는데 스스로 착각하여 내가 한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칠천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내뜻이 이루워지지 않으면 금방 하나님께 실망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역사를 이루워가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평강이와 저와 함께 우리 사모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평강이와 우리 사모와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모가 그 음식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나 먹어라’ 하고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한참 뒤에 평강이와 저가 열심히, 마치 여호와의 열심처럼, 사모에게 전 후 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너나 먹어라’고 하면서 그 음식에 눈을 맞주치는 것입니다. 처음 상태는 마음이 완전히 상하였고 두 번째 상태는 이제는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바로 오늘 본문이 두 번에 걸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엘리야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다시 사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엘리야의 다음 사역을 위함입니다. 엘리야의 후개자 엘리사를 지명하는 문제, 그리고 이스라엘의 후계자를 지명하는 문제, 아합 뒤의 다음 왕을 안수하기 문제,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인 엘리야가 불병거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장면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엘리야의 스렘프로 끝나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다시 회복 후에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스럼프로 끝나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낳은 대한민국의 교회로 부흥하기 위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