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5장 마라의 쓴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의 보혈의 피와 같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기 14장에서 홍해에서 자신의 육적인 몸이 죽고 이제 영적으로 사는 세례의식을 받음으로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에 감격에 감사하여 모세의 노래 1.2에 해당되는 찬양과 경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3일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3일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중요한 숫자입니다.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살아나고 난뒤에 바벨론 백성들을 회개 시쳤습니다. 아브라함이 3일을 걸어서 모리야 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은 길면 길고 짧은면 무척이나 짧은 기간입니다. 여러분 3일 동안 금식해보적이 있으십니까? 3일동안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과 갈들을 하면서 살아간 기간이 이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대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기간은 3일 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부흥회를 하고 그리고 수련회를 가고 마음으로 기도로 작정기도를 하면 3일 뒤에는 여전히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부흥회를 참석하고 난뒤에 목이 쉬고 바르게 살겠다고 결심하면지만 다시 범죄하는 기간이 3일입니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엇을 마실까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에 6장에서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러분 가장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옷은 옛날 옷을 입어도 됩니다. 먹을 것입니까? 아닙니다. 안먹어도 40일은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15일을 넘지 못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3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찬양을 하고 그리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때에 마귀는 가만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넘어드리고 불평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마귀의 하루 종일 할 일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루종일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주시는 일입니다.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마라까지 가는 길에 잠깐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얼마나 뜨겁고 힘들은지 금방 차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도시락을 먹기 위하여 차에서 내렸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3일을 걸어간 것이 은혜입니다.

1. 왜 하나님은 마라를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신명기 8장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을 연단하여 더 큰 믿음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꼭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저나 여러분들이 꼭 같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은택을 잊는 것입니다. 그 감격의 예배를 잊고 그 감격의 홍해를 잊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환경이 어려우면 바로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시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2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무리는 환경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부였고 그리고 뱃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환경이 불안하니까? 그들은 환경에 일희일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평안히 잠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배안에 예수님에 능력의 주님이 있는데 그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이 누워계시는데 그들은 그분의 능력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종목표는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리고 주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며 하나님의 선민 내 소유가 되게 하시고 그리고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온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거룩한 백성, 성스럽고 깨끗한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 유대인 히브리인들을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어서 3일 걸어서 마침내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물을 입속에 넣어보니 얼마나 쓴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쓴 것도 만드셨다면 하나님은 단 것도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밑에 집 뚱뚱이 할아버지가 다리가 아파서 수술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그러면 치료하십니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하며 부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다면 하나님은 할아버지의 다리도 만드시고 그리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웃고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쓴물을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룻기서에 보면 나오미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들은 행복을 찾아서 모압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죽고 그리고 자녀 2명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룻기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행복 기쁨 즐거움이였지만 그녀의 삶속에서는 쓴물이였습니다.

● 인생에는 어려가지 쓴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죄의 쓴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짖게 되면 죽음의 쓴물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수 있었지만 죄를 지으므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의 쓴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수많은 아픔과 질병의 고통으로 고생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난의 쓴물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민족이 먹을 것이 없어서 조를 심고 그리고 옥수수 감자, 그리고 우리 외할머니 댁은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부황식품으로 그것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와 그리고 아프리카 전쟁으로 고생하는 시리아 지역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먹어서 살찌고 다른 한쪽에서는 못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없던 시절에 부족으로 인하여 많은 분들이 사치를 합니다. 어는 목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부인은 자신이 어린 시절 옷을 좋은 것을 못입어서 얼마나 많은 옷을 사는지 모릅니다. 이 여인을 미치게 하였다고합니다. 그 남편이 모든 유리를 다 때어서 버렸다고합니다. 옷을 입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여 점점 미처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모든 것이 만사형통으로 축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그 선악과로 유혹할까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실 때에 평안한 길만 주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몇가지 있지만 크게 2가지입니다.

1)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테스트입니다. 입증하는 것입니다.

2) 세상을 살 때에 항상 편안하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도록 더 큰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2. 문제 해결의 방법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기도와 십자가입니다.

모세는 불평소리를 들으면서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지만 기도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한 나무를 십자가로 보기는 어려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십자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였을 때에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놋 뱀을 만들어 그것을 바라봄으로 낫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요한복음 3장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든 뱀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 나무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모든 저주가 풀어지고 우리를 죄에서 속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여러 가지 질병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행동과 말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짖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한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회의 법도 법인 것입니다. 그 사회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고 심할 경우에는 감옥도 갑니다.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도 마찮가지입니다. 되도록 정직하게 음식물 쓰레기나 일반 쓰레기를 정확하게 버려야합니다. 그것도 법입니다. 부지 중에 법을 어길 수 있습니다. 교통법규도 마찮가지입니다. 되도록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도 마찮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을 베풀고 그리고 선을 쌓고 살고 그리고 교회에서 헌신하고 헌금하는 이유는 우리가 작은 씨앗을 심겨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앗이 바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전도서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공동번역에서는 1절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생각과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여러분 욥을 보십시오. 그는 참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매사에 죄를 짖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는 늘 욥기서 3장 25절의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공.25. 두려워하여 떨던 것이 들이닥쳤고 무서워하던 것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26. 평화, 평안, 안식은 간 곳이 없고 두려움만이 끝없이 밀려오는구나)

일본의사 중에서 임종시에 말을 조사한 사람들이 있다고합니다. 그러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죽는 사람들이 일찍 죽고 그리고 엉청난 고통 가운데 죽어간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 평안히 그리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고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죄를 짖지 않고 기쁘게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평안하게 살기 위하여 죄를 않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죄를 짖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늘 늘 어려움이 다가오는데 그때마다 불평하고 환경을 원망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이며 영적인 지도자인 워치만니는 자신이 20대 의사로서 사형선거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던중에 꿈에서 자신의 배가 양자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태산 같은 바위를 만나게 되었을 바위를 옴겨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강의 수위를 높일까? 바윗을 옴길까? 물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물의 수위를 높이면 믿음을 높이면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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