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편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2018-10-01 17:01:45


시편 126편 기쁨으로 그 곡식 단 (추석)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미라클 프럼 헤븐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수의사의 가정의 자녀들은 딸들만 3명입니다. 그중 2째 중간아이인 에나가 배가 불러오는 불치병에 걸리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이 에나 어머니에게 이렇게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집안에 죄가 있어서 그래요 회개하셔야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고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그리고 같이 중보기도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에나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텍사스에서 보스톤까지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하여 찾아갑니다. 보스톤에 멕시코 출신의 세계 최고의 의사가 있는데 예약이 몇 달째 꽉차서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 대한 치료의 갈망이 무작정 올라가서 그곳에서 접수를 합니다.

그러나 병원의 담당직원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수 없는일이라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려 한번 이야기 해보겠다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는 과정속에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중에 자신의 집 앞 정원에 큰 고목(古木)이있는데 속이 썩은지 모르고 올라가다 그만 그곳에 빠지게 되고 온 가족과 주의 이웃이 함께 기도함으로 병도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에나는 병중에 있으면서도 전도하게 되고 교회에서 간증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성도들의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나를 더 연단하게 하면 더 강하게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식물은 자라면서 씨앗을 뿌리고 또 종족을 번식합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것을 소유하고 기쁨을 누리지만 크게 2가지의 것을 얻으려고합니다 1) 소유의 기쁨, 자신이 돈을 많이 소유하고 지식을 많이 소유하는 기쁨입니다. 2) 되고자하는 욕망입니다.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욕망, 국회의원이 되고자하는 욕망, 사장과 임원이 되고자하는 욕망입니다. 이 모든 것을 소유하더라도 인생 마지막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네가 무엇을 소유하여 그것을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을 남기는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누리고 먹고 마시고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보상이 없지만 내가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고 섬기는 것이 우리에 하나님의 나라에 보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김혜자 집사님이 가끔씩 주보의 오탈자를 지적해줍니다. 그러면 고친다고 하면서 그것을 노치고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처야할 주보를 강대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정확하게고치게되었습니다. 우리 김혜자 집사님이 주인날 주보 내용중에서 오탈자가 된 부분을 적어서 성전에 올리셨습니다. 오탈자에 대한 제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1. 그때그때 타이핑을 해서 자막을 만들던 시절. “예수는 주, 예수는 중.”

2. “나 누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3. ‘급함보다는 바름과 옳음’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해프닝은 늘 서두름으로 올 때가 많습니다. 옛 어른들이 했던 말 “바쁠수록 쉬어가고 돌아가라!”이 시간에 우리는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때 찾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박자만 쉬어보세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될 것이며, 당신의 분노도 잠재우게 될 것입니다.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6편의 시작에 앞서 성경의 제목은 이렇게 달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여러분들은 주일날 먼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일부터 시작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입니다. 복의 시작은 풍성한 단의 축복은 예배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랫고, 야곱이 그리했으면 다윗이 그리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복을 받은 것이 청교도 시절이나 그리고 지금도 마찮가지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좋은 옷을 입고 마치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교회오는 것을 먼저하는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면 가정에 자녀들이 온다고 교회를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두 번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에 이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하나님께 바벨론을 통하여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70년만에 메데와 바사의 왕 고래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문제인정부가 교회의 생각과 사상이 다르지만 저는 한주간 동안 문제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의 모습을 보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수 하지 말아야할 것은 늘 전쟁의 위협과 핵의 위협에서 준비는 해야합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였을 때에 우리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배를 사가지고 한국인들과 함께 여수로 들어왔다는 말을 우리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광복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여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저희 아버지를 만나 저희 가족 5남매를 낳게 되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면 항상 고향인 대전과 광주를 가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고향에 가면 잠자리도 부족하고 여럽지만 그래서도 함께 있는 것 자체로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포로에서 자유를 주시는 주님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역사는 노예생활과 광야생활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반부고, 그리고 후반부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노예 생활에서 유수되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광야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인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해방이된 것도 아니고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열심히는 하였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독립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구원의 은혜도 마찮가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광야라는 말의 어원은 ‘다바르’ 즉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조요한 곳입니다. 광야는 외롭고 힘든 곳입니다. 우리의 생활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은 언제입니다. 고요한 환경입니다. 외로운 시간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가난해지고 그리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지성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어의 광야는 Desert,입니다. 버려진 땅입니다. 히브리어는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합니다. 광야 ‘미드바르’로 표현한 유대인들의 사고에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유대인들의 애착과 설렘이 묻어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라고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를 ‘드비르’라고합니다. 이 단어는 ‘미드바르’에 어근이 모두 같습니다. 서양인들에게 버려진 땅인 광야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지성소와 개념이 같습니다.

◉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남방의 시내들 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필리핀처럼 우기와 건기가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남방의 시내가 물이 없는 그냥 와디입니다. 메마른 하천입니다. 그런데 우기철이 되면 시내가 되고 강이 되는 그런 시내들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입니다. 하나님이 남방시내들 같이 돌려보내 주신 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전혀 복음의 불모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한말 지금부터 130여년전 복음을 들고 오신 선교사님들에 의하여 이땅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의 축복의 단비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추석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가 쓴 ‘나는 매일 죽노라’ 하는 책을 최근에 읽어보았습니다. 그 안에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젊은 목사 시절, 조그마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참한 자매가 있었는데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새벽에 나와서 기도도 많이 하고, 교회 안의 봉사도 남보다 먼저 뛰어 가서 하려고 애를 쓰는 자매였습니다. 그러니 목사가 볼 때 자연히 정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눈여겨보는데 그 자매 남편이 문제였습니다. 우편 집배원인데 예수를 안 믿습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술을 먹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무조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겁니다. 한번은 그 남자를 찾아가서 왜 아내를 그렇게 때리느냐고 했더니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내가 내 여편네 패는데 웬 간섭이냐? 무슨 말참견이냐?’ 하고 달려들더랍니다. 그러니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지요. 어느 날 그 집 아들이 목사님에게 달려와서 엄마가 죽었다고 울고 야단입니다. 놀래서 달려가 보았더니 술을 먹고 들어와 목침으로 자기 부인을 때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절을 하고 마당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부인을 등에 업고 보건소로 뛰어 갔습니다.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목사님은 자기가 두들겨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예수 믿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시간쯤 그 남편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선생, 오늘 저녁에 나하고 교회 갑시다.’ 그랬더니 술을 안 먹고 있을 때는 멀쩡하기 때문에 ‘네, 그러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밥을 먹고 나더니 화장실 갔다 온다며 슬그머니 나가는 것입니다. 도망가는구나 싶어서 급히 따라 갔습니다. 목사님이 자기를 따라오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30분이 되도록 안 나옵니다. 교회에서는 벌써 초종을 치고 있습니다. 초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옛날에는 종을 두 번 쳤습니다. 예비 종을 한번 치고 30분 후에 두 번째 종을 쳤습니다. 그래도 이 목사님은 작심을 하고 떠나지 않고 ‘음, 음’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 남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정말 지독하네’라고 내뱉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의 바지춤을 잡고 교회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유단자인 두 젊은이들을 양쪽에 앉혀서 예배를 보게 했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준비한 설교는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말 눈물겨운 감정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인생이 한번 밖에 없는데 어떻게 술을 먹고 아내를 때려 가면서 사는가? 그런 짓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는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다해 갈 때쯤 해서 유심히 그 남자를 쳐다보았는데 울고 있더랍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 사람이 ‘목사님, 오늘부터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내일 새벽부터 새벽종 치는 것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맡겨 줬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새벽마다 종을 치는 것입니다. 술도 끊고 아내를 때리던 그 나쁜 습관도 고쳤습니다. 집배원이기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전도할 기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편지 왔어요.’ 하고는 그 다음에 반드시 ‘천국에서 또 편지 하나 온 것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람이 됐는지요. 어느 날 목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집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천사 같습니까?’ 목사님이 속으로 ‘이제 알았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서울 삼양동 어디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정말로 팔자 고친 사람 아닙니까?하나님을 믿으면 가정에 평화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이사야 52:7).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 10:14~15).

3.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을 뿌려야합니까? 기쁨의 단이 있습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흙을 통하여 사람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생기를 통하여 우리의 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2:7) 우리는 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고있습니다. 매순간 매일 그것이 발생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우리가 일하고, 사업을 하고 노동을 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 주일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만 보고 살면 영적인 감각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루 한 시간 정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하여 투자해야합니다. 그것이 새벽예배이고 그것이 나 홀로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인생이란 매일매일 산을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하나의 산을 간신히 넘으면 그보다 더 높은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게 하시는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높고 결정적인 ‘마지막 산’을 성공적으로 오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 운명적 마지막 산을 오르기 위한 연습으로서 일상의 삶 속에서 작은 산들을 계속 넘고 있습니다.” 작은 산들은 작은 유혹들이겠지요! 그러나 구원이라는 산을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지키며 살아간다면 매일 넘는 산들은 건강을 위한 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산을 올를 때에 성공의 산의 오를 때에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민주화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수많은 역경의 땀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배고품의 서러움 그리고 부도의 아픔을 우리가 격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기쁨의 단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날들을 책과 씨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대원아파트의 대추나무를 늘 생각해봅니다. 매년마다 새벽마다 비와 바람으로 떨어진 대추를 가끔 주서먹습니다. 내년에 내가 꼭 우리 성전 주변에다가 대추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것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리고 기쁨을 단을 거두워들이는 것은 사람 앞에서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말씀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까지 수많은 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496장)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비와 바람을 이겨내야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주일이 추석입니다. 하나님이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이 크게 지내는 명절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자랑하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입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나오는 사람들이 102명입니다. 그래서 102층입니다. 1620년 그해의 긴 겨울을 지나가고 봄에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결론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예배는 2018년동안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그리고 더 좋으신 하나님이 남은 생애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더 나타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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