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장 1절 새벽기도회
홍철기목사 성원순복음교회
2025년 10월 14일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는 어부 출신입니다. 어떻게 베드로 전후서를 썼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 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경을 누가 어떻게 왜 썼는가?에 대한 질문에 베드로는 둘째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쓰는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잘 참고 승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산소망 되신 주님이 도와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우리 가운데 우리 주위에 있는 이단들 거짓 선지자들이 항상 있으므로 그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잘 참고 있는데 주님의 재림을 늘 생각하면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생각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경을 쓰는 이유는 예배와 말씀을 들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매일 읽을 수 있고, 말을 기록이 영원하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2절에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합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기억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어주시는 물질과 사랑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온 것을 자녀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온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덜 베풀고 덜 도와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후서 3장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조롱하는 자들이 주의 강림의 약속, 즉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조롱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말씀에 따르면,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조롱합니다.
조롱하는 이유는 주님이 약속하셨는데 금방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창조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지 않느냐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조롱입니다.
예수님이 종말에 대하여 분명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계시록 3장 3절에는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7:24)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태복음 25:6)
예수님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시록 22:12)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신형 폭탄이 투하되기 전에, 미국은 일본 천황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하는 경고문을 전달했습니다. 이 경고문은 일본이 만약 천황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8월에 더 큰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초,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 투하 전, 미국은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삐라(전단지) 형태로 배포했습니다.
대다수의 히로시마 시민들은 이 경고문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결국 경고는 있었지만, 시민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깝게도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습니다.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노아의 경고문입니다.
노아는 두 가지로 경고했습니다.
- 방주를 짓는 행동으로 경고하였습니다.
- 노아는 말로써 경고하였습니다.
120년 동안 긴 세월 동안 가족들과 함께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 가고 장가들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7-39)
- 일상생활에 몰두하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현재의 즐거움에만 빠지게 되었습니다.
-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방주를 같이 짓자, 함께 들어가자 하고 말하였지만 그들은 조롱하고 기롱하였습니다.
- 심판에 대하여 무시하였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였고 모두 쓸어 갈 때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자”(베드로후서 2장 5절)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노아의 말이 생각나 방주 문을 두드리며 아우성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파루시아는 ‘παρουσία’ 곁에 있다, 도착했다. 현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파루시아는 ‘그리스도의 재림’ 또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파루시아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오시는 것을 넘어,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그 실재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을 가리킵니다. “들려 올려지는 것”, 즉 휴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라나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로마 황제의 방문은 황제의 ‘현존(現存)’과 ‘임재(臨在)’를 의미합니다. 도시 전체가 들썩이고 환영식을 큰 준비를 합니다.
시찰의 의미 갑작스러운 암행어사 출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황제의 방문은 종종 도시의 영광스러운 미래와 연결되었고, 백성들은 황제에게 자신들의 고충을 아뢰고 새로운 혜택이나 특권을 얻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파루시아는 큰 기대와 환호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