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45절,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7월 27일
45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절.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7절.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절.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계획이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이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순복음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의 조화를 잘 유지하면서 인생을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서로 이혼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 100명 중에 단 5명만 성공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경제 활동 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중이 OECD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편입니다. 657만 명으로, 경제 활동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합니다.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월 100만 원도 못 버는 사장님’이 약 900만 명입니다.
매년 약 3,500개 정도 교회가 1년에 개척됩니다. 이 중에 자립하는 경우는 약 0.4%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 대부분이 미자립 교회입니다. (70-80%) 어느 교단에서는 10% – 15% 이야기하지만 부흥이라기보다는 생존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30대에 부교역자 생활하고 40대에 개척을 하는데 대부분의 젊은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30대에 인천순복음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고 40대에 수색에다 개척을 하였습니다. 3층 당구장을 허물고 평은순복음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목회를 하고 합동교회 목사님께 인수인계하고 성원순복음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부흥을 하지 못하였지만 제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고 목회를 하였지만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3년도에 교회를 허물고 이곳에다가 교회를 건축하여 이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빚도 많이 갚고 마음의 평안함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재촉하심
45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재촉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느긋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어도 살리고, 병이 아주 깊이 들어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하면 서두릅니다. 그래서 실수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가 오빠가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도 이틀이나 더 계셨습니다. 완전히 죽을 때까지 함흥차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경우처럼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실 때도 서두르지 않으셨고, 그 결과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 역시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서두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6장 30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벳새다 지역으로 가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다가 보면 잘될 때가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조수의 간만의 차로 인하여 물이 들어오게 됩니다. 배가 물이 들어옴으로 높이 뜨게 됩니다. 배가 움직이기가 쉬워집니다. 이 때 힘껏 노를 저으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할 때, 잘될 때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5병 2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고 요한복음 6장 12절: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절.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절.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백성들이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은 인기를 힘입어서 왕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인기에 목매지 않고
46절.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우리 교회에 화초가 있습니다. 동양난들입니다. 동양난이 봄이 되면 활짝 노란 봉우리들이 힘 있게 피어납니다. 매년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랑합니다. 여러분 제가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겨울이 되면 12월 초가 되면 얼어 죽지 않기 위하여 모든 동양난들을 지하실 창고에 정성껏 모셔 들입니다. 그리고 3월 말까지 추위가 가시면 그때에 꺼내놓습니다. 그러면 하나둘씩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물과 빛을 보지 않게 한 뒤에 이들에게 물과 따뜻한 햇빛을 비추어주니 활짝 피어오릅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림’과 ‘젖음’은 시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하여 흔들림이 있어야 하고, 젖음이 있어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성숙을 위하여 역경과 고난은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8장에서는 정결 예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제 (搖祭, Wave Offering) 히브리어로는 ‘테누파(תְּנוּפָה, tĕnûp̱āh)’입니다. 흔들다, 흔들어 바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물을 제단 앞에서 앞뒤로 흔들며 하나님께 드리는 방식입니다. 제물을 들고 제단 앞에서 앞뒤로 흔들었는데, 이는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흔들면서 드린 제물은 보통 제사장의 몫입니다.
거제 (擧祭, Heave Offering) 히브리어로는 ‘테루마(תְּרוּמָה, tĕrûmāh)’라고 하는데, 들어 올리다, 높이 들어 바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물을 높이 들어 올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헌금을 성전 강대상에서 높이 올려 하나님께 드리면서 축복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위하여 삶을 위하여 드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바람이 거슬려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책이 있습니다. 주워온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는 언쇼 씨의 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집니다. 언쇼 씨의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증오하고 학대합니다. 자신이 사랑한 캐서린은 부유하고 점잖은 에드거 린턴에게 청혼하게 하고 히스클리프는 그곳을 떠나 몇 년 후에 엄청난 부자가 되어 돌아옵니다.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를 도박과 술로 파멸시키고,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한 후, 그녀를 학대합니다. 캐서린의 딸 캐서린 린턴을 낳고 죽고,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은 다음 세대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캐서린의 딸 어린 캐서린과 자신의 병약한 아들 린턴 히스클리프와 결혼시킵니다. 오직 캐서린에 대한 집착과 복수심만으로 살아왔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환영에 시달리며 점점 삶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결국 그는 굶주리고 지쳐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무덤은 캐서린의 옆에 놓입니다. 복수의 굴레가 끝나고, 마침내 어린 캐서린과 헤어턴 언쇼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하여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떠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3. 바람을 거슬러
47절.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산소, 공기, 우리 몸속에 있는 장기들 보이지는 않지만 이것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풍랑은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게 됨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눈에 보입니다.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신뢰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결혼합니까? 우리 사모가 저를 믿고 결혼하였습니다. 우리 사모가 저를 믿고 모든 돈들을 저에게 맡기고 살아왔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가 있습니다. 신학교 채플 시간에 들은 예화입니다.
옛날옛날에 한 부부가 살았어요. 이 남편은 아주 과묵하고,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남편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말을 타고 집을 나섰어요.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그만 웅덩이에 빠져 버리는 바람에 남편이 말에서 떨어졌지 뭐예요!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젖은 옷을 털더니, 말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One Time.” (한 번이다.) 그리고 다시 말을 타고 길을 떠났어요. 얼마 후, 이번에는 말이 발을 헛디뎌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또다시 남편이 말에서 쿵! 하고 떨어졌지 뭐예요! 남편은 천천히 일어난 후, 다시 말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어요. “Two Time.” (두 번이다.) 그렇게 다시 말을 타고 길을 재촉했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 보니, 말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남편은 말에서 내려 조용히 마차에서 총을 꺼냈어요. 그리고는 말이 미처 어찌할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말을 탕! 하고 쏴 죽여 버렸답니다!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너무 놀라며 소리쳤어요. “아니, 여보! 이럴 수가 있어요? 저 말 한 마리 때문에 이렇게 무참하게 죽여 버리다니! 당신 미쳤어요?!” 그러자 남편은 고요히 총을 거두어 마차에 넣고는, 아내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며 아주 조용하게 한마디 했어요. “Three Time.” (세 번이다.)
- 물 위로 걸어오심
49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유기하지 않고 보고 계시고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먼저 물결 위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울산대명교회 박종대 집사님의 식당 봉사와 치유 간증 집사님은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우셨고, 심지어 150번의 항암 치료를 받으시고 4번이나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을 정도로 매우 위중한 상태에 있으셨다고 해요. 하지만 식당 봉사를 포함한 교회 봉사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치유의 은혜를 베푸셔서, 병을 극복하고 회복되셨다는 감동적인 간증을 나누셨답니다.
- 왜 예수님은 사역 내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가? 예수님을 믿게 하는 첫 번째 기적입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귀신이나 유령으로 오인하게 됩니다. 미혹하는 사탄의 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천국에 가지 못하는 자들, 즉 지옥에 가는 자들은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두려워하고, 믿음 생활하는데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드리는 데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핍박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불의를 보고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죄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령이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신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에고 에이미(Ego Eimi)’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약에서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I am who I am) 즉 야훼, 나는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풍랑이 불 수 있습니다. 물질의 풍랑, 질병의 풍랑, 자녀의 풍랑, 교회의 풍랑, 나라와 민족의 풍랑이 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그림이 있습니다. 거대한 폭풍 가운데 파도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지만 어미 품 안에 있는 아기 새들이 가장 평화로운 그림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 않고, 외부적으로는 아무리 거친 폭풍이 몰아쳐도, 그 안에 어미 새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에 평안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풍파가 일고 있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 있고,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으면 평안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 바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참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찬송가 406장 “풍랑이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