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새벽기도회 설교 2025년 12월 16일 (화)

본문: 요한일서 3장 1-4절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요한일서 3장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거룩한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어떠한 사랑’

오늘 1절 말씀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하고 감탄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성숙이 바로 이러한 감탄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절대 긍정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는 태도가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게 합니다.

좋은 자연을 보고도 감탄할 줄 모르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대만을 다녀왔는데,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사하는 목사님들과 모든 것에 불평하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도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은 설악산과 한국의 자연을 등산하며 깊이 감탄하는데, 동남아시아에서 온 분들은 시장에서 음식만 사 먹거나 올리브영에서 쇼핑만 하는 경우를 보며,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8편 1-9절 말씀처럼, 다윗은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달과 별들을 보며 주님의 솜씨에 감탄하고, 그 창조 안에 담긴 인간의 존귀함에 경이로워합니다.

또한 로마서 11장 33-36절에서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외치며,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대한 경외와 찬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감탄하며 받아들일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그리고 요한의 삶

2절 말씀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그 영광스러운 모습처럼 변화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의 삶을 통해 이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요한은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품꾼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야고보와 함께 “보아네게”, 즉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급한 성격이나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장차 강력한 증인이 될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요한은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했습니다. 변형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직접 들었으며,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을 직접 들었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고통을 시작하실 때 가까이 있었습니다.
  4. 무엇보다 요한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는 중요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시며 마리아를 부탁하셨고, 요한은 그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5. 예수님 승천 후 다른 제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안,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며 상대적으로 많은 사역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준비하고,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면으로 보상하셨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라는 중요한 책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답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증거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요한의 삶처럼, 우리가 주님께 드린 순종과 사랑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영광스럽게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 죄를 멀리하고 깨끗하게 하기

3절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4절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의 영광스러운 만남을 소망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죄를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 노력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행실이 언젠가는 다 드러나듯이, 죄는 그 본성상 어둠 속에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게 되면 결국 세상의 감옥이라는 곳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감옥 형벌로 죄가 완전히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양심의 법’**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2장 14-15절 말씀은 율법 없는 이방인들도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내용을 보여준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거나 변명하며, 스스로 자기에게 율법이 됨을 증명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법은 성문법보다 더 깊고 도덕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양심의 법이 있어도, 이 법대로 완벽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은 결국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얼마 전 한 할아버지를 전도했을 때, 그분은 교도소에 간 적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착하다고 하니 죄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교도소에 가고 안 가고 하는 인간적인 법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완벽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우리 마음속에 드는 작은 미움이나 시기심, 심지어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죄에 속한다고 봅니다.

  • 마음속의 죄: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욕심을 품는 것 등이 은밀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이나 태도에 남아있는 죄도 포함됩니다.
  • 은밀한 중독: 남들에게 말하기 어렵거나 숨기고 싶은 중독들, 예를 들어 음란물 중독, 도박 중독, 혹은 과도한 알코올 중독 등도 은밀한 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 자기 사랑과 교만: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자랑하는 마음,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높이 여기는 교만함 등도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 불평, 불만, 원망: 겉으로는 괜찮은 척해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 역시 은밀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 게으름, 나태함: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어진 책임이나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게으름이나 나태함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 부모에게 불효한 것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명령은 **”내가 너의 창조주이자 주인이니, 너는 내 명령 아래 있는 피조물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죄가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미리 알려주신 자비로운 경고였죠. 아담과 하와는 이 경고의 말씀을 의심하고 뱀의 거짓말을 택함으로써 불순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하는지, 그분의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관계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 관계 속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순종을 선택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던 것입니다.


마무리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놀라운 사랑을 깊이 감탄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주님의 깨끗하심을 따라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원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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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출처

오전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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