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6월 4일

 

 

본문에서 야고보는 이제 우리의 생각, 곧 마음의 잘못된 욕심인 육체의 정욕을 제할 것을 권면합니다. 야고보가 앞서 언어문제, 그보다 더 우선하는 지혜문제 다루었는데, 또 우리 실생활의 내면의 문제인 마음의 욕심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루는 것은 이 말씀도 실제적인 행함 있는 믿음 가지기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언행심사 가운데 ‘심사’곧 마음과 생각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언행’을 잘 하려고 해도 우리의 ‘심사’가 고약하면 소용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대로 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 보다 더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잠언에서 말씀합니다. 우리의 언행심사를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이 말씀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서 고칠 것을 고쳐야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모습을 고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육체의 정욕을 버려라”는 것입니다. 아기가 세상에 엄마 배에서 나올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옵니다. 이를 사람들은 “인생이 이 세상에 올 때는 무엇인가 한 번 제가 해 보겠다고, 제 손에 쥐고 흔들어 보리라는 욕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옛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면서 곧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돌 잔치상에서 돈이나 붓이나,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서 아이가 자라서 학자가 될 것인지, 부자가 될 것인지 결정 나는 줄 알고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욕심내어 그 손에 쥐고 갖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아이들을 키울 때도 욕심, 야망이 있어야 무엇을 이루는 줄 알고 아이들에게 욕심을 가르치고, 또 열심히 노력해서 그 야망을 이루도록 합니다. 전 김영삼 대통령도 어릴 때에 자기 책상 앞에 대통령김영삼이라 붙여놓고 야망을 불태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세상은 이런 의욕, 야망들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다 이 지혜로 살아갑니다. 다 자신의 계획된 욕심을 따라 열심히 하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는 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라 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지혜, 위로부터 난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구속함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이 세상이 가르치는 지혜로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굼벵이가 매미가 된 이후에는 다시는 그 굼벵이 시절에 살았던 그 벗어 놓았던 허물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가지라고 하는 욕심, 많이 가지고 많이 얻는 것이 지혜자라고 하는 이 육체의 욕심에 대하여 성경은 오히려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 생각됩니까?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이기에 욕심을 버리라고 합니까? 육체의 정욕이란 세속되고 죄악된 쾌락을 좇는 육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여기서 논리를 잠깐 멈추고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육신의 본능적인 욕구 그 자체를 죄악시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결코 금욕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라”고 하는 금욕주의의 주장들이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지만, 그들은 다 이단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다 선하므로 감사하므로 먹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만일에 음식을 볼 때에 식욕이 없다면 그 사람의 생명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부부간의 성적인 욕구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욕이 육체의 정욕이 되어 제것이 아닌데도 탐하게 되면, 그 때부터 육체의 정욕으로 죄를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음란과 음행은 정욕적인 것이 되어 죄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죄악이 들어온 것이 뱀이 미혹하는 선악과를 하와가 볼 때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이 육체의 정욕에 끌려서 죄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과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임의로 먹을 수 있는 온갖 과실과 또 생명을 얻게 하는 과실도 있는데,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에 욕심이 끌려 죄를 범하고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에도 계속됩니다.

 

이 육체의 소욕을 이루려 했던 첫 사람의 행위의 그 결과로 이 세상에 마귀가 말한대로 과연 행복이 왔습니까? 과연 하나님 같이 되어서 제 욕심을 다 이루었습니까? 밑이 빠진 구덩이 무저갱의 그 욕심을 다 이루지 못하여 인간들의 세상에는 불만과 시기와 끊임없는 다툼과 전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런 일들로 이 세상에 쉴새없이 일어나는 시기와 싸움과 다툼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1절에 이는 인간의 정욕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약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우리 인생들이 망하고 죽는 사망의 원인은 죄요, 그 죄는 바로 욕심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욕심을 가져야 사는 것으로 세상은 가르치지만, 잘못된 자기 생각, 잘못된 육체의 욕심 하나가 결국 죄를 낳게 되고 그 결과는 엄청난 사망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주보속 담겨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과 욕심)

 

이 세상은 결코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 다시 오셔서 세상이 그쳐지는 날까지 이 세상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인간의 욕심과 죄악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이론도 틀린 것이 많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공산주의의 실현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성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죄악과 욕심이 있는 이 세상의 어떤 곳에도 지상천국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주의를 부르짖는 정치들이 실패합니다.

 

참으로 세상은 경쟁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요즘은 대학 입시도 입시전쟁이라 하고, 직장을 구하는 입사도 전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세상적인 정욕의 싸움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안에도, 우리 성도들의 삶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뿐 아니라, 거룩해야할 교회 안에서도 싸움과 다툼이 있으니 이는 어디에서 좇아나는 것입니까? 세상에 있는 것이나 교회 안에 있는 싸움이나 다 같습니다.

 

이는 모순된 것인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를 찾아야합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있는 싸움과 다툼은 모든 우리 지체 중에서 나오는 정욕으로 좇아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먼저 우리 안에 이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을 것이냐, 육체의 정욕을 좇을 것이냐는 싸움이 있는데, 이 갈등에서 결국 육체의 정욕을 좇을 때에 이 대내전에 실패한 결과로 외부의 모든 싸움과 다툼이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싸움이 있습니다. 이를 알아야합니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 세상이 그러하듯이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일어나는 모든 싸움과 다툼은 결국 믿는 자라 할지라도 이기적이고 욕체의 욕심을 따르는 사람들, 곧 자기 육체의 정욕과의 싸움에서 패전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꼭 같은 욕심을 가지고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우리는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르면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이 육체의 욕심을 자기 생각이라고 옹호하여 이를 이루려 할 것이 아니라, 이 육체의 욕심은 우리의 원하는 화평과 선과 의를 깨뜨리고, 모든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는 원수인 줄 알고 이와 싸워야합니다. 이를 제하여 버려야합니다.

 

(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했습니다.

 

욕심을 낸다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를 이루기 위해 시기하고 미워하여 살인하기까지 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합니다. 아합왕은 나봇이라는 자기 백성의 포도원을 욕심 내었습니다. 그 조그만 땅을 얻어봐야 한 나라의 왕에게 무슨 큰 유익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땅을 얻지 못하여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세벨이 이 땅을 빼앗기 위해서 나봇을 하나님을 저주하고 왕을 저주한 사람으로 모함하여 그를 돌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안 가질 욕심 하나를 잘 못 먹을 때에 그 결과는 무섭습니다. 아합은 이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큰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욕적인 삶을 버려야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런 무저갱의 인간 욕심을 세상은 가지라고 하지만 이 욕심이 사람을 복되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욕심 때문에 싸움과 다툼이 끊임없이 이 세상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정욕적인 삶을 버려야하는 것은 정욕적인 삶의 자세의 우리 기도는 응답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좋은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 주시는 복에 속한 것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베푸십니다. 우리가 이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어도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이러한데 왜 구하지 않습니까?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고 자랑하는 교만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결코 은혜를 베푸실 수 없습니다.

 

(시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때에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찜입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가장 많은 갈등일 것입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기도는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다 하시지만, 하실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죄를 짓는 일과 자녀인 우리를 망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는데도, (여기 ‘잘못 구함’이라는 것은 악함을 말합니다.) 들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치는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들어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먹으면 죽을 독약을 모르고 자꾸 달라고 할 때에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의 요청이라도 그 것은 들어 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하였다해도 그 기도가 동기와 목적이 바로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응답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기도라도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간구, 이는 악한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정욕으로 쓰려고 정욕적인 목적으로 기도한 것은 절대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원수에 대하여 복수해 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물질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기도로 근심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땅의 소망만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면 다 들어주실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

하나님은 이방신과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것도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약속하시고 특권을 주신 것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의 특권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우리가 무조건 구한다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습니까?그런 하나님은 우리 부모들 보다 못난 자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망하는 것을 구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아예 기도는 우리의 뜻을 이루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닌 줄로 알아야합니다. 이방인들이 저들 우상에게 구하는 것은 다 세속적이요, 정욕적인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그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찾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 하는 것입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들고 기도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이 있고, 또 주님의 소원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주님의 소원입니다. 이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다 주님의 뜻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는 다 응답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욕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잘못된 악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신앙생활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능력 있는 삶은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구한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는 정욕을 버려야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시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욕을 좇아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줄로 생각하느뇨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뜨거우면 그 사랑을 배반한 자에게 대하여 분노하는 것도 뜨거울 것입니다. 사랑함이 적으면 시기도 적습니다.

이랬는데, 이 여인이 이제 그 남편을 버립니다. 우상을 섬기며 세상을 따라 나간 이스라엘을 상징해서 말하는 것입니다.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우리는 얼마나 세속을 미워해야하며, 정욕적인 삶을 멀리해야합니까?이 세상과 벗되어서 세상을 탐하여 세상에 속한 자들과 같은 지혜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기하게하여 진노케 하는 원수의 죄라는 인식을 가져야합니다. 그저 우리가 두 마음을 품고 세상의 정욕대로도 행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지 않느냐 절충하는 타협주의 신앙을 가지려하지만, 주님은 우리 신앙에 중간지대는 없음을 말씀합니다. 세상과 벗하여 정욕적인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한 하나님을 질투나게 하고 진노하게 하는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고 했습니다.나의 삶은 세상과 벗하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전부를 다 기울이신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하나님을 우리가 배반할 때에 세상 간부와 짝하여 돌아다니는 것을 하나님은 참아 볼 수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어 그 진노를 피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과연 이기적인 정욕적인 삶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신부로서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시는 것은 말씀으로 하셨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영광과 부요와 권세를 다 내어놓으시고 죽기까지하여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게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이런 사랑을 입었는데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가 세상을 벗하여 간부를 따라 나간다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겠느냐하는 것입니다.성령께서 탄식하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십니다. 육체의 정욕을 버려야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이 정욕적인 삶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에게는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정욕적인 삶을 우리에게서 제해야합니다.이 욕심 때문에 세상에도 교회 안에서도 싸움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세상과 벗된 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시고 은혜 배푸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하나님과 원수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기 하시기 까지 분노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가야합니다.육체의 소욕은 사망을 이루지만,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으면 그 결과는 생명과 평강입니다. 이 성령의 소욕이 바로 위로 부터난 지혜입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의 지혜, 처세술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 위로부터 우리에게 주신 인간의 깨달음이 아닌 계시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만이 우리의 생애 법칙입니다.이 성령의 인도를 좇으면 이제 우리의 삶에는 평강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결과 교제로 하나님과 가까이 함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입혀 주십니다. 성령의 소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정욕적인 생각을 제할 수 있습니까?이는 의지로 결심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첫째로, 너희는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 가까이 해야합니다.세상과 벗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삶입니다.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데서 벌써 정욕적인 생각은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또 지으려고 계획하는 자는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가까이 했지만, 죄를 범하고 나니 하나님에게서 멀리 도망합니다. 죄를 범하고 세상에 젖어 살다보면 예배당에 와서 앉는 자리도 앞자리에서 멀어집니다. 말씀과도 멀어집니다.시편73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보아야합니다. 가까이 하려는 자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제는 자신의 육체가 이끄는 데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세가 됩니다. 또 마음을 정결케하라 했습니다.어떤 마음을 버려야합니까? 두 마음입니다. 믿음의 마음이 아닌 두 마음, 의심하는 마음, 이런 마음은 얻기를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두 마음을 가진 남편을 어떤 아내가 가까이 하겠습니까? 두 마음을 가진 아내를 사랑할 남편은 없을 것입니다.둘째는 마귀는 대적하고 죄를 짓던 손을 씻으라 했습니다.이제 우리는 이 마귀가 주는 정욕적인 삶을 회개하려면 마귀의 정체를 알고 이 마귀와 싸워야합니다. 싸우는 방법은 죄를 짓던 손을 씻는 것입니다. 마귀는 죄악이 있어야하는데 죄악이 없는 곳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검이 있는 것에 독수리가 있습니다. 더러운 썩는 물질이 있을 때에 똥파리가 달려 듭니다. 죄를 회개하면 마귀는 물러납니다. 우리가 마귀를 적극적으로 대하여 싸우지 않으면 이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원수되게한 죄를 미워하며, 마귀를 적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됩니다. 어느 편이든지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마귀에 종이 었으나, 이제는 마귀를 이기신 주님의 승리를 힘 입을 때에 마귀를 호령하고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마귀는 우리 보다는 강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마귀보다 크고 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마귀를 이기었다고 했습니다. 믿으십니까?죄를 짓게하는 마귀가 제일 큰 원수입니다. 이를 말씀으로 호령할 때에 꼼짝 못하고 물러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죄를 짓던 손을 씻어야합니다.이제 주님의 피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깨끗케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짓던 몸과 행위를 씻으면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가치관을 바꾸어야합니다세상이 좋아보여서 정욕적으로 살게되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약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세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안심하고 만족을 누리던 자들아!이제 너희의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의 즐거워하는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구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미혹을 받아 세상적으로 정욕적으로 모든 평가와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 것, 네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계획하고 이루어 나가는데 열심했고 이루어진 것으로 만족함을 느끼지만, 슬퍼해야한다. 애통해야한다. 울어야한다는 것입니다.(약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약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약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약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해야합니다. 바울이 말씀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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