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20절 가치있는 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0월
사도행전 20장
-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남겼습니다.
세 가지 질문과 답을 통하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타인을 가엽게 여기고 온정을 베푸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당장 몇 시간 뒤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우리 평강이 결혼식과 장모님 장례식)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삽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사랑과 상호 의존을 통해 삶을 이어갑니다.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제가 잘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반에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장례희망을 목회자, 선교사, 의사라고 하였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영민한 청교도 지식인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는 안타깝게도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임종 직전, 배움을 갈망하는 청년들과 척박한 식민지 땅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약 779파운드)과 평생 모은 장서 400여 권을 대학에 기부하겠다는 유언.
당시 그가 기부한 돈은 식민지 정부의 1년 세금에 맞먹는 엄청난 거금이었으며, 지독한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뻔했던 대학을 살려내는 결정적인 종잣돈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의회는 그의 고결한 인성과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1639년, 학교의 이름을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로 공식 명명.
스탠퍼드 대학교를 세운 릴런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는 미국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주도한 철도왕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 및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당대 미국 최고의 자본가이자 거물 정치인이었습니다. 부부의 외아들인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는 하버드 대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아들은 16세 생일을 앞두고 부모와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 안타깝게도 장티푸스에 걸려 요절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을 모두 내 아이로 삼겠다” 부부는 하버드 총장의 조언과 자신들의 굳은 결심을 바탕으로, 1891년 자신들의 거대한 목장이 있던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땅에 아들의 이름을 딴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교(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를 설립했습니다.
- 사도 바울의 가치관(사명)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을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준비된 그릇 (바리새인, 가말리엘 문하생)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당대 최고의 지성과 열정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은 당대 유대교에서 가장 존경받던 최고의 율법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최고 명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것과 같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스스로를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 불렀습니다. 비록 방향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유대교 전통 수호)에 목숨을 걸 줄 아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그리스어(헬라어)와 문화에 능통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회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우리 목사님은 저에게 영어 단어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많이 공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먼저 가지 말고 일반학문을 배우고 신학교를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반대학교 한남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되었습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난것은 형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나무나 철로 된 우상으로 부처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한 만남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만남은 미신들처럼, 귀신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만남은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아내를 만나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에 사모가 도와주고, 사모가 어려울 때에 내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돕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인격적인 하나님이라시 내가 부를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고 답변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뛰어난 학문으로 열정으로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만났고 자신에게 사명을 주심을 알고 인생을 180도 변화된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율법을 배설물로 자신이 자랑하는 가문, 학벌, 바리새인의 특권들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배설물로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8).
바흐는 1685년 독일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어린 시절은 상실과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9세(1694년): 어머니(엘리자베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0세(1695년): 불과 몇 개월 뒤 아버지(요한 암브로시우스)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바흐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어린 바흐는 다행히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고 있던 14살 연상의 큰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손에 맡겨져 자랐습니다. 바흐는 형의 집에서 얹혀살며 음악을 배우고 건반 악기 연주법을 익혔는데, 형이 귀한 악보들을 캐비닛에 잠가두자 밤마다 달빛에 의지해 몰래 악보를 베껴 쓰며 음악을 독학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뮐하우젠의 블라지우스(Blasius) 교회를 비롯해 라이프치히 등 여러 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고 300여 곡에 달하는 교회 칸타타를 비롯한 위대한 음악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시의회 취임 예배를 위해 작곡한 초기 명작 칸타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로다(Gott ist mein König, BWV 71)>처럼, 그의 음악은 늘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Soli Deo Gloria)” 쓰였습니다.
필리핀에서늘 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 예수님께 받은 사명
사도행전 20장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의 사명은 예수님께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은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을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다메섹 도상에 받았고 이 복음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 길이 환난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방송에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공감의 능력’입니다. 그녀는 토크쇼에서 화려한 진행자로 서기보다, 언제나 고통받는 게스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치유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깊은 공감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녀 자신이 가장 어두운 바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잔혹하리만큼 불행했습니다.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고, 방황 속에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4살이라는 나이에 원치 않는 아이를 낳고 곧바로 잃어버리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 그녀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나며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모진 상처를 받아야 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상처는 저주가 아니라, 세상의 또 다른 아픈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늘이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소명을 찾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이 삶으로 세상을 섬기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믿는 ‘가치’를 향해 움직입니다. 어떤 이는 주식의 미래 가치를 믿기에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돈을 쪼개어 투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매일같이 복권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돈이 내 인생을 구원해 줄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믿기 때문에, 매일매일 그곳에 자신의 희망과 물질을 베팅하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이강형님)
“나에게 예수님은 정말 가치 있는 분인가? 주식이나 복권보다, 세상의 그 어떤 물질보다 더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분인가?”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생가와 그가 사역했던 교회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성스러운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한 사람의 가슴에 품어진 ‘꿈’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킹 목사님은 흑인과 백인이 철저히 분리되어 차별받던 어두운 시대 속에서, 마침내 위대한 선언을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그 꿈은 거창하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흑인의 자녀들과 백인의 자녀들이 편견 없이 손을 잡고, 한 식탁에 둘러앉아 친교를 나누는 것. 그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랑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평생의 기도였습니다. 킹 목사님은 이 거룩한 꿈을 단순히 머리로만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증오를 사랑으로, 폭력을 비폭력으로 이겨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 홍철기목사에 주시는 사명과 가치
신학교 동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외롭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묶어주신 소중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종국 목사님과 윤정열 목사님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먼저 학부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 하나만을 좇아 신학대학원에 모였습니다. 김종국 목사님은 성결교신학교를, 윤정열 목사님은 한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주의 길을 가기 위해 뜻을 같이했습니다. 일반 대학교를 졸업한 후, 세상의 가치와 성공을 뒤로한 채 오직 복음을 위해 M.Div.(목회학 석사) 과정에 뛰어든 우리들의 가슴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문학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을 통해 뼈아픈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1].”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와 똑같은 후회를 남깁니다. ‘그때 더 사랑할 걸’, ‘그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를 걸’, ‘그때 우물쭈물하지 말고 내 삶을 던져볼 걸’ 하면서 말입니다
- 사명을 이루는 꼭 필요한 것이 눈물입니다.
사도행전 20장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행전 20장 31절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장 37-38절 (장로들과의 작별) “다 크게 우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예수님도 3번 울었습니다.
1) 베다니에서 흘리신 ‘공감의 눈물’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2)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흘리신 ‘통곡의 눈물’ (누가복음 19장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3)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헌신의 눈물’ (히브리서 5장 7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우리 장모님 소천하기 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를 저에게 감사하다고 하시는 모습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사 아들 결혼식 뒤에 장례를 치룰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에 매여 가는 삶 (사도행전 20장 22절)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환난을 미리 경고하시고 동행하시는 성령 (사도행전 20장 23절)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교회의 리더를 세우시고 돌보시는 성령 (사도행전 20장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예수님도 사역하는 동안에 성령에 이끌렸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 말씀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국가대표팀 일부 선수들의 경솔하고 교만한 언행으로 인해 실제로 엄청난 사회적 공분과 제도 개편 여론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인터뷰나 SNS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가볍게 여기고 “군대에 안 간다”며 전역모를 쓰는 등 ‘군 면제 혜택’ 자체만을 자랑하는 교만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더 바울의 가치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립보서 1장 20절)
고백하신 고결한 삶의 목적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도 당당하게 외쳤던 신앙의 고백이자, 세상의 어떤 자본과 명예도 뛰어넘는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정답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목표일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위한 삶이 가치 없는 삶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가치 있는 일입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합니다.
손양원목사님의 가치는 복음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당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고 도망치던 한센병(나병) 환자들이 모인 여수 애양원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피고름이 흐르는 환자들의 발을 입으로 직접 빨아내며 치료하셨던 그 인성과 사랑은, 자신이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보물을 삶으로 나누어준 최고의 실천이었습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목사님의 사랑하는 두 아들(동인, 동신)을 총으로 쏘아 죽인 원수 안재선을 용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의 법과 자본의 논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 경이로운 사건은, 바울이 고백했던 “내 몸에서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준 기적이었습니다. 원수였던 양자 안재선은 아버지가 된 목사님의 사랑에 눈물 흘리며 훗날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치가 있기에 기꺼이 바친 순교,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성도들은 목사님께 피난을 가라고 간곡히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아픈 양 떼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끝까지 교회를 지키시다가 1950년 9월, 공산군에 의해 순교하셨습니다. 목사님에게 복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절대적 가치였기에, 그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두려움이 아닌 마땅한 영광이었습니다.
여수산돌교회는 1985년 3월 3일 서현식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