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24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9월 12일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 복음성가

복음성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 떠난 사람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놀랍네 오! 주님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1. 본문설명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난하는 과정 속에 예수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잃은 양의 비유 (누가복음 15:3-7): 목자가 100마리 양 중에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중에 극비수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78년에 부산에 발생한 아이 유괴 사건입니다. 가족들은 점쟁이에게 다니면서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묻지만 아이는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김도사는 아직 살아있다고 합니다. 보름째 되는 날 정말로 연락이 오고 극비로 수사를 하는 내용입니다. 피 말리는 상황 속에 공형사(김윤석)와 김도사 두 사람만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 내용입니다.

 

  • 잃은 드라크마(은전)의 비유 (누가복음 15:8-10):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리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잃은 것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모가 500원, 1000원을 우습게 알면 큰돈을 맡겨주어도 귀함을 모른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학교 다닐 때에 홍대에서 걸어오는 사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낄 때에 확실히 아끼고 선교헌금할 때에 확실히 헌금하였습니다. (3000만원)

 

  • 잃은 아들(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11-32): 이 비유는 크게 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기다림을 보여줍니다.

 

수색에서 길을 잃은 우리 평강이 (를) 하루 종일 찾아 다니고 나중에 어떻게 왔는지 경찰관과 함께 왔습니다.

 

  • 큰 아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곁에서 성실히 일했지만, 동생의 돌아옴을 기뻐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타일러 주십니다.

큰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아들은 (동생을) 당신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동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중요함, 동전 하나의 중요함, 그리고 잃어버린 동생의 중요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천순복음교회에서 4대교구장인 이0우 목사님에 대한 간증입니다. 자신이 운전하다가 딸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개척하여 뇌 혼수상태로 여러 해 있으면서 그 딸을 제가 우리 교단의 직원으로 채용하였습니다.

 

렘브란트의 걸작 중 하나인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렘브란트가 사망하기 약 2년 전인 1667년경에 그린 이 작품은 그의 말년작입니다.

 

  • 아버지 두 팔 벌리고 안아주십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용서, 기쁨, 축복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강하지만 그림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손처럼 그렸습니다. ● 탕자는 허름한 옷차림, 신발 벗겨지고, 머리는 삭발한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 큰 아들은 왼쪽 멀리서 있습니다. 손에 지팡이를 짚고 냉담, 불평하듯한 표정입니다. ● 구경꾼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그린듯합니다. 관망하듯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특징
  2. 따로 앉아서

누가복음 18장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따로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차별하는 것입니다. 구분합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뜻은 분리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성결과 철저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다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별히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구별을 의미합니다.

 

반면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 탐욕과 착취로 자신의 이익만 간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특별히 창기 매춘부들에 대하여 순결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세상을 타락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였습니다.

 

  1.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합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말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금식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금식할 때에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창백하게 하고 자기의 경건을 자랑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소득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기도의 십일조, 농작물의 박하와 회향, 근채 (작은 채소들)를 십일조로 바칩니다.

 

신앙생활이 언제부터인지 점점 따로 앉아서 나만을 위하여 예배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가족도 전도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 평강이가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들도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III.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전도를 해왔으면 뭐 합니까? 전도한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큰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첫째 계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되는 계명입니다. 둘째 계명: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것은 첫째 계명과 같으며, 온 율법과 선지자의 본질이라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들도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주변에 내 눈에 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 사모가 캣맘에게 전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전도 이야기입니다. 부흥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아침에 식당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빙하는 자매님이 매우 불친절하게 봉사를 합니다. 매니저를 부를까 하다가 성령님께서 그만해도 좋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성령님께서 팁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줄까요 하는데 만원만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장 더 주라는 것입니다. 이만원을 주었습니다. 그때에 그 자매님이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시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접하지 못했는데 왜 주냐고 하였습니다. 무슨 힘든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자매님이 어제 밤에 우리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매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믿어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괜찮으면 기도해도 되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 예배드리러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버려도, 하나님의 딸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그 진리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세상의 시선과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32절에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자식이 되었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큰아들은 동생을 물질로 보았고, 아버지는 사람으로 가족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수잔이라는 딸이 있습니다. 인형을 사랑합니다. 어느 인형을 제일 사랑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자신의 방에서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인형을 가지고 왔습니다. 옆구리가 터지고, 머리는 벗겨지고, 제일 볼품없는 인형이었습니다. 그때에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못난 인형을 사랑하냐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해 줄 사람이 없어 제가 가장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어요.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를 제일 사랑합니다. 성도는 많지 않지만 제가 다니는 교회이고, 제가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이기 때문에 제가 가장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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