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 1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9월 7일 주일설교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근원이란 뜻은 根源(뿌리 근, 물 근원 원)입니다. 사물의 시작, 본바탕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흐르는 시작점, 발원지라는 뜻입니다. 복이 흐르는 시작점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이 시작하는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2) 두 번째 뜻은 통로라는 것입니다.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요소라는 뜻입니다. 복이 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사모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하고 부족한 집안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통하여 매달 30만 원씩 보태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처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복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이삭에게서 야곱에게, 야곱이 요셉에게 복이 흐르는 것입니다.
-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기독교의 복의 순서는 영혼이 잘되는 것,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주일이고, 수요일, 금요철야, 새벽기도회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으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주인이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4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질보다, 명예보다 먼저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하는 이타적인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러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기 자신만을 알고 있지만 늘 하나님이 우선주의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굉장히 이기적인 나라입니다. 자신만 잘 살기 위하여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여러분 영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적인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의 영성, 철야의 영성입니다.
로렌스 형제의 영성입니다. (Brother Lawrence) 로렌스 형제는 17세기 프랑스 갈멜 수도원의 평신도 수사(본명 니콜라 에르망)였는데, 그의 영성은 ‘하나님의 임재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라는 핵심 개념으로 집약됩니다.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부엌에서 요리와 설거지, 허드렛일 등 가장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 임재의 장애물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비밀로 삼았습니다.
그는 거창한 영적 수련 없이, 매 순간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부엌일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로렌스 형제를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도원의 원장의 증언은 그가 부엌에서 일하는 자체가 성찬을 집례하는 것과 같은 정결함과 거룩함이 느껴지고, 그분의 손을 잡으면 예수님의 손을 잡는 것과 같은 거룩함이 느껴졌다고 하였습니다. 부엌일이든 기도이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행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영성은 우리에게 이 땅의 단조롭고 고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함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복을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기독교 영성 분야의 고전으로 여겨진답니다.
- 하나님과 함께하는 청지기적인 삶입니다.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4절에 요셉은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은혜 입었다는 것은 2절에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3절에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보디발이 본 것은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은 이집트의 노예입니다. 노예 신분인데 보디발의 눈에 들어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자신의 집에 가정 총무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일 처리가 매우 성실하고, 지혜롭고, 요셉이 일을 아주 성실하고 지혜롭게 처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일마다 놀랍도록 성공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일이 잘되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하여 된 것입니다.
장도원 회장 (포에버 21 공동 설립자) 1981년, 장도원 회장님은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아내 장진숙 권사님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당시 두 분은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고 가진 돈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후, 장 회장님은 낮에는 커피숍과 청소부로, 밤에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등 하루에 19시간씩 세 가지 직업을 가지며 악착같이 일하셨습니다. 그의 아내 장진숙 권사님도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을 각오’로 성실하게 삶의 터전을 닦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공: 이렇게 부부가 몸이 부서져라 성실하게 일하며 모은 1만 1천 달러(USD 11,000)를 밑천 삼아, 1984년 LA 패션 지구에서 8평짜리 작은 옷 가게를 열었습니다. 이 가게가 바로 훗날 세계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포에버 21의 시작이었습니다. 장 회장님은 포에버 21을 시작할 때,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가게로 출근해서 철저하게 일에 매달렸고, 끊임없이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며 성실하게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현재 ‘포에버 21’은 파산 절차를 겪었거나 겪고 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두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으로 왕의 생명과 직결되는 위치였기 때문에 상당히 신뢰하는 사람으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 (Chief Cupbearer):
떡 맡은 관원장 (Chief Baker)은 왕의 식사를 관리하는 관원장이었기 때문에 그도 상당히 고위직이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 다 감옥에서 꿈을 꾸게 되었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게 되고, 떡 맡은 관원장은 정반대의 꿈을 꾸게 됨으로 죽게 됩니다.
요셉은 가정 총무에서 국가 감옥의 총무로, 나라의 국무 총리로 프로모션되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으면 많은 장관들이 자신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대한민국의 감옥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왕의 꿈을 통하여 살진 암소 일곱 마리와 마른 암소 일곱 마리, 충실한 이삭 일곱과 마른 이삭 일곱이 나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고 고민할 때에 요셉이 감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7년은 큰 풍년을 의미하고 7년은 극심한 흉년이 올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하여 정책을 제안합니다. 애굽 땅에 모든 소출을 거두어들여 해마다 쏟아지는 곡식 소출의 1/5, 즉 20%를 미리 거두어 창고를 짓고 관리할 것을 제안합니다. 바로 왕은 요셉의 꿈의 해석을 통하여 요셉이야말로 이 일에 적임자임을 알고 애굽의 총리로 세웁니다. 우리나라에도 닥쳐올 어려운 상황을 위하여 지혜로운 나라의 총리가 필요합니다. (노란봉투법)
아주 성실하게 일 처리를 하는 요셉을 통하여 우리는 성실성을 통하여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화로 5달란트, 2달란트, 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달란트의 돈이 그리 작은 돈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퇴직할 때 받는 돈이 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면 작은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작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보기에는 크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그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맡겼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5달란트는 또 다른 5달란트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큰 달란트를 남겼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잘리는 것이 아닙니다. 큰일도 작은 일도 소홀하기 때문에 잘리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도 작은 일에 충성하기 때문에 큰일도 잘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작은 일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작은 일입니다. 식당 봉사 작은 일입니다. 식사 준비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잘하면 다른 일도 잘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할 때에 자신이 좋은 대학 나왔다고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직장 상사라든가, 사장이 볼 때에 그 사람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자신의 후임자를 선택할 때에 청소부 출신인 찰스 쉬브(Charles M. Schwab)를 선택했습니다.
쉬브는 성실함과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학력이었습니다. 고학력의 유능한 임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는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쉬브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공장 전체를 청결하게 유지하고 차근차근 승진하며 결국 강철 회사 사장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정도가 비슷비슷하거나 고만고만한 사람이나 사물들끼리 서로 낫다고 다투거나 비교할 때 쓰는 말이에요. 쉽게 말해, 실제로는 별 차이도 없는데 서로 자기가 더 낫다고 우기거나, 별 의미 없는 비교를 할 때 “도토리 키재기다!”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도토리 키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대자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자병(大者病)’, ‘크고 넓은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이나 ‘덩치 키우기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로 사용되곤 합니다.
성산대교, 성수대교, 한강대교 등 사회기반시설을 만들고 도시 개발의 확장으로 웅장하게 보이기 위하여 크게 이름을 짓는 병입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지어야 합니다. 성수대교가 부실 시공으로 학교 가는 학생들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대학교도 대자병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입니다. 유니버시티라는 영어가 있습니다. 유니버시티라는 단어(universitas)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우주’나 ‘보편성’과 같은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어 어원으로 중세 시대에는 ‘하나의 단체’ 또는 ‘집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 외에 ‘대’자로 시작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외국의 대사, 술 먹는 대포, 왕대포 등의 말이 있습니다.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처럼 실제 주인이 드러나지 않고 명의만 빌려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라면, 이는 ‘대자병’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을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보고 계심입니다.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하나님 앞에서(before the face of God)’ 뜻입니다. 이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상관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종입니다. 그리고 정욕이 많은 남성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창세기 39장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노예 신분이었지만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성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코람 데오의 영성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의 눈을 의식하면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인정받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감옥 속에서도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귀하게 보신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창세기 40장에 보면 요셉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꾸게 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세기 40장 8절). 꿈의 해석은 자신에게 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해석해주고 자신이 말하지만 그것을 가르쳐준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비밀을 아시고 알려주실 수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때에도 (창세기 41장)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애굽의 어떤 박사나 마술사도 해석하지 못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바로 왕이 요셉에게 “네가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구나”라고 말하자, 요셉은 다시 한번 강조하며 고백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세기 41장 16절).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의 신앙이요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명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유명한 신들이 있지만 진정한 신은 하나님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굳건하게 믿는 믿음의 신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