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장 15 추수감사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1월 18일 주일설교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기적 중에 최고의 기적은 바로 부활의 기적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나누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최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제일 먼저 오시면 헌금봉투부터 찾아 감사거리를 쓰시고 그리고 찬양을 하는 모습을 지금 18년동안 보았습니다. 한 주간 동안 살면서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이곳에 나오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감사예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중에 축복입니다.
제이 데니스(Jay Dennis)는 “감사 치유법”의 위력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당신이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깼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지불해야 할 많은 세금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걸을 수 있는 건강과 자동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십대가 된 자녀가 반항을 하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치워야할게 너무 많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옷이 몸에 끼여 잘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잘 먹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메일(E-mail)이 너무 많이 오거든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1. 감사중에 최고의 감사는 구원의 감사입니다.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저에게 평생의 감사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간증거리가 있지만 저에게는 그냥 평범하게 예수님을 믿어온 것이 간증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부모가 있지만 예수님 잘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최고의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사도 바울처럼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사도바울을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과 같이 신령한 체험을 하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체험을 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당시 장정 60만명중에 한 명인 모세입니다. 사도바울시대의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약 200만명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직접적인 부르심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평범한 가운데 주님을 만났습니다. 평범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하기 위하여 그러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는 부모님에게 감사드리고, 힘들은 가운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개척을 함께한 우리 아내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부족하고 설교도 못하고 능력이 없는 목사인 저를 주의 종으로 섬기고 함께 교회를 지킨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구원에는 3종류의 구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둘째는 질병에서의 구원입니다. 셋째는 위험의 순간에서 구원 즉, 바다나 전쟁에서 구원입니다.
◉ 본문 설명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왜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구원해주시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 사람들이 범죄한 것을 보게하시나요? 왜 정의가 시행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야 너희가 살아있는 동안에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일어나 유다를 심판할 것이다. 그들의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늑대보다 사납다. 그들의 군대는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와 같다. “하나님은 악을 보지 못하시며 나쁜 짓 하는 것을 참지 못하시는 분”인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다사람보다 더 악하고 나쁜 바벨론을 통하여 유다사람들을 심판하시는가요? 너는 이 판 위에다 이렇게 적으로 이 교만하고 술을 즐기며 여러나라를 공격하는 바벨론을 내가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 제 온몸이 떨려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이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니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포도나무가, 감남나무가 없을찌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즉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2. 감사중의 최고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17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소유에 대한 감사가 대부분입니다. 무화과,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에 소득입니다. 이스라엘 당시의 소유의 산물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경우, 논과 밭, 그리고 쌀, 연탄, 배추등을 들수 있습니다. 예전에 김장철이 되면 한접 100포기 김장과 연탄 100장만 준비하면 마음이 듬직하고 행복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뭐니 뭐니해도 돈입니다. 현금입니다. 내 통장에 현금이 가득 쌓이면 그것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식이 늘어나고 종업원이 늘어나는 그것이 바로 행복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소유가 없으면서도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욥이 고난 가운데 있어면서 감사하는 신앙 이것이 하나님이 복 주시는 신앙입니다.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신앙입니다. 예전에는 이웃집에서 싸움의 소리가 많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돈과 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싸움의 소리가 나지 않고 이혼해버리는 것입니다.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서로 헤어지는 것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외형상으로는 차단되어 있어서 매우 유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감옥을 지옥으로 만들고 수도원을 천국으로 만드는가? 감옥은 불평으로 시작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스펄젼(C. H. Spurgeon)목사님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이 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 중에 아멘을 많이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입으로 아멘하고 손으로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있습니다. 마치 문등병자 10명을 치료하여주었는데 한명만 주님앞에서 와서 감사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떡 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의 친절과 헌신에 감사를 느낀 왕이 ‘너희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왕의 옆에 있기를 원하다.’고 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신하가 귀속말로 이렇게 왕에게 조언하였습니다. ‘99의 덫’을 사용하여 보십시오? 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금 99냥을 두 관원장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떡 맡은 관원장은 기쁨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게 되었고 술맡은 관원장은 불평하면서 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떡 맡은 관원장은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줄라면 100냥 체워주지 왜 한냥 부족하여 주는 것지 혹시 떡 맡은 관원장이 더 주지 않았는가 하고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잠언 17장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떡맡은 관원장은 양약이 되어 좋은 떡들을 왕에게 칭찬받고, 술맡은 관원장은 잘 못된 술로 인하여 왕의 진로를 사게 되었습니다.
스펄젼(C. H. Spurgeon) 목사님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이 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하나님께서 좋은 과일과 좋은 건강들을 베풀어주심에 감사하면 내년에도 더 많은 감사거리를 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받을 것을 지금 받은 것처럼 믿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감사하는 일이 더 많이 생기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불평거리가 더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중앙우체국에는 전국의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수천 수만은 편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우체국은 어린이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도록 지역교회와 성도들에게 알리어 크리스마스 전까지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렸다고합니다. 그런데 선물을 받고 정말 고맙습니다 하는 편지는 거의 없다고합니다. 우리성도도 선물 주시옵서소 하고 기도는 하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종은 울리지 않으면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고, 찬송은 부르지 않으면 찬송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하지 않으면 축복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3.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성전에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찬송가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당시 혼란한 현실과 선지자의 고뇌는 오늘날 세계의 현실과 빗대어보아도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발고, 악한 자는 부와 명예를 얻는데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노력을 했음에도 역경을 겪는 일들이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천년 전부터 인류가 겪은 일들은 어쩌면 현대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괴로워하던 하박국은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타락한 위정자들, 전쟁터에 끌려가는 선령한 젊은이들, 경제적인 빈곤, 이제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인은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셨고 믿음으로 사는 길이 바로 감사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니 하나님이 온 땅을 잠잠하게 만드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환난과 시련으로 인해 오히려 신앙이 굳건해지고 심지가 강해졌음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극심한 역경을 겪을지라도 선한 자들과 의인를 구원하게 될 것이고 악인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깨닫은 그는 역경 때문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 때문에 감사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은 ‘포응하다 껴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와도 감사.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와도 감사. 풍족할 때가 아니라 부족할 때도 감사. 승리가 아니라 패배도 감사. 생명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감사. 이는 위기나 고통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가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정답을 가르쳐 주었다고하였습니다. 내신을 1등급 맞게 외부에서 시험을 보면 459등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특차로 대학에 진학하게 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교1등였던 아이가 학교에다가 의문를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이번에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모가 정답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언제나 정의가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4. 감사의 결과 (의학적으로)
행복감이 증가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약화됩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긴장이 풀립니다. 스트레스가 감소됩니다. 맥박이 고르고 안정됩니다. 위장기능이 좋아집니다. 혈액순환이 잘됩니다. 체내 독소가 줄어듭니다. 항암작용을 합니다. 신체 활력이 증거합니다.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 심장전문의 맥크래시, 의사 존 자웽, 심리학계와 의학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감사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다양한 임상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매일 감사 일기를 쓰게 하거나, 감사한 일을 메모하게 하거나 매일 식사전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하는 등 여러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이 전문가들이 도출한 실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정신적으로 뿐만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탁월한 건강 증진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실험이 진행될수록 정신적으로도 안정될뿐더러 실제로 신체 반응에도 변화를 보여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떨어지고 심혈관계와 소화기계 기능도 향상되었던 것입니다.
탈무드의 격언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에모토 마사루의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실시한 실험도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실험에 의하면 물을 떠놓고 감사와 사랑 같은 긍정적인 언어를 지속적으로 말했을 때 물의 결정체가 완전한 육각형 결정체가 이룬다고합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대체 무엇에 대해 감사하란 말인가?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를 하지 …. 이러한 의문이야말로 감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현재에 대해, 지금 가진 것에 대해, 그동안 해 왔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순간 발상의 전환이 이루워집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젊어지고, 감사하면 발전하고 감사하면 기쁨이 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항상 낙심하라, 범사에 불평하라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범사에 불평하는 것은 마귀의 뜻입니다. 하박국 1장 3절 13절, 14절에 하나님 어찌하여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5. 간증
이태규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막내딸을 병으로 잃었습니다.
라빈이는 태어날 때부터 ‘복함심기형’이라는 질병을 갖고 있어서 엄마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 계속되는 고통과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교인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중보기도 요청을 하고 반 년 여 동안 여섯 차례의 어려운 수술을 받으며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겼습니다.
지금껏 아슬아슬하게 병마와 싸워 오던 라빈이를 하나님은 왜 갑자기 황급하게 데려가시는 걸까요? 결국 이렇게 데려가실 거라면 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수많은 의문과 고통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결정을 순종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순종이었고 너무나 슬픈 내려놓음이었습니다. 서울 아산병원으로 향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와 제 아내에게 딸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 아픔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 순간 이들 부부는 위로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들고 흘러나오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소아 중환자실에 도착한 이 부부는 죽어 가는 라빈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여 가며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엄마 품에 안겨 보지도 못했던 우리 아기··, 마음껏 엄마 젖도 빨아 보지 못했던 우리 아기··. 온몸이 온통 칼자국과 바늘 자국투성인 우리 아기……. 라빈이는 그렇게 엄마 품에 안긴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그 순간 믿음의 눈을 통해 예수님이 어린 라빈이의 영혼을 두 팔과 가슴으로 품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을 품에 안은 아내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지만 입가에는 옅은 감사의 미소가 흐리고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싸늘하게 식은 라빈이의 작은 몸뚱이를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담담하게 라빈이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물었습니다. “여보, 괜찮아요?”“괜찮아요. 살아도 내 자식이고 죽어도 내 자식인데요·····.”아내의 말을 들으며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바로 믿음이란 ‘생(生)과 사(死)를 초월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남편은 운전을 하며 한 손으로 라빈이의 부드러운 볼을 어루만졌습니다. 차갑지만 따뜻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르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고 또 참았습니다. 한 번 눈물이 터지면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라빈이 장례식을 치르고 주민 센터에 가서 사망 선고를 했습니다. 행정 처리는 냉혹한 만큼 바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절차로 주민등록등본에서 라빈이가 삭제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오려 했습니다. 뒤돌아서 주민 센터의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속으로 뛰어 들어가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함께 울었습니다. 빗방울이 이윽고 굵은 소나기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부를 위로하시며 함께 울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도 울고 자신도 울고 아내도 울었습니다. 부부는 그렇게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태규야, 차선아, 자식을 잃은 너희 그 슬픔, 그 아픔, 나도 안다··.”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의 파도 속에도 하나님의 위로는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고통으로 통곡하면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련 속에서 오히려 더 굳건한 감사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는 사실을, 참다운 감사는 지독한 고통의 불길 속에서도 피어오른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