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편 1절 용기있는 감사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1월 16일 추수감사주일 설교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랍비 아키바는 유대교의 위대한 율법학자이자 현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먼 길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길을 가기 위해 나귀 한 마리와 시간을 알리는 수탉 한 마리, 밤에 책을 보기 위한 등잔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유대 경전인 토라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잠시 쉴 마을을 찾아갔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냉정하게 거절하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마을 외곽의 들판이나 헛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아키바에게는 연달아 불행한 일들이 닥쳤습니다.

 

등잔불이 꺼졌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이 꺼져 버렸고, 그는 어둠 속에서 토라를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탉이 사라졌습니다. 얼마 후 야생 동물이 나타나 그의 수탉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나귀가 없어졌습니다. 뒤이어 그의 나귀마저 도둑맞거나 맹수의 먹이가 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연달아 닥친 이 불행한 일들 속에서도 랍비 아키바는 침착하게 한마디만 내뱉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다. (Gam zu l’tovah)”

 

다음 날 아침, 랍비 아키바는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마을 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밤새 도적 떼가 들이닥쳐 그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가고,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서야 랍비 아키바는 깨달았습니다.

 

만약 등잔불이 꺼지지 않아 토라를 읽고 있었다면, 도적들이 빛을 보고 자신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만약 수탉이 살아있어 새벽에 울었다면, 도적들이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만약 나귀가 살아있어 소리를 냈다면, 도적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을 해쳤을 것입니다.

자신이 겪었던 모든 불행들이 오히려 선한 하나님이 인도하신 은혜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지만,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당장의 어려움이나 불행처럼 보이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고 더 큰 선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섭리와 지혜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믿음을 갖게 하지요.

 

  1. 추수감사절은 무조건적인 감사가 있는 날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감사 (if)

하나님이 지금 나를 축복하셔서 감사 (because)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in spite of)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한 차원 높은 감사를 하였습니다. 악조건 가운데서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였더니 하나님은 그를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양 치는 목동일 때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다윗은 보잘것없는 목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 순간은 그의 삶의 거대한 전환점이었지만, 그는 교만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에 대한 깊은 감사를 가졌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거대한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는 두려워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감사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굳게 믿었으며, 이는 사자나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골리앗에게서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울 왕의 도망을 피할 때도: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물리친 후에도 다윗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끊임없이 도망쳐야 하는 도피 생활을 수년 동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수많은 시편에서 고백되듯이, 다윗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역경 속에서 더욱 하나님께 밀착하며 깊은 영적 성장을 하였습니다.

 

 

  1. 위기 앞에서 감사

시편 11편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주변의 신하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윗은 산으로 도망갈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빨리 산으로 도망하여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자”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가장 어려울 때를 골리앗 앞에서, 사울 왕의 끈질긴 추격 앞에서, 압살롬의 모반으로 왕위가 위협받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로 피할 것인가, 산으로 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으로 피하는 길 사람들은 어려우면 새처럼 산으로 도망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새를 쫓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새를 쫓으면 산으로 피합니다. 성미산으로 피합니다. 산은 숨을 곳이 많이 있는 곳입니다.

 

새를 대신하여 사람으로 대입하면 어떤 의미가 형성될까요? 사람은 타협하여 신앙을 포기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산으로 도망갈 것을 종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충고가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터가 무너지면, 여러분들의 장막과 사업장이 무너지면, 여러분들은 금방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때 무엇을 하겠습니까?

 

생명, 지위, 재산, 저축한 돈들이 물거품이 될 때에 산으로 도망하는 것, 사람에게 피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애 모두를 맡김으로써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용기 있는 신앙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즉 용기 있는 신앙이 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곰과 사자 앞에서 용기 있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용기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추격 가운데 용기 있게 그를 죽이지 않고 그를 살려 보내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 용기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31장 6절: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주는 마지막 권면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닥칠 미지의 어려움과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 용기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지요.

 

시편 3편 6절: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 구절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절박한 상황에서 고백한 말씀입니다. 수많은 대적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목숨을 노리는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다윗은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선포합니다.

 

  1. 예화

 

우리 이웃에 영세 가게를 겨우겨우 이끌어가고 있는 알뜰 부부가 있었습니다. 약간의 빚을 가진 그들 부부는 명절 대목을 상당히 기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매상은 그들의 가슴을 부풀리기에 충분하도록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달력을 보니 추석이 주일인 것입니다. 부부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추석 몇 달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각자 내심으로만 갈등을 일으키다가 드디어 추석 일주일 전에 부부의 표면적인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이 비교적 좋은 부인은 아직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아무리 빚을 지고 있어도 추석 대목을 본다 할지라도 주일날에 어떻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겠어요? 경제적인 손실이 있더라도 우리 교회에서 감사로 추수감사 예배를 드립시다. 그날 벌지 못한 것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거예요.”

 

부인은 간절히 남편을 설득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과 더불어 하나님께 피하려고 했습니다. 부인은 가난을 초월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화를 벌컥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니 교회는 일 년 내내 다니는 것이 아니야? 추석은 겨우 하루뿐인데 그날 하루 문을 열어 놓았다고 무슨 변고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날 벌면 우리가 빚을 얼마나 갚을 수 있는데. 여보, 당신 혼자 교회에 가구려. 나 혼자 장사하겠소.”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보다 세상을 향하여, 즉 산으로 도망가려는 편을 택했습니다.

 

이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신앙입니다. 산으로 피하지 않고 하나님께 피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지 눈앞의 계산을 넘어,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적인 우선순위를 지키려는 이들의 결단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할 것이라 믿습니다.

 

 

 

  1. 산으로 피하지 않고 하나님께 피하는 이유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세상 친구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을 권유하지만 다윗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 피하였을까요?

 

1) 하늘 보좌에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4절)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 계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선포합니다. ‘그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를 의미하며, ‘하늘 보좌’는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세상의 왕들은 위엄과 장엄함으로 자신의 통치를 과시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영광의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2)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미워하시는 하나님 (5절)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세상을 세밀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분명히 구별하십니다. ‘의인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가려내시고, 헤쳐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외할머니가 콩과 돌멩이를 가려내시듯, 하나님이 곧 우리의 형편에서 찌꺼기들을 가려내시고 순수하게 하십니다.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는 그들을 ‘마음에 미워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정의 미움이 아니라, 죄와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와 혐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악한 행위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3) 악인에게 임할 피할 수 없는 심판 (6절) 6절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하나님은 미워하는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들이 투망을 던지듯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결국 악인들은 심판에 걸린다는 뜻입니다. 심판의 내용은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입니다. 구약 시대에 죄악이 관영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했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4) 의로운 하나님과 그분의 얼굴을 뵈올 정직한 자 (7절) 7절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본성 자체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시며, 모든 악을 미워하고 모든 선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정직한 자’는 궁극적으로 ‘그의 얼굴을 뵈올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육안으로 본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평화와 축복을 경험하며, (이 부분 문장 끝에 마침표를 추가했습니다.)

 

때는 1984년 12월 3일 새벽, 인도 보팔에 위치한 미국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사의 살충제 공장에서 독성이 강한 메틸아이소시아네이트(MIC) 가스가 대량으로 누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유독가스는 순식간에 보팔 시 전체를 뒤덮어 약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즉사하고 수십만 명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업 재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 보팔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분이 바로 데일 키츠맨 선교사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스에 질식하여 죽어가던 그 순간, 데일 키츠맨 선교사는 자신의 가족들과 동역자들에게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도록 인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집 주위와 그가 사역하던 곳들에는 마치 거대한 바람의 장막이 쳐진 것처럼 독가스가 들어오지 않았고, 가족과 동역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던 신앙인들 중 단 한 명도 유독가스의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머물던 공간에 가스를 막아줄 특별한 방어막이나 대피 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가스 누출 사고의 원인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생존이 명백한 기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데일 키츠맨 선교사는 이 모든 일이 인간적인 지혜나 노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보호와 인도하심 때문임을 간증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극한의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지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마치 불 가운데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신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보팔의 독가스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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