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낙망과 기도

2018-10-27 20:46:10


누가복음 18장 1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1월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낙심해 본적이 있습니까? 물어보는 목사가 바보입니다. 낙심은 한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 쓰레기 통에 버렸는데도 다음날이 되면 또 낙심거리가 생기는 것을 볼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사는 날들이 많아서 낙심할 필요가 없지만 다시 일어설수 없어서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 친구도 보았습니다.

휴양지에서 아름다운 산과 별들을 보면서도 이제는 저 산과 별들처럼 힘있게 살아야지 하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 다시 낙심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게 모질게 결심하고 또 결심하지만 다시 내 방 침대 이불속에서 나를 기다리는고 있는 것이 낙심입니다. 살을 빼려고 하지만 살이 빠지 않아서 낙심하는 친구들

학업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낙심하는 친구들, 사업장이 잘되지 않아서 낙심하는 사람들, 기도의 응답이 안돼서 낙심되고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모질게 대하실까 싶어서 낙심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1. 낙심과 기도의 상관관계는 뭘까? 원수지간일까? 아니면 친구지간일까?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장 비유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낙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낙망과 기도는 한 시소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가 올라가면 낙망이 내려가고, 반대로 낙망이 올라가면 기도가 내려가는 이치입니다. 둘중에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틀림없이 한쪽은 땅에 곤두박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낙망과 기도라는 친구가 시소를 함께 타고 노는 놀이터와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젠 반대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기도라는 친구랑 함께 놀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주간에서는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가정속에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다 낙망의 조건들이 많이 있지만 다시 주일 아침에 주님과 함께 호흡하고 다시 소망을 갖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 김옥자 집사님이 강송훈집사님의 가정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짧은 거리인데도 몇 번을 쉬고 숨이 차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땀을 흐리면서 예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사님의 모습이 짠해 보였습니다. 조금씩 더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공황장애과 오십견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완전이 오십견이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황장애도 많이 극복할 수있었습니다. 수영을 하다보면 숨이 떡까지 차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숨을 자유롭게 쉬어야하는데 숨을 물속에서 자유롭게 쉴수 없습니다. 뒤에서는 다음 사람이 따라오고 그리고 앞에서 빨리가고 따라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자주 반복하여 연습하다가 보니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만 있는 김옥자 집사님에게 윌리엄 캐리는 42년 동안 활동하면서 수많은 고초와 어려움, 죽음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부인은 거의 정신병자가 될 정도로 많은 고통,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일도 여러 번, 인도 45개 방언으로 말씀을 번역, 윌리엄 캐리의 전기를 쓴 작가는 어떻게 윌리엄 캐리가 열정을 가지고 이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윌리엄 캐리에겐 몸 약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인도를 떠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윌리엄,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구나. 나는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몸이라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구나.)

인생이라는 놀이터에서 낙망을 쫒아낼수 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함께 놀아야 한다면 우리는 기도의 친구랑 노는 것이 더 행복한 셈입니다. 자주 무심했던 기도라는 친구와 함께 놀아야하는 것입니다.

낙망 落望 바라보던 것이 떨어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입니다. 정신없이 무엇인가 시소에서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완전히 정신을 잃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리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놀아야할 기도는 무엇인가?

비유로 등장하는 불의한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로마에서 파견한 비(非) 유대인 관리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 재판장과 유대인과부의 관계, 즉 최악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는 선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뉘항스입니다.

마치 이 재판장은 강용석 변호사와 같습니다. 강용석변호사는 법원에 미운 떨이 배겼는지 법정구속이 되었습니다. 도도맘 유명 블러그 운영자의 남편이 낸 소송을 취하시키려 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강용석 변호사는 1심에 지역 1년을 선거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가 법정에서 반성의 기미가 없고, 불륜 관계였던 김 씨와 소취하 사문서를 위조한 것은 변호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에 비춰 비난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피해자 조 씨가 불륜으로 인한 가정 파탄 외에도 이 사건으로 인해 추가적인 고통을 입어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과부는 일단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면 유전 무죄이고 무전 유죄입니다. 이번에 삼성의 이재용이 풀려났습니다. 롯데의 그룹회장도 풀려났습니다. 이는 돈으로 제판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권력입니다. 살아있는 권력 죽어가는 권력이 제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실제가 최고의 대법원장에게 제판을 청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부는 돈도 없고, 그리고 권력도 없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도저히 자신의 소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재판장은 자꾸만 번거롭게하고 괴롭게 할까봐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됩니다.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낙심이 연속되는 삶을 살던 과부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기 때문에 이 여인은 재판관을 번거롭게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에도 출근할 때에도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먹으로 들어올 때도 문앞에서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저녁 때에도 퇴근할 때에도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잠자는데 계속적으로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들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어떻게 하든지 남의 것을 빼앗고 못된짓을 하면 바르게 살지 못하는 재판관이지만 자신을 번거롭게 하니 그것 대문에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는 모순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못된 재판관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아이런히한 일입니다. 졸다대면 다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2. 아버지의 관계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우리 생각이 맞다면 예수님은 이 과부의 행동을 본받으라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은 자꾸만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할까봐 들어주어야겠다는 게 전부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이 숨어있는 것일가?

들으라 의 헬라어는 아쿠사테입니다. 이말의 영어적인 표현은 hearing이 아니라 deep meditaion 깊이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깊이 묵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버지의 관계 (택하신 자)

우리가 끈질게 기도하면 들어주시기는 분이지만 그보다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때문에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면서 불의하기까지 한 재판장과 과부의 관계에서도 응답하시는데 하물며 의로운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택한 자녀의 관계에서 왜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 동생 중에 어머니의 지갑의 돈을 훔처서 자신의 신발 나이키를 쌓을 때에 어머니가 울면서 그 신발을 칼로 찢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돈은 가정 생활비로 꼭 필요한 돈이였는데 그것을 자신의 신발 사는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처가 우리 평강이에게 감사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남대문 시장에 가서 메이커 옷이나 신발을 자주지 않아도 별 원망 없이 살았던 모습에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이 자신의 용돈 범위 내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홈프러스 2층에 올라가면 아이들과 엄마와 함께 온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탑브레이드 어린이 팽이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몇 번이고 무엇을 사 달라고 하면 여러번 거절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전혀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저절하시는 분이 우리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말 필요하면 반드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이 미국에서 이미 두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였습니다. 입양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난 네 아빠고 이집에 있는모든 것은 네 거야’ 하지만 그 아이는 집에 온지 3년 될 때까지 냉장고 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고 늘 목사님이나 사모님에게 물어보고 열었다고 합니다. 너무 마음이 아픈 나머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주었는데도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이 아이가 처음으로 묻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목사님과 사모님은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해서 또 울었다고 합니다. 왜 아이는 냉장고 문을 열수 없었을까요? 그때까지 아이에는 그 아저씨가 아빠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낙망하고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나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아빠가 되어주시기를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우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입양된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하물며)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의 사전의 뜻은 ‘앞 내용보다 뒤 내용에 대한 더 강한 긍정을 나타낼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 하물며는 악한 재판관도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왜 응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좋은신 아버지라고 하면서 간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지 않고 간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년 전에 우리 아들과 함께 성전 교육관에서 살 때였습니다. 늘 우리 평강이와 함께 축구를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고무공으로 아빠는 부엌 쪽에 그리고 우리 평강이는 입구 쪽에 골대를 만들어 놓고 축구를 합니다. 그 당시에 너무 열심히하여 과열되기도 하였습니다. 늘 제가 이기는 편입니다. 우리 평강이는 지면은 분을 못참아서 씩씩 거리곤하였습니다. 악짝같이 공을 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축구를 잘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만약에 축구놀이를 한다면 당연히 제가 지겠지요? 아빠에게 져도 별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기고 지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낙망치 않는 믿음으로 바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3. 기도와 믿음의 관계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갑자기 말세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라고 믿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낙망은 하나님을 우리의 기도를 들지 않으시는 불의한 분으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의심하면 안됩니다.

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낙망입니다. 관계를 의심하면 기도하지 않게됩니다. 그러면 곧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사이에 낙망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또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망각은 낙망을 불러옵니다.

기도의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믿음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믿지 않고 기도하는 것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은 끊질기게 기도하는 것, 그리고 오래 동안 기도하는 것의 주제가 아닙니다. 이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있을 때에 각지파에서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0명은 우리는 메뚜기고 올라가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명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올라가서 능히 차지 할수있다는 믿음의 말입니다. 여러분 나라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기 시작하면 그 여론을 잠제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한 방송국에서 미국산 소고기의 부정적인 여론을 뻐프려 온 국민이 그로인하여 큰 낙심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일어나서 2명의 지도자를 죽이려고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때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민수기 14장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때가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가 핵심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믿음이고 우리가 응답받는 것도 하나님의 아버지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믿음입니다.

4. 믿음이 없는 기도의 모습들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세인은 자신의 의로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멸시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토색하고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자랑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기도입니다. 자신은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기도를 한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3번 사용하고 능동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수동태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긍휼함을 얻는 기도이빈다. 보통 유대인은 성전이 아니 여인의 뜰입니다. 세리는 성전도 아니고 여인들의 뜰도 아니고 이방인들이 있는 곳, 짐승들을 파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덮어달라 (grant)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로 불의한 자신을 덮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불의한 자신을 덮어달라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의롭다하심을 나타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것이 기도입니다.

비유는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의로운 기도인 것입니다. 과부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간청의 기도, 헬라어로 에크디케오라는 말은 복수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 세 자매의 청원 : 아버지를 사형시켜주세요. 어머니를 살해하고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으려고 합니다. 세상에 나오시면 또 저희들을 때리고 해꼬지하려고합니다. 늘 아버지는 어머니와 저희들을 때리면서 짐승도 때리면 말을 듣는다고 하면서 사소한 일에 손찌검을 했습니다. )

결론입니다.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는 이상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바리세인처럼 자랑으로 기도하지 않고 세리처럼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옷자락을 덮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 나라에는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2. 교회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3. 우리 모두든 주의 종들에게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4.  교회를 통하여 수많은 영원들이 구원받고 선한 일꾼들이 많아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흐뭍하게 하는 교회되게하여 주옵소서

5. 목사님에게 다윗과 같이 믿음을 주시고 요셉과 같이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주셔서 이 교회를 이끌어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6.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입에 허락하시사 우리에게 꼭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시간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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