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절 구원

2018-12-01 11:12:17


요한복음 3장 1절 구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2월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성경전체에 흐르고 있는 구원, 성령, 재림, 신유등과 같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교리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먼저 구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전체의 역사를 요약하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영원한 형벌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구원에 대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의 역사가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 가운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어 그분을 통하여 이땅의 구원의 역사를 심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셨을 때에 흙과 하나님의 영인 퓨뉴마(호흡)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우리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절). 헬라어로 퓨뉴마, 프시케, 소마라고 하는데 우리의 몸(육), 육속에 있는 혼이 있습니다. 혼 속에 영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삼분설을 믿고 어떤 분들은 이분설을 믿기도합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보는 이분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를 강조하여 세상에서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여 물질 제일주의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일에 우선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2절)

물론 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이 나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건강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적인 건강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운동을 철저히하고 힘을 기르므로 내 영혼적인 모든 부분에 더 강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산악인이나, 철인 3종을 하는 분들을 보면 육적으로 건강하므로 멘탈이 더 건강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운동의 강도를 통하여 두려움과 공황장애도 이겼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는 아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하는 것도 그리고 물질을 얻는 것도 종국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믿음생활 잘하기 하기 위한 일들입니다.

◉ 잘못된 생각들

19세기 말 일본의 정치적 간섭을 받는 대한 제국 김홍집 내각은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1895년 11월 15일 전국에 단발령을 내립니다. 다음날인 16일 아침에 걸쳐 정부 각부의 관료와 이속 그리고 군인 순검 등의 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단발령을 단행합니다. 당시 유교가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조상 제사를 드리며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신체발부 수지부모하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고 하여 신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 감시 훼상하지 않은 것이 효의 시작임을 알고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머리를 길러 상투를 트는 것이 인륜의 기본인 효의 상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단발령을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하는 심각한 박해로 받아들여 정부에 대한 반감을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백성들은 억울하고 분해서 목숨을 끈으려 했습니다. 매천야록에 보면 당대 유림의 거두 최익현은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 지어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질타하며 단발을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보은현감 이규백의 아내 창령 성씨는 남편이 직책상 단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비관하고 그날 밤 목을 매어 자살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는 이러했습니다. 삼강오륜은 머리카락과 같이 끈어지고 나의 혼백은 윤강을 따라 끊어지도다. 함양 선비 정순철에게 시집 간 조씨는 남편이 할아버지 밥상에서 단발을 허럭해 달라는 말을 엿듣고 들어가 ‘머리 깎는 스님은 남편도 아들도 업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안고 들어간 아이를 내동댕이치고는 장도꺼내 자결했다고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일제 경제적인 침략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일어난 주권찬탈에 억울한 백성들의 의분도 이해하지 못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하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왜 이들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단발령에 항거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진정 목숨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이 무너지면 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살아갈 이유가 무너지면 중심이 무너지고 생명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상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생명보다 더 귀한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그리고 자살까지 함으로 그 절개를 지키고자하는 생각이였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병으로 사고로 생명을 다하여 죽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행복, 쾌락, 배우자, 성공, 돈에 열심히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늙어서도 쉽게 죽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먼 장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죽음을 우숩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꼭 기억해야할 일은 우리는 반드시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생은 일회적인 것이고 우리의 삶 속에서 후회를 남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보다. 천국이 있다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죽어서 천국이 없다면 그냥 그렇지 하고 생각하면 되지만 정말로 여러분 앞에 지옥과 천국이 있다고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모든 사람들이 죄 때문에 사망이 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영생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교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하여 학문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불교는 스스로 도를 터득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럼 구원의 길을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에 유대인의 지도자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서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랍비라고 여겼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어 어떻게 모태에 두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가 라며 묻습니다. 예수님은 중생이란 육의 일이 아니고 영의 중생이며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하며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없지만 바람이 있는 것처럼 중생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부자 청년, 젊은 관원도 구원에 대하여 정말 궁금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 10살 때까지 건강의 기초를 다시고, 20살 때까지 학문을 하면, 30세에 돈을 벌기 시작하여 60대까지 돈을 벌고 자녀를 낳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노후에는 명예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죽어갑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부와 권세 그리고 명예까지 다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궁금하고 그것을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하듯이 내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가장 힘들은 것 바로 물질을 버리고 나를 쫒으라고 명령하므로 근심하며 돌아간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니고데모는 교육도 많이 받고 사회에 존경받는 국회의원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로 순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부자 청년처럼 스스로 결정하기 힘들은 시험거리를 그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묻는 그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구원의 첫 번째 원리는 바로 거듭남인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죄에서부터 다시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은 일차적인 태어남 출생이라고 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은 엄마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에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6, 15절)

물이라는 것은 물세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죄 씻음의 의미로 물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란 죄인에게 회개를 초래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할수 있습니다. (엡 5장 26절, 벧전 1장 23-25절)

그러므로 중생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골로세서 2장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3.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교회 다니는 사람과 세상의 사람과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김장을 담고 있는데 요구르트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교회를 보면서 옆에 있는 아주머니를 전도하고 싶어서 이 번 주일날 교회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 그런 이야기 그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가면 어떻습니까? 좋은 술집이 있으면 술 먹고 가자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좋은 술집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 처럼 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이렇게 영의 세계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지구가 총알보다 3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데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또한 아주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20정도의 주파수에서 20000주파수 정도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영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신을 쫒아 낼 수 있는 것을 제자들과 우리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귀신에 붙들려 살기 때문에 귀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강하게 임제하고 있으면 스스로 그 귀신을 쫒아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알아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과 함께한 몇몇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성경에 보니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두려워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오셨는데도 그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사역하셨던 김00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파퓨아 뉴기니아로 선교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상당히 큰 영향력있는 왕무당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어머니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나 계룡산에 불러서 몇칠식 무덤가에서 주문을 외우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귀신이 점괘를 가르쳐주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유명한 무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00 선교사님이 목회자되었고 인천교회에서 같이 근무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말씀이 교회도 마찮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영이 충만해야 부흥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는 잘되고 어떤 점집은 잘되는데 그 곳에서는 악령과 성령이 충만하면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는 잘 되지 않고, 어떤 점집은 잘되지 않는 것은 악령과 성령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3. 성령의 인도하심과 내 믿음과 의지가 작용합니다.

로마서 10장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1절을 보면,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으면 구원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이곳 성원순복음교회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그리고 여러분의 의지와 여러분의 믿음으로 이곳 성원순복음교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일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하게 하는데 여러분들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기 위하여 이곳에 나오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마귀의 방해를 받았겠습니까? 이곳에 나오기 위하여 누군가 기도했고 그리고 성령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나오도록 인도하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마음의 결심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순간에도 성령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고 성령의 뜻을 거슬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성령을 따라가지 않으면, 바꿔 말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가거나 혹은 기분대로 움직이면 성령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수없습니다. 여러분 주일날, 수많은 일들로 여러분들을 방해합니다. 교회 나는 것이 귀찮게 생각이 들고, 세상의 일들이 생겨서 교회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일들을 통하여 성경님이 근심하게 되고 성령의 일들이 위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엔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기보다 자기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충고를 따라 교회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4. 구원받은 사람들이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야합니까?

만든 사람들의 뜻을 따라서 살면 편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에덴에서 살 때에는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벗어나므로 우리는 땀을 흘려야합니다. 수고를 해야합니다. 병도 걸리게 되고 힘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어떤 분이 자신의 능력으로 고장난 차를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노신사가 다가와서 내가 좀 고처주겠다고하였습니다.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저는 자동차 1급 정비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쳐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노신사가 몇가지 부속을 만지니 금방 고쳐지는 것입니다. 어떻게해서 고쳤느냐고 했더니 나는 이 차를 디자인하고 만들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포드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손에서 구원함을 얻고 우리가 영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떠한 영생얻는 것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모시면 여러분의 가정과 삶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미리 맞보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천국이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천국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애통이 없습니다. 아픔이 없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낸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어려분들을 창조한 목적은 그분을 영화롭게하고 그분을 늘 찬송하게 하심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물건들은 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이크에도 목적이 있고 컴퓨터에도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을 잃으면 밖에 버린워진 다고 하였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