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용서

2018-05-22 08:49:01


주일설교 용서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5월 20일

지난 주일날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함께 예배드리지 못한 김옥자집사님이 함께 예배을 드리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집사님이 들어오시면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하시는데 제가 무슨 용서할 자격이 있습니까? 제가 기쁜데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집으로 들어왔을 때를 상상하여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께 나오면 행복하고 즐겁니다. 저는 한 주간을 살면서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포 중앙 도서관에서 책을 3권 빌렸습니다. 용서라는 고통, 나를 위한 선택 용서, 루터가 들려주는 죄와 용서 이야기를 읽으면 용서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삶속에서 3가지 삶을 꼭 살게 됩니다.

1) 죄를 짖지 않고 사는 삶 (예수님외에 없습니다)

2) 죄를 짖는데 죄의 값을 치루며 사는 삶

3) 죄있는데로 삶

2번과 3번이 우리의 모든 삶의 인생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2번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 죄 용서에 대한 연구를 가장 오랫동안 해온 분이 있습니다. 바로 마틴루터라는 분입니다. 루터는 1483년에 독일 만스펠트에서 광산업으로 성공한 집안의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1505년 에르푸르트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법학을 공부하였고 그해 여행을 하던중에 일생일대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번개가 치는 바람에 그는 쓰러졌고 함께 걷던 동료는 벼락에 맞아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다고 생각한 동료가 천벌이라는 벼락을 맞고 죽음을 당하자 갓 스물을 넘긴 청년 루터에게 불가사의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세상과 단절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 한 노신부님에게 죄와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듣게 되었고 그 핵심은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짖게 되는데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루터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강조한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카톨릭에서는 선행을 통하여 죄 용서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든 죄의 용서

세상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판사 검사 변호사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대한 죄의 댓가를 가장 공평하고 바르게 판단하는 방법으로 법을 만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죄의 성격과 무거운 정도들 따라서 죄 값을 치르도록하였습니다.

1) 보복법: 가장 오래된 법입니다. 구약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준다는 보복법입니다. 단순 명쾌해 보이지만 죄를 짓고 또 보복을 불러일으킴으로 악순환이 있었습니다.

2) 징역형

죄를 지으면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새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반성의 기회를 주는 체벌인 징역형이 두 번째 오래된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는 사형이라는 형벌도 있습니다.

3) 금전형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돈으로 대신함으로 그 과오를 깨닫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벌금형입니다. 잘못했으면 벌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죄를 벗어나기 위하여 면제부를 만들어서 죄용서의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틴루터에 의하여 잘 못된 면제부에 대하여 그 잘못된 부분이 들어나기는 했지만 천주교는 이것을 통하여 성전을 짖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틴루터는 죄를 벗어나는 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고 그는 죄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었습니다. 선행이란 구원의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자유와 구원의 징표인 것입니다.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든다는 스콜라주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루터는 선한 사람이 선행하는 주장을 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인이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태복음 7장 17절입니다.

루터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였습니다. 그런데 기존 가톨릭교회는 성서의 궈위는 인정하지만 인간중심의 종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성경의 해석을 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 세웠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은혜를 준다고 말하면서 인간이 율법의 의를 쌓는데 도움을 주는 능력으로만 이행했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선행으로 형성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수오지심 의지단야 羞惡之心 義之端也, 이뜻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군자의 의로움에 이르느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지은 죄에 대한 자각과 그 참회의 고백입니다. 동양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앞에서 이것을 루터는 하나님이 용서의 주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용서의 잘못된 견해들

1) 이창동 감독의 밀양 영화속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하는 주장하는 유괴살인범에게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채 삶을 포기하려 하는 내용입니다.

2) 이정향 감독의 오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말로 넘처납니다. 용서라는 단어도 참으로 달콤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아름다운 말이 용서받지 못할 자에 의하여 미끄러져 나올 때에 세상은 점점더 험악해지고 추잡해지는 것입니다.

제대로 반성해본적도 없는 자가 함부로 용서를 말하고 안전한 곳에 숨어 자신을 지키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입니다.

3) 한수산의 작품 용서하지 못하지만 이제 잊으려 한다.

1981년이었다. 작가 한수산(64·세종대 국문과 교수)은 당시 한 일간지에 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고 있었다. 아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과 함께 제주도에 살고 있던 그에게 낯모르는 두 사내가 나타나 “조사를 받으러 가자”며 서울로 데려간 것은 5월 어느 날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무작정 잡혀간 곳은 서울 서빙고동의 국군보안사령부. 그는 그곳에서 무지막지한 매질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그들이 강요하는 대답을 ‘진술’해야 했다. 그의 소설이 국가 원수를 모독하고 군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명목으로 끌려가 폭력과 고문을 당한 신문사 및 출판사 관계자가 6명 더 있었다.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내가 용서 할 수 있는가 한느 주제입니다. 이 소설의 전제는 비록 가해자가 사죄가 없더라도 내가 살기 위하여 사죄 없이 용서해보자는 내용입니다.

4) 종군 위안부 할머니의 용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전쟁의 총알받이로 우리나라의 젊은 남자들을 여성들은 성적인 위안부로 부잡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흔한 립서비스로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경제적으로 힘이있어서 위안부 소녀의 상을 세웠지만 필리핀은 워낙 돈을 많이 빌려서 그 돈의 위력 때문에 세운 위안부의 상을 스스로 파해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고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느 책의 글에서 이렇게 용서를 정의하였습니다. 창자까지 딸려나오지 않게하면서 내 몸 깊숙이 박힌 창을 스스로 뽑아내는 일 이것이 용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5. 세계 역사속에서 가해자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 고문 피해자와 나치 일당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들, IRA폭탄테러로 눈앞에서 딸을 잃은 아빠, 증오 범죄로 아들을 잃은 엄마, 성폭행으로 여동생을 잃은 언니, 강도 살인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일가족을 잃은 가장의 이야기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용서라는 무거운 주제입니다.

II. 성경속에서 용서

1) 구약의 요셉

요셉의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그는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증언으로 2년에 걸처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2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1) 먼저 원인제공자 형들을 어떻게하면 원수를 갑을까하는 마음입니다. 2) 아무 잘못없이 옥살이를 시킨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앙감의 생각들로 매일 고뇌하였을까? 아니면 그는 무엇을 하였을 까? 그는 성경에서보니 꿈을 꾸웠다고 하였고 그 꿈을 해석하는 일로 감옥생활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감옥속에서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희망과 꿈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을 보게됩니다. 그로인하여 그는 어린 시절의 꿈대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들을 만나게 되었고 형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여러분 수많은 영화를 보면 꼭 복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복수, 자신의 복수를 위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복수하면 또다른 복수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경우

다윗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무엘의 기름부음을 받는 시간에 아버지는 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불러 기름부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골리앗을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사울왕, 자신의 장인어른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13년동안이나 엉청난 고난을 받게 됩니다. 매일 밥먹고 도망다니는 일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생명사께 쌓아주셔거 그를 보호하십니다.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를 용서하고 그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죽게되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알고 있는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원수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큰 상을 받을 줄 알고 사울의 투구 (면류관, 투구에 금띠를 두른 것)와 팔 고리를 증거물로 가지고 가서 거짓말을 합니다. 다윗은 기뻐하기 보다 몹시 슬퍼하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자를 내가 감히 죽였도하고 그를 즉시 처형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숨긴 제사장들 놉땅의 제사장 85명을 죽이지만 다윗은 기름 부음받은 왕을 끝까지 존경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기쁘시게 여겨 그를 이스라엘의 최고 존경받는 왕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해하려는 사람들을 보복하면 자살하게 되지만 자신을 해려고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면 왕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용서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그 민족의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을 고처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이야기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라 예수님을 참람한 자로고 말하면 그를 처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할 때에 가야바와 바리세인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침뱃고 능욕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를 찌를 로마 군병들을 용서하며 죽었습니다. 저들은 저희의 하는 일을 모른다고 하시며 그들을 용서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고 천국에서 큰 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III. why 우리는 용서를 해야합니까?

1. 내가 살기 위하여 용서해야합니다.

마태복음 6장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매일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주문처럼 외우지 안나하는 생각이듭니다. 주기도문을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 신앙고백을 하면서 우리는 이 단어들을 무심고 잊고 암송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 그러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 하면 무엇 무엇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면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큰 돈을 탕함해준 사람이 아주 작은 물질을 탐강하지 않고 있을 때에 얼마나 화를 내시며 다시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리 많이는 안지만 여러분들을 통하여 많은 고통을 당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저는 용서를 했는데 그분들이 용서를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볼 때에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은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용서하고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용서하셨지만 현장에서 잡힌 여인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돌로 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여인을 사랑하기고 용서하기 위하여 너희중에 죄 없는자가 이 여인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료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먼저 죄를 사하여주시고 그리고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

결론입니다.

네게 잘못한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참을 수가 없습니다. 피가꺼꾸로 올라옵니다. 이를 갈게 됩니다. 울화통이 올라옵니다. 속이 뒤집힙니다.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하여 용서해야합니다. 내가 더 평안하기 위하여 용서해야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 화를 참으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기 힘들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참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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