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창세기 2장 25절

2018-09-08 12:12:46


부끄러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9월 9일

창세기 2장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에스라 9장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 지하철에서 침을 흘리고 자다가 잠에서 깨면 부끄럽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신도 모르게 방귀소리가 나올 때에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은 얼굴이 창피하고 화끈거리고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데 당혹스러운 감정이 부끄러움입니다. 정치인들의 공금횡령, 성추행사건들이 만 천하에 들통나게 될 때에 백성들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수 있습니다.

◉ 공자는 부끄러움을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하여 악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 사람에 있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짐승과 사람은 같은 영역이 많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합니다.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려고 하면 그것을 지키려고 으르릉 거리는 것들 이모든 것들은 짐승이나 사람이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짐승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입니다. 짐승은 잘못을 하거나 똥을 아무렇게나 쌓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짐승들끼리 교미를 하여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숨기려고합니다. 그것이 짐승과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회가 건전해지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부끄러움의 종류

1) 죄를 지었을 때에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창세기 2장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 부부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라. 죄를 짖기 전에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면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동산에 있는 나무로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부끄러움은 바로 죄입니다. 아담의 후애들도 이러한 죄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받게 되고 부끄러움이 죄를 짖게 됨으로 질병이 생기고, 정신적인 질병, 즉 스트레스, 노이로제, 열등감, 절망감, 자살충동, 인간과 인간 사이를 멀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로 처다 볼 수 없어 부끄러운 관계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끄러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였습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2) 목요일날 (2018년 9월 6일) 인터넷을 보니 박항서감독이 베트남에서 귀국하였습니다. 신문기자가 이렇게 썼습니다. ‘수많은 취재진에 부끄러워’ 수줍어서 부끄러웠습니다. 베트남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증오하였다고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메스컴에서는 박항서 감독을 칭찬하고 있는가? 미국의 전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전에 참여하여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였고 학살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사람 박항서감독이 베트남 축구를 준우승, 그리고 이번에는 4강까지 가게 하였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요즘은 대접을 받고 산다고합니다. 감사할 일이죠.

3)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가끔씩 할머니집에 방문하였는데 초등학교 학생시절에는 잘 모랐는데 옆집 사는 아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만났는데 중학교 때에 할머니집에 가니 여자 아이가 제법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숙스럽게 생각하면서 사랑이 싸트는 이야기의 책이였습니다. 사랑함으로 좋은 감정이 생기고 그로인하여 부끄러움이 오는 경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2. 기대하고 소망하는 일이 이루지면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빌립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번 우리나라가 아시안게임에서 축구가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말레지아에게 졌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축구선수들과 감독을 비평하는지 이번에 이기고 돌아와서 명예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대하는 일 소망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행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 (구유선 지음)의 책의 내용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4번이나 구태했습니다.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이 들어오자 남편은 제정신이 든 듯 구타를 멈추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문을 얼어주고 가정의 험악한 부부싸움이 끝이 난 것입니다. 얼른 경찰에 알리고 싶지만 경찰이 가고나면 또 아수라장이 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없이 맞고만 있었습니다. 남편은 경찰에게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얼굴은 콧등과 광대뼈에서 피가 흐르고 휴지로 피를 닦아내고있지만 뼈가 부스러진 듯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있습니다.

남편 부모는 10년 동안 대형 수퍼를 하였습니다. 결혼후 2년 뒤에 부모님을 떠나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상가분양을 해주었고, 건설회사에 취직하였고 다시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업체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결혼 7년 되던 해에 남편은 하나님을 만났으니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신학을 하면서 한번도 생활비를 가져오지 않았고 학위를 마치기까지 7년을 헌신하였습니다. 남편은 어린시절부터 교회만 다녔지 목회를 주도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신학적으로 깊어져 갔지만 남편의 신앙과 믿음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다는 이해가 안되는 신념은 결국 남편은 늘 기도원으로 줄행랑치게 했습니다. 초월은 인정하시만 초월적인 신앙은 현실세계에서 보편타당한 것이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보편 타당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내가 모두 해결하였습니다. 남편은 문제를 늘 피해 다니는 것이 정당한 것인양 떳떳해 했습니다. 신앙으로 나를 훈계했고 하나님은 게으름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하지 않고 신앙심만 같은 좋지 않은 신앙생활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인 부모님 밑에서, 어려서 엄마의 등에 업혀 부흥회를 다녔고, 교회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와 헤어져 산 이후 의지 대상이 없었습니다. 6살 언니, 5살 오빠는 의지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되었습니다. 나 혼자의 삶이였기 때문에 늘 묻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한가지 잘하는 것이 있는데 잘 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평안이 없습니다. 가정을 다르지 못하고 목회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목회는 쉬운 것 같지만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이 제게 들려주시는 기도제목은 어찌보면 그 가정에 부끄러운 요소들입니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제목으로 내 놓고 기도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남편의 폭력, 남편의 무능, 간통의 문제, 사기 당한 것들, 생계의 문제, 성격장애등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부끄러움을 주는 것입니다.

3.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는 삶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롬3:23,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시므로 우리가 당할 부끄러움을 골고다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부끄러움을 당해주셨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겨벗겨지시고, 채직과 조롱의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우리의 질병치료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놀라운 비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나라의 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사건을 내가 받아들이면 내가 구원받고, 그 사회가 받아들이면 그 사회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받아들이면 그 나라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수많은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가 그에 대하여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많은 도(道) 중에서 예수님을 잘 믿는 도(道)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아프카에서도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복을 받고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까?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로서는 그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은 이유는 십자가후에 부활, 그리고 천국의 기쁨을 위하여 참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를 사랑하사 구원을 주시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얻어지는 결과 부활의 영광이고 하늘 보좌에 앉는 놀라운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룸으로 얻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많은 창피를 당하면 참으로 없는 분노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싸우는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분노를 잘 참는 자가 성공하는 자입니다. 그 예가 바로 마시멜론의 이야기입니다. 4살 아이들에게 15분 참고 기다래면 상으로 마시멜론 한 개를 더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고 기다리는 아이가 성장하여 큰 일들을 이루는 것을 관찰한 이야기입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야고보서 1장 2절부터 4절까지,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빌 하이빌스 목사님은 “인내력은 인격이라는 무기고에 갖추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습니다. 인내 없이 신앙이 성장하지도 않고, 인생에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3.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

에스라 9장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책에서 10명의 기차 레일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10명중 누가 대표로 죽을 것인가?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1) 죽는 날이 가까운 노인 2) 힘없는 어린아이, 3) 아무직업도 없는 백수, 4) 장애인 5)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중환자 6) 삶을 포기한 노숙자 7) 신약을 발견한 과학자, 8) 수천억을 가진 자산가 9) 잘 가르치는 교수 10)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국회의원). 답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부끄러운 행동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1) 포도주를 먹고 골아 떨어진 노아, 2)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인을 판 아브라함, 3) 창세기 34: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4) 자신의 부하들은 열심히 전쟁하는데 자신은 그의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이는 다윗입니다. 5) 은 30을 갖기위하여 자신의 스승을 파는 가룟유다들이 있습니다.

우리 말 가운데 철면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입니다. 말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중국에 왕광원이라는 출세주의자가 있는데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윗사람들에게 아첨을 하고 낯간지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른는 사람입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시를 쓰면 정말 위대한 시라고 하면서 이태백도 따를 수없다고하다고 아첨을 하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 시를 쓰면 졸작이라고 하면서 그게 시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 심판이 무서울줄 모른 사람들입니다. 잘못된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큰 죄를 짖고 살인 죄를 짖고, 나라와 민족에 추악한 일들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하였어도 그의 후손들은 자신의 땅을 더 찾기 위하여 노력하는 후손들을 모면 부끄러움을 모른 사람들입니다. 이나라 이민족이 성수자들을 위하여 큐어축제 동생애가 전세계의 대세이므로 그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에스라 9장 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죄와 우상숭배로 인하여 포로생활 70년을 살아왔는데 다시 또 죄를 짖는 것입니다. 철면피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우상숭배와 이방여자를 취하여 살고 불륜과 음난이 팽배했고, 제사장들은 얼굴에 똥을 칠하고(말라기) 다녀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철면피입니다.

애국시인인 윤동주가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러분들은 죽는 날 까지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한 달의 수입과 지출을 통하여 흑자와 적자를 계산하며 남은 돈들은 은행에 집어넣고 미래를 위하여 저축하듯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부끄러운 날들보다는 더 보람되고 남을 도와주는 날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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