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3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7월 3일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2.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3.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1. 산 소망 (빈무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를 기록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베드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쓴 이유는 아시아 주변의 성도들에게 산 소망을 가지라고 하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처럼 평안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정말로 살아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면서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절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시함으로 서신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산소망을 증거하고 싶은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정처없이 떠돌면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자신의 집에 돌아가 정착할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을 나그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찌보면 나그네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살아계시는 산 소망 되신 예수님을 믿고 소망을 자기고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하여 세상에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들을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위협을 우리가 격게 될수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격게 될 질병의 장벽과 물질의 장벽, 그리고 죽음의 장벽을 우리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믿지 않는 자들과 우리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를 보호계시고 그리고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더 활기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신앙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산 소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의 말씀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에서 찬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2) 산 소망, 산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강을 가보면 죽은 물고기는 배를 하늘로 들고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송사리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 살아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올라갈수 있습니다. 아무리 물살이 빠르고 험난하여도 살아있는 것은 앞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있는 신앙은 모든 것을 타협하고 죽은듯이 살아갑니다. 죽어있는 신앙은 도전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앙은 산 소망은 어려움 가운데도 도전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시기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주일 아침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 한국 땅에 도착했습니다. 188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1달 후 1월 25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도착하게 되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신앙, 살아있는 소망은 한 나라의 미래를 살리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은 이렇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산 소망은 부활신앙은 상황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산소망입니다.

 

C.S루이스“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다음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이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덤으로’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소망없는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이사야 22장 13절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즉 저는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부른 던 노래가 기억합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하면서 대포집에서 숟가락을 두둘기면서 유행가를 부르는 것을 기억합니다. 영생과 소망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놀고 엔조이 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말들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육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소망을 품고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사는 놀라운 일들을 하는 것이 산소망입니다.

 

 

  1. 산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2.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옛날에 장례식은 곡으로 시작하여 곡으로 끝나고 그리고 부모가 죽으면 3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동양의 장례식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장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으로가는 발인예배입니다. 찬송을 부르며 더 좋은 곳으로 가신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이 장례예배입니다.

 

우리는 주님은 모든 성경에서 다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마태복음 9:24, 마가복음 5:39, 누가복음 8: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2) 요한복음 11장 11절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3) 고린도전서 15장 51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들은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잠이 잘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새벽기도회 시간에 깨울 때에 벌덕 일어나서 교회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에 벌떡 일어나 주님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굳 바이가 아니라 굳 나잇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업하고 연구하는 것을 보면 정말 밤을 세워가면서 열심히 일합니다. 하루가 짧습니다. 그전에 그렇게 방에서 놀던 아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속에 소망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산 소망이 필요합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국으로 향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필그림)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1.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2.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산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어렵고 힘들은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비하신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달걀을 품고 있다가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태어날 때의 과정을 표현하는 사자 성어가 즐탁동시이다. 병아리가 부화될 때 그 몸부림이 애처롭다고 밖에서 달걀껍질을 깨주면 안된다.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자연 상태에서 병아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수한 움직임과 몸부림으로 달걀 안에서 수백 수천 번 껍데기의 내부를 두드리는 노력을 하는데<즐> 그 과정을 거칠 때 어미 닭이 그냥 밖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기다리던 어미 닭은 안에서 두드릴 만큼 두드려 가장 약한 알껍데기 부분이 금이 갔을 때 밖에서 탁(탁)하고 쪼아준다. 그러면 안에서 병아리가 노력하던 그 내공과 밖에서는 어미닭이 도와주는 그 은혜가 마주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즐탁동시啐啄同時」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고난이 있게 하시는가?” 라고 말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쉽게 은혜를 주시지는 않는다. 은혜의 가치를 알고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비로소 은혜를 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야만 그 은혜를 통하여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간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도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자”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가치를 알고 사모하면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저의 친구들이 신문기자도 되고, 치과의사도 되고, 농협에 취직도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한참을 우셨습니다. 소망없는 목회자가 된다고 하시니, 특별히 더 공부를 3년이상 해야한다고 하니 우리 동생들이 많이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와 보면 그 당시에 세상의 소망보다는 하늘에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필리핀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에서 개척할 때도 아무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늘의 소망 때문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하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바보스러운 몸부림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와보니 주님께서 순간 순간마다 어려운 고비를 이기게 하셨고,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저의 몸부림이였다면 주님은 순간 순간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처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하고 따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우연히도 응답이 오거든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그러한 우연도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은 평생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그 때마다 응답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 떠난 사람 나와 같은 죄인 구하신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를 위한 그 사랑 넓고 넓은 우주 속에 있는 많고 사람중에 나와 같은 죄인 구하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산 소망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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