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 25절 #구원의 순서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8월 15일 금요철야

 

 

누가복음 10장 25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광복 80주년 기념 정서남 권사님의 딸 유빛나 씨의 회사에서 만든 광고입니다.

 

  • 극동방송의 내용입니다. 석성고등학교는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학교’로서, 미얀마 양곤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류 과정에서 미얀마 현지 고등학교에서 한국의 애국가를 4절까지 배우고 함께 불렀습니다. 이는 단순히 외국 국가를 배우는 것을 넘어, 한국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미래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1. 우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 첫 출발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을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 스스로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양심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2장 14-15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이 율법이 없을지라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은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만 주셨습니다. 동물(강아지, 고양이 등)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성전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병행하여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시고 주의 종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을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처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강제적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부드럽게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깊은 친교와 교감을 나누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과 함께 삶을 나누고, 동행하며, 영적인 양식을 주고받는 풍성한 관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 구원받은 성도들이 행해야 할 일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영생에 대하여 궁금했던 율법교사가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면 예배가 형식적이고 딱딱하고 구태의연하게 변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3년만 지나면 감격이 없어지고 율법적이고 형식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의무화되고 형식화되어 예식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온 것에 대한 자랑만 남습니다. (새벽기도, 철야, 주일예배, 십일조, 건축 헌금)

 

당시 유대인들처럼, 천주교인들처럼 종교의 형식에 갇혀 ‘회칠한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도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알 수 있고, 눈을 감고도 찬송가의 가사와 성경 구절을 암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예배의 순서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종종 예배 의식에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성도들이 의아해합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한다고 형식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6장 5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영으로 (in spirit / 신령으로): 단순히 외적인 형식이나 의식이 아닌, 성령의 감동하심 속에서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진리로 (in truth / 진정으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하나님의 말씀(진리)에 합당하게 드려지는 예배를 말합니다.

 

III.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누가복음 10장 37절: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제사장도 그 길로 내려갔고, 레위인도 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귀한 주의 종과 성도들이 그 길을 피하여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직분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데리고 주막으로 가서 데나리온 둘을 내주며 그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시니,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어느 대주교의 고백입니다. 제가 어떤 대주교에게 물었습니다. “대주교님에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대주교는 “저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없습니다. 저를 돕고 있는 분들이 50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행동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대주교의 고백: “나는 젊은 시절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지혜가 생기면서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좁혀 내가 사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 또한 변치 않았다.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나는 내 자신만이라도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 자신마저 변치 않았다. 내가 젊었을 때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내가 사는 나라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했더라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사는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 되고, 그로 인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앙생활하면서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은 “주여, 주여 하는 자”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의미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입술로 ‘주여’라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 형식적인 고백, 구호성 신앙을 말합니다. 입으로 예수를 ‘주인’으로 부르지만, 그 고백이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명목상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기적)까지도 모두 소용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종교적 열심이나 업적처럼 보여도, 그 안에 진정한 순종과 주님을 향한 인격적인 관계가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가 그 고백과 다르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삶의 열매, 진실한 순종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자입니다.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삶의 열매로 증명되는 신앙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말과 구호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흔적, 즉 사랑, 겸손, 섬김, 용서, 인내 등 ‘선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열매로’ 알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

 

IV 먼저할 일

누가복음 10장 42절: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로 인해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가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봉사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예배드리는 일을 제쳐놓고 봉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기 위하여 촛불을 훔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예화는 아무리 숭고하고 좋은 목적(성경 읽기, 예배 참석, 선교 등)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직하지 못하거나, 불법적이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수단(도둑질, 거짓말, 편법, 부당한 이득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끗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시며, 거룩한 목적은 반드시 거룩한 수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이러한 경우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수집사님이 장로 직분을 받는 것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보다 더 안 좋은 일은 없습니다. 장로 직분을 받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안수집사로서 계속 예배드리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우리 성도 중에 침례 문제로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면, 침례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또 다른 성도들이 한 분만 더 받게 되면 (다음 침례 때)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일 중심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적 중심의 신앙생활을 원하십니다.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목적이 봉사가 아니라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영적인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존재와 소유 중에서 돈의 소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는 ‘존재’의 문제입니다. ‘소유’에만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녹즙을 짤 때 거품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거품을 먹는 것이 아니라 녹즙을 먹는 것입니다. 커피를 마실 때 커피의 거품을 먹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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