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0년 6월 28일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 사람의 종류는 4종류
1) 예수님을 잘 믿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예화가 그 예입니다.
2) 예수님을 믿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뉴스를 들었습니다. 목사가 술집에서 추행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전제산을 모아 학교에 기부하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4)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을 죽인 아히만입니다. 이스라엘정부에서 끝까지 찾아내 사형집행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번성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와 팔레스타인을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가나안을 평정하고 그땅을 이스라엘 땅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1000년이 지나고 이스라엘의 메시야인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그 피 값으로 이스라엘은 패망하게 됩니다. 로마에 민중봉기를 통하여 주후 70년 경에 티투스장군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고 성전 서쪽 벽을 제외하고 모든 성전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바르코크바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또 독립운동과 민중봉기로 인하여 주후 134년경에 로마는 모든 예루살렘을 탈활하고 이로인하여 유대인의 거점 요새 50개 함락되었고, 사망자 58만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노예로 팔려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쟁으로 유대인들이 쫒겨났고 대신에 팔레스타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피 눈물나는 삶을 살았지만 그들이 살길은 오직 돈을 모으는 일이였고 부자로 사는 길이였습니다. . 얼마나 돈을 잘모으는지 섹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아라는 글에 사일록은 안토니의 엉덩이 살을 때어서라도 돈을 갑으로 하는 고리대금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증오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히틀러에 의하여 이스라엘 인구의 2/3이 죽게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홀로코스트, 아우스비치수용소 사건입니다. 이로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인 자신의 나라가 있어야할 것을 알고 그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갈망합니다. 세계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에 영국의 도움을 받아서 팔레스타인과 함께 가나안에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한땅에 살면 같이 살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전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2. 오네시모와 빌레몬이라는 사람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성경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증으로 이루워졌습니다. 지금도 그 간증을 써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들의 삶을 통하여 그 간증의 이이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살아가는데 어린시절 이원길 친구와 함게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원길의 아버님, 이인창장로님의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참 은혜롭고 기쁨이 있습니다. 약 90세가 넘으신 장로님이 창립기념일을 통하여 아모니카를 불으시면 신앙을 절개를 지키시는 모습을 통하여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부가 자신의 딸을 후라이판으로 손가락을 지지는 사건이 있었고, 계모가 여행용 가방에다가 아들은 놓고 숨지게한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세계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김대중 대통령의 유산 노벨평화상 상금 8억원과 그리고 대통령이 살고 계셨던 집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속에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첫째는 죽고 둘째 홍업과 홍걸과의 싸움입니다. 이휘호 여사는 변호사와 첫째 부인과 그리고 홍업과 홍걸을 놓고 유언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갖지말고 김대중 대통령 기념으로 사용하였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민주당비례대표인 김홍걸 의원이 자신이 적격자라고 하여 모든 돈을 자신의 개인통장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서 문제가 생겼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법적인 소송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 인생의 모든 문제는 돈에서 형성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성도들은 돈이 아니라 신앙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입니다. 종살이를 하다가 주인의 물건을 훔처서 로마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잡히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섭리로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복음전도를 통하여 오네시모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고 예수님을 잘 믿는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소하게 되었는데 이 출소하는 오네시모에게 편지 한통을 써준 것입니다.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오네시모를 더 이상 종으로 생각하지말고, 성도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그는 나의 심복이고 나의 동역자로 추천서를 써 준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가게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예수님처럼 유대인에 의하여 죽을 수 있었지만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이사, 로마에서 제판을 받기를 원했고 배를 타고 로마로 가다가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그레데섬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 재판을 받는데 그 당시에는 로마가 기독교인을 핍박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유롭게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서쪽의 끝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속에서 로마에서 붙잡혀 이제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보니까? 사도 바울은 나이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나이 늙도록 감옥생활을 하면서 갇히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니 육적으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영적으로 아들이 된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낳았다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도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라고 말씀하고, 디모데전서 1장 2절에는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사도 바울은 장가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없지만 복음으로 한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과 딸로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형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여러분들은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CCC에서는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정철형제, 성운형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 더 친근하고 더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홍정길목사님, 이동원목사님도 함께 있을 때에는 형제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 내 심복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심복이라는 말은 주먹세계에서 사용하는 단어이기도합니다. 또한 정치세계에서도 대통령의 심복이라고 표현하기도합니다. 북으로 미국으로 보내는 사람들을 대통령의 심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신문지상에 일어본적이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심복은 배와 가슴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마음속 깊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복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서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목사님의 심복입니다. 특별히 원복래 안수집사님입니다. 저보다 성원순복음교회 더 오래 계셨고 그리고 우리교회의 주인과 같은 분입니다. 어려울 때에 힘들을 때에도 항상 물질로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필리핀을 가지고 하면 가시는 분입니다. 제가 부흥회를 하자고 하면 언제나 오셔서 강사목사님의 식사를 대접하는 분입니다. 가장 힘들 때 어려울 때에 제가 교회의 일들을 할 때에 물으시면 아니요가 없이 예만 있습니다. 교회 건축할 때에 자신의 집을 담보로 은혜에다가 설정하신분입니다. 그러니 성원순복음교회의 심복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오사카에 사시다가 대동아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김제에 정착하셨습니다. 김제는 대한민국의 곡창지대로서 쌀들이 김제에 남으로 생활이 넉넉하고 평화로운 동내이기 때문입니다. 이자익이라는 분도 경남 김해에서 살다가 김제로 와서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종이 없지만 우리 권사님 시대에는 종이 있었습니다. 종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종입니다. 이자익은 그의 상전의 자녀가 공부할 때에 어깨넘어로 배운 한글과 한문을 공부하게 되었고 머리가 똑똑하여 모든 일들을 이자익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1904년 금산교회의 테이트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조덕삼은 이자익과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종과 주인입니다. 1907년 금산교회에서 장로를 뽑는 투표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두사람은 후보에 오르게 되었고 6살 때에 부모를 여이고 떠돌던 종이 장로에 선출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승동교회와 안동교회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백정이 장로가 되었다고 교회가 분열되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연동교회와 묘동교회도 마찮가지입니다. 갑파치가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분열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장로님은 저희집에 일하고 있지만 신앙심은 저도 훨씬 높습니다. 그를 장로로 뽑아주신데 대하여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정성스럽게 모시겠습니다. 장로가 된 이자익은 테이트 선교사를 대신하여 교회 강단에서 설교하게 되었고 조덕삼은 교회 바닥에 꿇어 앉아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조덕삼장로님 이자익 장로님은 평양에서 신학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3년뒤에 조덕삼은 교회를 지을 땅을 헌납하여 교회를 짖게 되었고 조덕삼 장로님은 신학교를 졸업한 이자익을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후 이자익목사님은 총회장을 3번이 하는 교회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2012년에 대전신학교에서 이자익목사기념관 현판식이 있었습니다. 그럼 조덕삼장로님은 하나님이 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셔셔서 조세형 미스터 쓴소리 4선 국회의원으로 금산교회 장로이기도합니다. 조덕삼 장로님이 세운 민족학교 유광학교를 세웠고 또한 조덕삼 장로의 아들은 조영호 장로이고, 조영호 장로의 아들 조세형 장로는 할아버지를 이어 삼대 째 금산교회 장로가 되었고, 국회의원과 일본 대사를 역임한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었습니다.
3. 종으로 대하지 말고 동역자로 대하라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는 성원순복음교회를 담임목사이지만 여러분도 함께 동역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목사 혼자서 이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고 함께 할 때에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혼자하면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성경 전도서 3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유난히도 동역자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헬라어로 쉬네르고스라는 단어입니다. 함께 사역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의 도역자는 바나바, 실라,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베베자매,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빌레몬과 오네시모입니다.
사업을 하면 동업자가 됩니다. 돈을 같이내고 이익을 같이 나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업자가 아닙니다. 동역자입니다. 같이 이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모여 일하고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같이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동업자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보면 서로 싸우고 갈라서는 것이 동업자입니다. 그런데 동역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손해를 보는 곳입니다. 내가 헌금하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헌신하는 것이 동역자입니다. 이익을 목적으로 교회왔다면 정말 잘못왔습니다. 교회는 이익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내가 손해를 보는 장소고 내가 헌신하는 장소고 내가 죽은 장소입니다.
영락교회 김응락장로님의 삶
1945년 12월 월남한 피난민들이 ‘베다니전도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설립할 때 교회당 건축위원이 되었고, 한경직 목사를 교역자로 청빙했는데, 이 교회가 지금의 영락교회이다. 1950년 6월 4일 350평의 석조 예배당을 건축하였는데, 21일 지나자 한국전쟁이 일어나 교회는 공산군의 무기 창고와 연락사무소로 사용되었다. 김응락장로님은 유엔군이 서울을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1950년 9월 21일 교회에 들렀다가 공산군에게 붙들려, 중부서로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유엔군의 서울 수복이 개시되기 직전 공산군이 후퇴 길에 김응락과 같은 교회 교인 김만이 끌려갔는데. 김응락은 김만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총살당했다. 이때에 죽음을 직관하고 마지막 찬송을 불렀는데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늘 아쉰 마음 뿐일세” 살아서 부르는 마지막 찬송이요,각오한 그는 거칠 것 없이 크게 찬송을 불렀다고합니다.
결론입니다.
코로나 기간이라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기를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험이 있어도 이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헌신하신 위대한 성도들이 있어 지금까지 발전되고 부흥해왔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내교회위에 세운 성원순복음교회, 이교회는 또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의 몸을 잘 살피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