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18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9월 2일
베드로전서 4장 18절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고난이 오는 종류 3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베드로전서 2장 20절에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 (악행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둘째, 부당하게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 (19절) 자기 잘못도 아닌데 당하는 고난입니다. 세상의 불의와 오해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고난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불시험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베드로전서 4:14)
개역개정 베드로전서 4장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이 본문의 말씀은 구약에서 시작된 본문입니다.
에스겔 9장 1절-6절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심판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때 사용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성읍에는 우상이 가득하고, 음란과 교만이 가득하였습니다.
에스겔 9장 6절: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죄악과 우상 숭배로 인해 심판을 내리시는 환상 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사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 죄를 지은 자들을 심판하도록 명령하시면서, 심판을 자신의 거룩한 ‘성소(성전)’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예레미야 25장 29절에서도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전적으로 무죄하다 하겠느냐 너희가 무죄하지 못할 것은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며, 하나님이 예루살렘(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세상 먼저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심판과 불시험이 있습니다. (12절) 심판은 하나님이 세상과 우리를 심판하시는 심판이고, 불시험은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 (하박국 1장 5-11절):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기도에 대해 갈대아인들(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대아인들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민족으로, 그들을 통해 유다의 죄악을 징벌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갈대아인들은 유다를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 (하박국 2장 1-20절):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며 명확하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갈대아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정한 때에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며, 그들의 교만과 약탈, 폭력, 우상 숭배 등 다섯 가지 죄악(화, ‘화 있을진저’)에 대해 엄중하게 징벌하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고 불같은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집 성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장환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이라는 말씀은 구원의 순결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불안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구원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에 흔드는 말씀이 아니라, ‘겨우’라는 말씀은 마치 금을 얻기 위하여 뜨거운 불에 넣고 불순물을 정제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수하게 구원함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겨우’라는 말씀은 정말 구원함을 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순교당하고,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겨우’라는 말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이 좁은 길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듯이 (마태복음 7장 13-14절),
셋째로, 욥의 고난처럼 정금으로 나오는 과정 속에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끝까지 완주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 의인도 구원받기 힘든데 경건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설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행실을 바라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은 철저히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므로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통하여 실력의 정도를 테스트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시험을 통하여 믿음의 테스트와 연단을 받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 (벧후 1:1)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나의 믿음이 아브라함이 가진 종류의 믿음인지 귀신의 믿음인지 테스트를 받아야 합니다 (약 2:18-22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받는 자들이 됩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복 있는 자가 됩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고난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받아서는 안 될 고난은 피하고 받을 만한 고난을 기쁨으로 받읍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어떤 고난을 받게 되든지 끝까지 의(義)를 위해 인내합시다. 죄짓고 살다가 고난받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생활하다가 고난받는 복 있는 사람이 됩시다. 잘못 살다가 죽는 자가 되지 말고 마지막 숨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19절) 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