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57절 나를 따르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0월 26일 (주일 필리핀 가는 날)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초기 기독교의 베드로 사도와 사도 바울은 지금의 교황청이나 미국교회와 한국의 교회를 바라보면 무엇이라고 말할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말 초라하 개척교회의 성도들의 집에서 시작한 교회들이 지금은 엉청난 부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루디아의 집과 지금의 바디칸 성전을 비교하면 상상이 안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야손의 집과 지금의 세계 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비교하는 것은 비교 불가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과 권력이 교회에 집중될 때에 이러한 부와 권한을 어떻게 조절하는가가 교회의 발전과 성장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의 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를 관리 못하므로 타락하고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베드로 고백한 것 처럼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할 것인가? 베드로후서 3장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사도베드로가 우리에게 당부한 말씀입니다.

그 부와 축복의 시작의 예를 들자면

장제원의 아버지 고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은 교육자로 목사로 살아왔습니다. 특별히 제 12대 국회 후반기에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동서 대학교, 부산디지털대학교, 경남정보대학교 등 운영한 교육계의 큰 어른입니다. 그들을 신앙으로 교육했을 것입니다. 장제원은 정치인이 되어 18대, 20대, 21대의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스스로 자살하였습니다. 그의아들 장용준 래퍼 노엘은 성매매 시도와 음주운전 후 도피하다가 교도소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가정에 꼭 기억해야할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를 주시면 늘 겸손하게 그 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로마서 10장 9절에 입으로 주님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인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틀 에클레시아의 뜻은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그 고백위에 내 교회 즉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출발입니다.

 

각 나라마다 많은 나라를 방문하지 못하였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의 성도들은 조금 특별히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김니다. 특별히 다른 나라보다 물질드림을 잘합니다. 미국사람들은 기부를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이 기독교인 즉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들이 신약에 3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26장 28절: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베드로전서 4장 16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를 요약하면 누구를 따른 사람들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제자도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자 오늘은 나를 따른 사람들, 즉 예수님을 따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것인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길 가실 때에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길을 갑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의사로서, 어떤 사람들은 판사로서, 어떤 사람들 과학자로서, 학교의 선생님으로 수많은 길들을 우리 대한민국에는 무려 16,891가지 (한국표준직업분류 제5판 통합본) 이렇게 많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람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한길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있고, 다른 한 길은 성도로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돈을 많이 벌으면 제일 잘 사는 길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야 평안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을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이러한 길 속에서 예수님의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성도들 사이에 46절 처럼 누가 크냐 하는 변론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큰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회사의 사장이 가장 큽니다.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가장 큽니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가장큽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사님이 제일 큰 것이 아니라 초신자가 가장 큽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작은 자입니다. 2) 귀여운 아이입니다. 3) 미숙함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자신 보다 강한 사람들에게 굽신 굽신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생활은 마태복음 7장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한 신앙생활일 수 있습니다.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얻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의 신앙생활은 필리핀 사람들 보다 더 열심히고 새벽기도회도 하고 그리고 열심히 드립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우리끼리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미국사람들의 신앙생활은 기부를 잘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지고, 수만은 자선단체들이 세워졌습니다. 합정동에 가면 홀트복지 센타도 미국사람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지방회장, 지역총회장, 대표 총회장의 자리에 서열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후원을 많이 하는냐에 따라서 그분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내에서는 얼마나 많이 직분이 높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헌신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 비교하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의 마음속에 두가지 현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부러움과 연민이라는 것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부러움은 참으로 있습니다.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훈련하여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민을 잘 되지 않습니다. 왜 나는 안될까? 왜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지 않을까? 우리 교회는 우리 사업장은 왜 않될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했는데 왜 부흥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작은 아이를 영접하는 것, 작은 아이를 섬기는 것은 우리의 삶가운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만 나타내려고 하지 자신의 행한 일을 숨기고 감추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성자라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수녀는 인도 콜카타(칼카타)의 성자입니다. 사랑 선교회 (Missionaries of Charity) 설립: 1950년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이 선교회를 통해 수녀님은 인도 전역과 전 세계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 버려진 아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1979년)

 

시성(聖人)은 2016년 9월 4일에 시성되었습니다. 기념일인 9월 5일은 이제 그녀의 축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세상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집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그러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나, 알라딘의 지니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요즘의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알라딘의 지니처럼 생각합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존재처럼 생각합니다.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주님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램프의 지니는 소원을 들어주고 작은 램프로 들어가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셔서 우리와 동행하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지니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우리 주님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와서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시는 섬기로 오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이 생활하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날들이고, 미래는 다가올 날들이지만 현재는 선물입니다. 현재는 present.입니다. present가 현재라는 단어도 있지만 선물이라는 내용도 됩니다. 여러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오늘이라고 합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환자 실에서는 기적이 될 수있고 오늘 소천하신 분들에게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고린도전서 10장 31절:”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사야 43장 7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로마서 1장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수요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재물입니다. 둘째로 영광입니다. 자신이 영광받고 운동경기에서 일등을 하면 영광이 있습니다. 좋은대학교 좋은 학과에 들어가면 영광입니다. 좋은 곳에 취직하면 영광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면 영광입니다. 세번째 생명입니다. 오래 오래 사는 것을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을 얻는 것이 바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분이 구약에서는 모세요, 신약에서는 예수님입니다. 나는 마음에 온유하고 겸손하니 네게 와서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자신 보다 못한 사람에게 겸손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자신보다 높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겸손하는 것이 세상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경외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 나를 따르는 자들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유대 사회에서 부모님을 장례하는 것은 자식의 매우 중요한 의무이자 도리입니다.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은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 달라’는 말이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곁에서 모시고,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다’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임종까지 지키고 모든 상을 마치고 할 일이 없으면 주님을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매정한 말씀인 것같지만 진정한 의미는 효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라.”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세상 가치관에 매여있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맡기고, 너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로서) 즉시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나님 나라 사역의 긴급성과 절대적 우선순위:

 

즉 우선 순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머리가 나쁜지 계속적으로 영어시험에 떨어지고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에만 집중하였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시키는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교회를 짖고, 필리핀 선교사님을 도와서 사역을 하는 일들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니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일도 하게 하시고 공부도 하게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미래의 주님보다 지금 여기 계신 주님이 더 중요합니다. 현재는 선물입니다. 지금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믿느냐고 묻습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는 일에 평생을 보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정말 멋진 대조입니다. 사울의 삶은 끊임없는 시기와 불안정, 그리고 결국 파멸로 이끌렸지만, 다윗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그의 찬양은 단순히 기쁨의 표현을 넘어,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을 고백하는 깊은 영성이 담겨 있었죠.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불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다윗은 작은 일, 찬양하는 일, 다윗은 작은 일 아버지의 양을 돌보는 일, 다윗은 작은 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는 일, 사울왕을 죽일수 있지만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뒤에 집착하고 뒤를 돌아보고 롯의 처 처럼 과거를 돌아보고, 물질에 집착을 두고 살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합니다.

 

개역개정 빌립보서 3장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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