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2절 습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1월 24일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

 

복음성가 (약한 자로 강하게) 약한 자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후렴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복음성가 (문들어 머리 들어라)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 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 가신다(x2)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

 

 

1987년도 올림픽하기 1년 전에 필리핀으로 신학공부를 하러 가게되었습니다. 필리핀에 가보니 마카티라는 곳은 얼마나 잘사는지 우리 나라보다 잘사는 동내입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하러 간 곳은 Baguio시라는 곳입니다. 그곳에 갔는 길에 보니 대부분의 동내가 못하는 동내입니다. 빈부의 차가 엄청나게 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이 못하는 동내를 지나서 신학교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별천지인 것입니다. 전 세계 순복음 신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는 곳입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이 돈을 들여 건축사와 건설업자들이 세웠는데 너무 잘 짓고 고급스럽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내에 내려가니 너무나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업고 나온 작은 아이들 너무나 불쌍하고 냄세도 나고 하여 동내에 내려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을 보니 너무 행복한 것입니다. 매일 농구하고 매일 함께 모여서 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은 다른 곳입니다. 그렇게만 살기 때문에 경제적인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불편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일하고 공부하지 않고 늘 농구만 하는 백성들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그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문화를 보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 위에서 사는 민족은 주로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바자우족(Bajau)으로, ‘바다의 유목민’ 또는 ‘바다의 집시’로 불리며 수상 가옥이나 배 위에서 생활하고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무국적 소수 민족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수영과 잠수에 능하며 바다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평생을 물 위에서 보냅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이의 산호초 바다(술루해 등). ‘바다의 유목민’으로 불립니다. 평생을 배(레파레파) 위에서 보내거나 얕은 바다에 수상 가옥을 짓고 삽니다. 수천 년간의 잠수 생활로 인해 비장이 일반인보다 50% 정도 더 크며, 장시간(최대 13분 이상) 잠수가 가능하도록 신체가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든지 육지에서 살 수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배에서 살아가 그것이 편하고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그곳이 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살지 않습니다.

 

 

장로교회에서 30년을 살아가면서 순복음교회로 왔는데 다른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로는 방언기도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어색하였지만 하려고 노력하니 방언기도가 편했습니다. 처음에 방언기도 잘하는 목사님들의 기도를 따라서 하다가 보니 방언기도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할렐루야입니다. 인사할 때에 할렐루야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있는데 지나 갈 때에도 할렐루야, 청소할 때에도 할렐루야 하는 것을 보고 할렐루야가 입에 붙었습니다.

 

식사 예절과 습관은 각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크게 다르며, 때로는 상대 국가에서 금기시하는 행동이 자기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에서 살면서 미국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보니 몇가지 습관이 있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중에 코를 푸는 것이 한국만끔 더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를 훌쩍거리는 것 (sniffing)은 오히려 불결합니다. 코를 훌쩍 거리기보다는 티슈에 코를 푸는 것이 더 위생적이라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코를 풀고 코를 후벼 파는 행동을 종종 보았습니다. 강의 시간이나 식사시간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습관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면을 먹을 때에 맛이 있는 것을 먹을 때에 쩝쩝 거리면서 맛있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접하는 사람들과 접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지 모르겠지만 서양 사람들이 볼 때에는 개걸스럽게 먹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1.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마다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마라의 쓴물, 르비딤)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스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노예생활이 그리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기 가마’, ‘생선’, ‘오이’, ‘마늘’을 먹던 곳으로 기억하며 그리워함)

 

다른 환경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늘 자신들을 비하했습니다. 메뚜기 취급하고 스스로 보기에도 약한 존재라고 여기며 노예근성으로 살아갔습니다. (민수기 13:33).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싸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였지만 우상을 만들고 세상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2장).

 

그러나 가나안을 들어갈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준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독교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1)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세계관입니다.

10명은 눈에 보이는 아낙 자손들의 거대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렘은 그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2) 메뚜기의 가치관에서 우리의 먹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입니다. 430년동안 가지고 있었던 종의 의식 메뚜기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세계관 그들은 우리의 먹이(밥)이라고 하는 가치관입니다.

 

3) 갈렙은 85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도전하는 성장 마인드입니다. 개척정신이 기독교인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청교도는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오게 되었을 때 그 땅이 아름다운 땅이 되는 것입니다.

 

4)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지 라고 말하였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행동할 때에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5) 복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 우리 사회는 놀음과 술 등 전통적인 습관들이 만연해 있었고, 조상 숭배와 미신적인 요소들이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들어오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정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놀음과 술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조상 귀신을 몰아내고 이 사회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6) 제가 어렸을 때에 얼마나 많은 귀신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부엌의 귀신, 직간( 화장실 귀신) 샤머니즘적인 세계관과 토템이즘적인 세계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처음 이 땅의 선교사님들이 이것을 정면으로 부딪치고 깨뜨렸습니다.

 

7) 초기 우리나라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습관과 관심으로 시어머니에게 남자들에게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잡아가고 단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에 교복을 잘 입지 않으면 교문에서도 두둘겨 맞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8) 선교사님들 근대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교육하여 우리나라가 근대적인 병원과 미신 타파를 하였습니다. 금연 금주 도박을 하지 못하도록 교회에서 직분을 세울 때에 주초를 하지 못하게 하였고 첩을 두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2장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1. 성원순복음교회 첫번째 습관은

1) 예배하는 습관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의 습관을 가지는 것은 의무가 아닌 특권으로 인식해야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얼마나 춥고 힘듭니까? 그 안에서 한시간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죽을 맛입니다. 그러나 그 추운 겨울 영하 15도가 되어도 우리 성도들은 다 이 곳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오시다가 넘어질 수 있고 빙판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합니다. 자동으로 그 시간이 되면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입니다.

 

예배시간 보다 약 10분 정도 일찍 나와서 찬송하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르실 것입니다. 설교 노트를 준비하고 또 오늘 하루 선한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시는 이 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이 아름다운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입니까?

 

무엇이 꼭 응답받기 위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함과 인내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은 세상에 어떤 행복보다 바꿀 수 없는 시간입니다.

 

6.25 전쟁 당시 훈련받지 않은 학도병들의 대규모 희생은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훈련 없는 전장 투입된 약 5만여 명의 학도병들이 자원 혹은 징집되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습니다. 대부분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하고 며칠간의 소총 교육만 받은 채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북한군을 상대로 소총만 들고 맞서야 했습니다. 포항여중 전투(71명 중 48명 전사)나 하동 전투 등에서 보듯 많은 학도병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이들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 등 결정적인 순간에 희생하며 시간을 벌었으나, 훈련 미비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컸습니다. 정식 군번 없이 싸운 소년병들은 전후에도 오랫동안 국가로부터 희생을 인정받지 못하고 예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왜 병사는 훈련을 받아야합니까? 살아 남기 위해서입니다. 잘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일반 병사는 약 5주~6주 (사단 신병교육대 또는 육군훈련소), 하사(부사관)은 민간 부사관: 12주 (부사관학교 등에서 기초군사훈련 및 신분전환 교육), 현역 부사관: 8주 (병에서 부사관으로 지원 시 기간 단축). 장교(소위)는 소대장 등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하여 학사사관: 12주~16주 (대학 졸업 후 입교하여 집중 훈련), 학군사관(ROTC): 대학 재학 중 2년간 교내 교육과 방학 중 병영훈련, 사관학교(육·해·공): 4년의 정규 교육 과정 내에 군사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그럴 때에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1.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의 기도의 습관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육신적으로 가장 큰 고난을 앞두고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살겠다고 도망갈 수 있지만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순교의 고통까지도 스데반처럼 참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어려움 앞에서 포기하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 앞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잘 안되면 조상 탓하고 잘 안되면 부모님 탓하고 운명을 탓합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삼각산에 가서 비닐 뒤집어 쓰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거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 저, 1999년 출간) 한국사회에서 고질적인 폐단인 혈연 지연, 학벌주의 권위주의 뿌리를 두고 있는 유고 문화입니다. 효(孝)와 충(忠)을 강조하는 유교 윤리가 현대 사회에서는 수직적인 위계질서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변질되어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합니다. 선거를 하면 학연 지연, 학벌을 중시하는 유교전통으로 경상도에서 민주당이, 전라도에서 국민의 힘이 당선되지 못합니다.

 

허례허식이 이 사회에 만연합니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명분과 명분만 내세워 비효율적인 만행을 저지릅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취직 시키는 선관위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계탄을 금치 못합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웃으면 안된다는 우리의 문화가 있습니다. 웃으면 첫딸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 선호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정숙하고 조신해야하는 유교적인 관습 때문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정든 집을 떠나 시댁으로 가는 상황에 웃으면 키워준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사람도 자기 분수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말로 자신의 역량과 환경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환경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합니다. 지금 겪고 계신 어려움이 있더라도, 송충이가 솔잎을 먹으며 묵묵히 성장해 결국 나방이 되어 날아오르듯, 그 인내의 시간 뒤에는 반드시 더 큰 도약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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