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 1절 만남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월 30일 금요철야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야 숨쉬고 살아갈 수 있듯이,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진정한 행복과 삶의 활력을 누릴 수 있어요. 좋은 만남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힘이 되어주고, 함께할 때 삶이 더 풍성함입니다. 혼자서 이겨나가려 하지만 안될 때에 좋은 사람과 함께 기도함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침 드라마 보더 더 흥미롭습니다. 롯은 이방여인입니다. 거지로 이방 땅에 온 이방여인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를 만남으로 완전히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다윗의 증조모,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시모를 위하여 이삭을 줍는 일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보이셨는지 보아스를 보내어 그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부자이면 친절한 사람입니다. 이 성실한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줍니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헤세드(hešed)’ 즉,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룻기 3장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우리 임경애 성도가 우리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죽고 의지할 때가 없는데 우리 편목사님의 도움과 성원순복음교회의 도움으로 지금은 주일마다 매주일 오후예배까지 참석하고 있는 가장 믿음 좋은 성도로서 자라고 있습니다.
- 세상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개역개정 룻기 2장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성경은 ‘우연히’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그 복선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남편 죽고,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방 땅으로 온 룻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이삭을 줍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기막힌 우연입니다. 수많은 밭도 있는데 보아의 밭입니다. 여러분 회사 사장은 잘 나타나지 않는 우연히 회사 사장이 나타나 자신의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우연히 발탁이 되어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일개 경리가 사장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 파인 촌뜨기들)
‘우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우연이란, 신이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신의 가명이다.”라는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 즉, 어떤 일이 ‘우연’이라고 불릴 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이름이나 뜻을 드러내지 않고 작가의 가명처럼 은밀하게, 간접적으로 일하시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건을 통치하시며 섭리로 보존하시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점을 시사해요. 즉 ‘우연’은 겉으로 보이는 우발적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 뜻과 계획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신앙적 해석이죠.
“Chance is perhaps the pseudonym of God when he did not want to sign.” — Anatole France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가사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였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힘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부모에게 잘해야합니다.
요즘 세대는 MG 세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맞추어주고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잘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버릇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른 것을 가르처 주어야합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장모님을 보내주셨는지 알았습니다. 먼저 효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MG 할아버지에게도 절대로 노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다가 요한 계시록을 작성하는 놀라운 은혜를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즘 MG 세대는 시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대 시누이, 시부모를 싫어합니다. 음식까지 시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시금치를 싫어하고, 믿는 성도도 시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편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부모님에게 잘하였으니 너도 잘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에게 인사 잘하고 그리고 정직하게 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야합니다. 인사만 잘해도 인정을 받았을 수 있고 우연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정직할 때에 회사에서 쓰임받고 교회에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범섭이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추천서를 써주어서 잘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실하게 일하는 범섭이에게 추천서를 써주었습니다. 범섭이가 열심히 성가대하고 열심히 봉사하여서 제가 정말 열심히 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여 지금은 서울대 방사선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성실하지 않는 성도들을 추천할 수 있습니까? 성실하지 않고 핸드폰만 보는 학생들을 추천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연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을 잘 따르고 실천하는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직접 나오지 않아서 신기하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가 숨겨져 있어요. 사용자가 말씀하신 대로, 아하수에로 왕이 왕들의 기록을 살펴보다가 모르드게가 반란 음모를 막은 일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보상 명령을 내리죠. 이때 하만이 등장하는데, 그가 자기 욕심대로 일을 꾸미면서 이야기가 흘러가요.
에스더 6장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섭리가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그의 백성을 도우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늦어지는 것도 은혜”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타이밍과 계획이 사람 눈에는 늦거나 이해되지 않아도 결국에는 최상의 결과를 이루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답니다.
에스더의 이런 점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삶 속에서 일하시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신다는 큰 믿음과 용기를 주죠.
하만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왕에게 “유대인들을 멸절시키고 그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허락”을 받는 것이었어요. 즉, 자기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보복을 추진하며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던 거죠. 그는 왕에게 유대인들이 자신의 법과 왕의 법을 어긴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며
한 처녀가 길을 가다 혹은 차 안에서 우연히 부자인 할머니를 만나게 돼요. 할머니는 그 처녀의 정성스러운 마음과 예의 바른 태도에 감동하여, 집으로 초대하거나 특별한 배려를 해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처녀는 할머니와 가족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게 되고, 결국 며느리로 맞이되어 축복받는 가정을 이루게 되죠.
열왕기하 8장에서 (1~6절)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7년 기근이 닥칠 것을 예고하며 피신을 권합니다. 여인은 가족과 함께 블레셋 땅으로 떠나 7년을 보냅니다. 기근이 끝난 후 돌아왔으나, 이미 남편은 죽고 과부가 된 상태였으며 집과 밭은 남의 손에 넘어가 있었습니다. 여인이 땅을 돌려달라고 왕에게 청원하러 간 순간, 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로부터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기적”에 대해 듣고 있었습니다. 마침 여인이 나타나 증언하자, 왕은 한 관리를 임명하여 그녀의 모든 소유는 물론, 떠나 있는 동안 그 밭에서 거둔 7년 치 소출까지 모두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 성실한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립니다.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룻의 이야기의 핵심은 시어머니에ㅔ 대한 신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킨 이방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를 때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이다”
시어머니를 위하여 베들레헴에서 이삭을 줍게됩니다. 그 때에 만난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가문의 기업 무를 자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의 가정에 다시 회복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만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룻의 일생은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그 사역에 동참하는 인간의 몫이 무엇인가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보아스가 묻습니다. 누구의 소녀이냐? 그 때에 사환이 대답합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오는 모압소년이라고, 이 말속에 담겨있는 두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오미 마라, 쓴물과 같은 인생인 망한 가정에 따라온 신실한 소녀라는 것입니다. 의리입니다. 믿음입니다. 신뢰입니다. 둘째는 성실하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소녀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정말 능력이 많은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감나무에 감이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성도들입니다.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도 사랑하지만 더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저는 성도들이 헌금하지 않을 때에 주의 종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연락이 옵니다. 자신의 남편과 함께 오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해야할 일이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맡겨진 사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강가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루디아 옷 파는 여인을 만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의 가정에 복이 임하고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잘못만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잘못만나고 있어도 하나님은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해 노예로 팔아버린 사건은 인간적으로 보면 지독한 잘못된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요셉은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20)
노예가 ‘총리’로 가는 훈련소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간 것은 요셉에게 절망이었으나, 그곳에서의 만남은 요셉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며 한 국가를 다스리기 전 가정 총무로서 경영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에게 신임을 얻어 모든 소유를 위탁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디발 아내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은 왕의 죄수들을 만나는 곳이었고 결국 파라오에게 나아가는 결정적인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정교한 인도하심으로 설명합니다.
한나와 브니나의 관계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갈등을 통해 한나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넣으시고 이스라엘의 영적 판도를 바꾸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브니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심하게 격분시켰습니다. 성경은 브니나를 한나의 ‘적수’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평온한 삶이었다면 한나는 적당히 안주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브니나의 괴롭힘은 한나로 하여금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만 매달리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한나는 브니나 때문에 울며 먹지 못하는 슬픔 속에 있었지만, 결국 그 고통을 안고 실로의 성막으로 나아갔습니다. 브니나의 격분시킴이 없었다면, 한나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나실인 서원'(사무엘상 1:11)까지 나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를 통해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복음 18:1)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조차, 끈질기게 찾아와 호소하는 과부의 번거로움 때문에 결국 그 원한을 풀어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나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를 때 낙심합니다. 갈라디아서 6:9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약속합니다. 낙심은 응답의 문턱에서 멈추게 만드는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