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3절
하늘문의 열리는 힘(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2월 22일 (26년전에 수색에서 개척한 날입니다)
개역개정 로마서 5장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저는 올해 우리 성도들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올래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문이 열리고, 성원순복음교회에서도 하늘문이 열려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기도하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큰 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잘 이겨 나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영적으로 더 귀합니다. 그러한 복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난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하는 말씀을 증거하려고합니다.
- 장개석과 이승만
서울지역연합회 목사님들과 함께 대만에 작년 11월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2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 초대대통령 이승만 대통령과 장개석 총통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부흥하고 발전하여 마을마다 교회당이 들어섰는데 대만에서는 기독교 인구가 별로 되지 않습니다.
대만 인구 약 2,355만 명이며, 그중 기독교인(가톨릭 포함)은 약 140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약 5.9%에 해당합니다.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4%에서 7% 미만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대만 내 소수 민족 9개 인종 그룹에서는 약 80%가 기독교 신자도 있습니다.
대만의 장개석 전 총통은 원래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나, 정치적 동반자이자 아내인 쑹메이링(송미령)과의 결혼을 계기로 개신교(감리교)로 개종했습니다. 1927년 장제스는 쑹메이링(송미령)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인 예계진(Ni Kwei-tseng)으로부터 기독교 개종 및 성경 공부를 조건으로 제시 받았습니다. 장제스는 약속을 지켜 성경을 연구했고, 1930년 10월 23일 상하이에서 강장천 목사에게 감리교 세례를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정략적 개종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1936년 ‘시안 사건’으로 감금되었을 때 성경을 읽으며 큰 위안을 얻은 이후 신앙이 더욱 깊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2026년 1월 기준 총 699,119점의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중국 황실의 수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70만 점에 달하는 유물 중 전시 공간의 한계로 인해 한 번에 약 15,000점 정도만 전시됩니다. 유물 보호를 위해 3개월마다 전시 품목을 교체하는데, 모든 소장품을 한 번씩 다 보는 데만 약 60년~1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소장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도서문헌 및 희귀서적이며, 그 외에도 도자기, 옥기, 회화, 청동기 등 중국 역사를 아우르는 보물들이 가득합니다. 옥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취옥백채(배추)와 동파육을 닮은 육형석은 박물관의 상징과도 같은 인기 작품입니다.
- 홍성규 아버지 이력
저희 아버님은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1953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예술 전문 대학으로, 1972년 중앙대학교가 인수하여 지금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대전에서 저희 집에서 동양화가 출신의 어르신들이 모여서 그림을 한점씩 그리시곤 하였습니다. 그때에 우리 아버지의 그림이 가장 돗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분들은 어깨 넘어로 배우셨는데 우리 아버지는 직접 미술교수로부터 뎃생과 그림에 대한 기초를 배우셨습니다. 그런데 삶에는 무척이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사주셔야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직접 팔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아버지는 그림을 검증 받을 국전이나 교수의 일을 하지 않고 제야화가로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고독한 화가의 길을 가시면서 생활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힘들고 어려운 성경의 인물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우리 인생도 ‘얼마나 팔렸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을 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 고흐와 피카소의 삶
빈센트 반 고흐: 전형적인 비운의 천재입니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붉은 포도밭)만 팔렸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과 정신 질환에 시달렸으며, 37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인물입니다. 91세까지 장수하며 5만 점 이상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고, 이미 20대에 화단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고흐는 자신의 내면적 감정과 고통을 캔버스에 쏟아냈습니다. 강렬한 색채, 소용돌이치는 붓 터치가 특징이며, 감상자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합니다.
피카소 (입체주의의 창시):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는 말처럼 시각적 관습을 파괴하는 실험에 집중했습니다.
- 우리성도들과 홍철기목사의 삶
우리 동생들이 저에게 정말 존경한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한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면을 볼 때에 정말 존경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사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은 큰 교회 목사님들이 존경을 받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한 곳에서 사역하시는 모습을 볼 때에 귀한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좀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하여 성도들이 조금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설명절에 덕담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여러가지 물질적인 고통과 질병적인 고통을 볼 때에 그 고통을 잘 이겨나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통하여 물질적인 고통을 격고 있는 분들이나 질병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셔서 소망하는 하늘문이 열리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우리 아들이 준비한 선물(다영이네) 이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깜빡하고 아니면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데 사랑의 방법이 서투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비교하고 못했다고 하기 보다는 참고 기다리면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전의 한면만 보지만 하나님은 동전의 양면을 다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그와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공의로만 살수 없습니다 사회가 검찰 경찰로마 다스리면 세상은 삭막해지고 공산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나라가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때려잡으려는 나라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사회를 공의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은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럴때에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그 사랑의 눈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경찰서도 필요하지만 교회가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경찰서 10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한개가 더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가정에서 아버지의 공의가 필요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자녀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소천중에서도 아버지의 소천보다 어머니의 소천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한 차원 더 높이 주시는 영적인 말씀, 하늘문이 여는 일상의 힘 2
-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성경적 관점에서 환난(Tribulation)은 힘든 상황을 넘어 고통을 잘 이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치 포도를 틀에 넣고 짜서 즙을 내는 강한 압착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들리립시스(thlipsis)’이며 이는 ‘압박’이나 ‘짓누름’을 뜻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환난이라는 여러가지 요소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신앙의 핍박으로 어떤 사람들은 물질의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난으로 우리 안에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은 누르는 고통을 참고 잘 견디면 나의 불순물이 제거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자녀를 낳을 때의 해산의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남성보다 여성들이 자녀를 아끼는 마음이 탁월합니다. 그 이유는 고통을 통하여 낳은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16:21)
가을에 추수하는 알곡을 압착을 통하여 곡식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겉껍질에 싸인 알곡이 부서지고 눌려야 비로소 생명의 정수인 가루가 되어 누군가를 먹이는 양식이 됩니다.
지금의 환난이 우리에게 파멸인 것 같지만 그것은 귀한 가치 알곡을 얻기 위한 진행 과정임을 알아야합니다. 마치 요셉이 그가 환난을 당할 떼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형통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과, 직장인들이 수고의 일들을 통하여 얻는 물질의 보상과 같은 것입니다.
-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인내(Endurance)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힘있게 짚어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견디다 버티다라는 의미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투쟁하여 승리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승리를 위하여 참고 기다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헬라어 원어적 의미는 휘포모네(Hupomone): ‘아래(Hupo)’와 ‘머물다(Mone)’의 합성어입니다. 즉, 아래서 신음하고 고통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시련 무게 아래서 굴복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참고 인내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4)
인내는 고난을 재료 삼아서 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쌀이 맷돌에 눌리어 고운 가루가 되고 먹기좋은 떡이 되듯이 인내는 사람을 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공부든 사업이든 신앙생활이든 삶의 무게든 지금 싸워서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저희 친할아버지가 치과의사셨는데 금을 녹이고 난 뒤에 염산에 금에 있는 불순물을 빼어내어 정금을 만든 후 금 잇발을 만들어냅니다. 고난과 연단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Approved)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1) 뜨거운 불(시련): 금을 녹이는 높은 온도는 고통스럽지만, 그 불꽃이 있어야만 금 속에 섞인 잡다한 찌꺼기들이 분리됩니다. 우리 삶의 시련도 우리 인격의 불순물을 태우는 불과 같습니다.
2) 염산의 세척(정화): 뜨거운 불을 통과한 후에도 남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과정입니다. 이는 우리가 시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욱 정결한 인격으로 다듬어지는 단계를 상징합니다.
3) 틀(가다)에 붓기(형성): 정금이 된 액체는 비로소 제작자가 의도한 정교한 틀에 부어집니다. 하나님 혹은 삶의 목적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검증된 인격의 틀’에 맞추어지는 순간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불같은 시험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피에 녹아져 여러분들의 불순물들이 뽑아져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틀에 비로서 귀하게 쓰임받은 그릇으로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 지크프리트는(독일 신화) 보물을 지키던 용 파프너를 죽인 후 그 피로 목욕을 하여 상처를 입지 않는 무적의 몸이 되었습니다. 낙엽의 결점: 목욕을 할 때 보리수 잎(Linden leaf) 하나가 그의 어깨(또는 등) 사이에 떨어져 붙는 바람에 그 부분만 피가 닿지 않았습니다. 지크프리트는 결국 그 부위에 창을 맞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 아킬레스(그리스 신화): 어머니 테티스가 아기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담글 때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발뒤꿈치가 약점이 되었습니다. ‘거의 완벽한 불사신이지만 단 한 곳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흙 속의 공기를 빼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흙을 밝고 치댑니다. 토기장이는 모양을 잡기 위하여 버릴 것 버리고 자를 것 잘라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천도가 넘는 가마 불 길 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아름다운 자기가 됩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은 찬송가 작시자로 유명한 패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는 시각장애라는 큰 시련 속에서도 “예수 인도하시니 내게 부족함 없네”라고 노래했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갈 길 속에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이 아름다운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지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맹수로 부터 나를 보호해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4)
그래서 오늘 본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더 위대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환난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환란 가운데서도 더 큰 믿음의 신앙은 그것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으로 인내를 배우고 인내로서 하늘의 소망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야고보서 5:11, 개역개정)
욥은 철저한 고난을 격었지만 그의 인내로 인하여 갑절의 은혜를 얻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욥기서는 제난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의 결말 완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라고 고백입니다. 욥의 고통은 욥을 죽이는 독이 아닙니다. 나를 정금같이 만들어 찬란한 영광에 입니다.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라디오의 시대가 아니라 TV로 보는 세상입니다. 옛날의 컴퓨터는 지식을 얻는 세상이였지만 지금 chet GPT로 세상을 모든 지식을 함축하여 알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다윗도 고난을 통하여 시편 34편 19절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예수님도 고난을 통하여 요한복음 16장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베드로도 고난을 통하여 베드로전서 1장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