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1절,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6년 5월 15일 금요철야
느헤미야 1장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삼행시 소나기
소: 소방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가기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얼른 밖으로 나가서 구경했다.
나: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혀를 끌음하며 지켜보던 그때, 검은 연기 사이로 낯익은 지붕이 보였다.
기: 기절할 것만 같았다. 남의 집 불구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 불타고 있는 곳은 바로 나의 집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남의 집인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와 민족인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남의 일같지 않는 이유는 저 북한의 핵을 쥐고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나의 죄와 내 아버지 집의 죄’로 인하여 불이 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외줄을 타는 기분입니다. 미국과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고립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것도 국방의 문제로 경제적인 달러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노사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부와 사측에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잘 해결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번에 6월달에 있는 지방선거를 통하여 남남 갈등이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사, 페르시아의 술 맡은 관원자의 왕의 측근중에 측근입니다. 왕을 돌살 할 수 있기 때문에 왕의 신임을 얻는 사람이 등용됩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바사정부의 관원이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늘 이스라엘 생각으로 가득차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나의 집이 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안창호입니다. 박용만입니다. 하와이에서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했습니다. 서재필입니다. 미국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3·1 운동 이후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승만은 워싱턴 등지에서 우리나라 독립의 정당성을 홍보했습니다.
강대원 박사입니다. 반도체 핵심 기술인 ‘플래시 메모리’의 세계적인 과학자입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술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서남표 전 KAIST 총장: 미국 MIT 부총장을 역임한 세계적 석학으로 고국의 부름을 받아 KAIST 총장이 되었습니다.
-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
느헤미야 1장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서기 73년 경에 로마 제 10군단이 요새를 합락하기 전에 엘레아자르 벤 야일이 저항군 960명이 끝까지 항전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교리상 스스로 자살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자가 가족을 죽이고 남은 남자들은 제비를 뽑아 서로 죽이고 남은 한 사람은 스스로 자살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숨어있던 여자 2명과 어린아이 5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오늘까지 남아있습니다. 성이 문너지면 나라도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개인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 느헤미야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왕의 권력 밑에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강건너 불구경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중동에 전쟁으로 인하여 물가가 치솟고, 기름값이 오르는 현실입니다. 우리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족들이 어려움을 받고 있는 이 시간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우리 믿는 성도들의 할일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한 것은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으로 옳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기도 없는 행동은 교만이자 오판입니다. “기도만 하면 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기도가 생략된 열심은 결국 ‘내 마음대로’ 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택으로 이끕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전쟁터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 올라가리이까?”라고 먼저 물었습니다. 기도는 내 생각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는 가장 겸손한 행위입니다.
사무엘하 5장 19절 (개역개정)”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 기도하면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을 때, 왕은 이를 허락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 2:8).
세상의 전쟁, 물가, 외교의 모든 문제를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정세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제일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입니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이야기입니다.
정상 소정(수십 미터)을 앞둔 지점에서 힐러리가 발을 헛디뎌 깊은 빙하 틈인 ‘크레바스’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 텐징 노르가이는 자신의 몸이 끌려 들어갈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몸과 연결된 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나를 이끈 것은 텐징의 손이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힐러리가 훗날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까?” 그때 힐러리는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정상으로 이끈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 나를 놓지 않았던 텐징의 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이처럼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기도의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가와 안보라는 크레바스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가 위태롭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헤미야처럼, 텐징 노르가이처럼 ‘생명의 줄’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나만 살겠다고 줄을 끊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몸이 끌려가는 아픔이 있더라도 민족과 자녀를 위해 기도의 줄을 끝까지 붙드시겠습니까?
유승준은 1990년대 말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하며 대중과 국가 사이에 두터운 ‘신뢰의 줄’을 연결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입대를 앞두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병역을 면제받았습니다. 이는 대중의 눈에 “민족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나만 편하게 살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줄을 스스로 끊어버린 행위”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절망할 때 나오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느헤미야 1장 5절”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4절에서 울고 슬퍼하며 금식했습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다 끊어진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에 머물지 않고
5절의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정말 절망할 때, 물가와 전쟁의 위협에 우리 힘으로 힘쓰지 못했을 때에 기도해야합니다.
5절의 상황, 느헤미야의 상황보다 하나님이 더 크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에 회개로 이어지고, 남탓의 기도가 아니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34: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예레미야 33:1-3)”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절망 속에 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잠언 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마태복음 7: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할 것을 믿고 기도하는 엘리야 처럼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묻는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는 항상 “내가 올라가리이까?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먼저 물었습니다.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물’입니다타는 듯한 목마름이 가득한 사막에서 금이나 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한 모금의 물만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와 민족, 그리고 우리의 삶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과 같은 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경제의 가뭄, 안보의 가뭄, 신앙의 가뭄 속에서 우리를 다시 살릴 ‘생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영혼을 살리는 것은 오직 ‘기도’입니다. 사막에서 물이 생명이듯,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는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메마른 영혼에 하늘의 은혜를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멈추면 영혼이 죽고, 영혼이 죽으면 민족의 성벽도 무너집니다. 문제의 해결은 정치가나 경제학자의 손이 아니라, 무릎 꿇고 하늘 문을 여는 우리의 기도에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나의 심정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입니다. 사막에서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기도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가 유일한 해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하나님 우리교회는 왜 부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 교인들은 왜 변화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답변하셨습니다. 왜 성령을 구하지 않는냐?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매일 설교했는데요입니다. 설교가 아니라 성령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죽으려고 하는 순간, 네가 암에 걸려 시한부 생애를 살아가고 있을 때 처럼 간절히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성경책에 나는 성령만 알고 구하지 않으면 아볼로처럼 성경에만 능한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처럼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 사진)
- 지속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느헤미야 1장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마귀는 기도를 중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마귀는 기도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안된다고 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는 끝날 때까지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계속하고, 기도는 쉬지 않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줄이 잡히지 않고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계속 기도해야합니다.
말씀을 읽는 분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계속적으로 읽고 또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송은희는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게 될 때에 성경이 이해되고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몇칠 전에 우리 사모랑 성미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정상도 가지 않고 중간에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계속 산위를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왜요 하루도 빠짐 없이 산을 타기 때문입니다. 지속성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평강이가 광성고등학교 다닐 때에 차를 탈 때 나타나는 복통은 단순한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스트레스와 긴장이 장으로 전달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반면, 할머니 댁으로 향할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멀미와 복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학교가는 것이 아하나님의 집에서 편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