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장 7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1월 21일
본문 말씀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여러분, 옛 계명과 새 계명을 아시나요?
옛 계명은 무엇이며, 새 계명은 무엇일까요?
옛 계명은 대표적으로 십계명이며, 구약의 방대한 모든 율법의 계명들을 아우릅니다. 새 계명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계명으로, 요한복음 13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계명은 폐지가 아닌 완성: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은 옛 계명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옛 계명 속에 담긴 정신과 본질, 즉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고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불효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남의 집을 탐내는 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 우리가 성경대로 살기 위해 옛 계명을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옛 계명을 우리의 힘으로 다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며, 이제는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통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율법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새 마음과 새 영: 이제 우리는 성령을 통해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옛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에스겔 36:26-27). 우리는 성령 안에서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갈라디아서 5:16).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겉모습을 살펴보면 그러합니다. 마음속에는 더러움이 가득한데도 율법을 가진 자로서, 또한 선민이라는 자부심과 교만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이 그들을 지적하셨습니다.
로마서 2장 28-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요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에게서니라”
단순히 혈통으로 표면적인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할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된 할례는 육체적인 표식이 아니라 마음에 이루어져야 함을 설명합니다. 이는 율법 조문에만 매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피부 포피를 베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피부 포피를 베고도 음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로마서 7장 12절 (개역개정)은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선언합니다.
누가복음 15:11-32의 탕자의 비유를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당시 문화에서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유산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권위와 가정의 질서, 즉 아버지의 ‘계명’과 ‘가르침’을 사실상 거부하고 떠나겠다는 선언과 같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통제와 가정의 규칙이 싫어 자신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합니다. 결국 심한 흉년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게 되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처럼 처참한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깨닫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누가복음 15:17)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 즉 풍성한 양식, 따뜻한 보살핌, 그리고 자신을 속박하는 줄로 알았던 아버지의 규칙과 가르침이 사실은 자신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계명’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했던 방탕한 삶은 결국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고, 싫어서 떠났던 아버지의 집과 그 안의 질서가 참된 풍요와 안식처였음을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2025년 11월 19일 새벽기도회 설교문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요한일서 2장 9-11절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 미움과 사랑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즉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빛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빛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빛: 하나님, 진리, 사랑, 의로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 어둠: 죄, 미움, 불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상징합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정에서는 자녀의 순종이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칭이 되는 것이 미움입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마음속에 미움이 찾아오면 마귀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아벨과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던 가인은 마음에 미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인은 형제 아벨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마침내 살인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야곱과 에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간의 미움과 질투가 일어나게 되고 서로 죽이겠다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 형의 눈을 피하여 라반에게로 도망했던 야곱은 다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자신의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통해 에서의 미움을 잠잠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 사이에도 서로 미움이 있었습니다.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으로 형제들의 질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요셉이 꾼 꿈들을 형제들에게 이야기하여 그가 형제들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을 암시함으로, 형들이 이를 더욱 시기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족끼리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는데 많은 가정이 이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평생 원수가 되어 만나지 않고, 심지어 설과 추석에 서로 살인까지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 내에서도, 지방회 내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2장 4절은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합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 중 하나이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고백 자체가 거짓임을 드러냅니다.
필리핀 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필리핀에 가는데 지방회 임원 목사님들이 모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0만 원씩 모두 내기로 하고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특별히 김종국 선교사님에게 처음에 100만 원, 도중에 100만 원, 그리고 결산하고 남아서 100만 원을 헌금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정산을 하면서 뒤늦게 오지 않았던 임원 중 한 분이 30만 원을 후원하지 않았기에 ‘잊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고 욕설을 하며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빛)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실천하게 되므로, 어둠의 행위인 미움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어둠에 있고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고 빛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사람들은 어둠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걸어가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고 그의 눈이 가리워져서, 마치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는데도 알지 못했던 엠마오 제자들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사랑하는 형제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관계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79.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1)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그들과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크게 두 종류의 마음입니다. 미움의 마음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어둠에 있고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고 빛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은 사람들은 어둠에 있지않고 빛 가운데 걸어가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고 그의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있는 엠마오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지만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사랑하는 형제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관계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79.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1)내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저본향집을 향해 가는길 비추소서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걸음 씩 늘인도 …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그들과 어떤 상대로 살아가는가입니다. 크게 2종류의 마음입니다. 미움의 마음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에게 다가오는 2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구 요나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왕인 것입니다.
다윗은 은 골리앗을 죽임으로 마음이 끌린 사울왕은 그를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도 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죽을 때에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삼하 1장 26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고 (5절) 여인들의 사랑을 환영을(7절)의 모습을 보고 질투로 인하여 미움이 싹트기 시작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것입니다.(약1장 1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