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16절 일하시는 하나님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8월 12일

 

  1.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3.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나를 도와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저의 삶을 통하여 목회를 통하여 일하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제 여동생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남편을 성균관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왔습니다. 행복하게 살 것같았던 생활이 4년만에 삼성을 그만둠으로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과외를 시작하였고 동생은 열심히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과외를 영원히 할 수 없어서 지금은 우리 2째 동생의 권유로 인력관리사무소를 시작하면서 정말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돈을 주워야하고 그리고 돈을 받아야할 곳은 차이피일 미루다보니 이곳 저곳에서 돈을 꾸워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막내여동생이 다는 교회에서 약 200만원정도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 막내 여동생을 도와주시지 않으시는가? 2째, 4째 동생들처럼 우리교회에서 잠시 기도하고 가면 잘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워낙 식구들이 많아서 5식구입니다. 그래서 권유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이하를 보면 그렇게 복음에 열심있는 스데반집사님이 사울에 의하여 순교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스데반집사가 순교할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슈사코가 쓴 침묵에 보면 그렇게 많은 일본사람과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하나님의 침묵하고 있다고 소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이 정말 일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고 역사하시고 계시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일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날은 빛을 창조하시면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둘째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셋째날은 바다와 땅과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넷째날은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다섯째날은 새와 물고기를 만드셨고, 여섯째날은 사람과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날은 안식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0장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런데 하나님은 일하지 않는 것 처럼 느끼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난 뒤에 안식하셨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쉬고 계시는 이유입니까? 아닙니다.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복주시기 위하여 복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홍해 한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백성들과 그리고 앞에 있는 바다를 보고 무서워 떨어면서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하면 어설프고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면 새로고 놀라운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들을 열심히 해야합니다. 학생은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하여 공부해야합니다. 직장인들은 열심히 회사를 위하여 일하여 회사에 이익을 주워야 월급을 받고 직장에서 진급할 수 있습니다. 농부도 열심히 일하고 밭을 매게 됩니다.

 

같은 해 9월 11일 오전 9시경 최초의 미국 본토 공격으로 기록된 911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수장으로 있었던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알카에다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하여 미국 경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미국군사의 중심 펜타곤, 미국대통령의 별장 캠프데이비드를 공격할 계획이였습니다. 그 가운데 3대는 성공하고 1대는 용감한 시민에 의해 피치버그 동남쪽에 추락하여 실패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비행기에 탑승한 266명이 사망하였고 펜타곤에서는 125명이, 세계무역센타는 3천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날 기사제목은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지? (Where is God),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지 하면서 많은 사람이 사랑많은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쏫아내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역사를 운행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성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에게 성숙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2.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3.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4.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찾아가셔서 치료하신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낙도 없고 소망도 없는 38년된 병자에게 나머지 인생에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찾아가서 그냥 치료하지 않고 “병이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고 질문하셨습니다. 소망이 없는 병자에게 소망을 주고 자신이 병자가 아니라 더 성숙한 일원으로 살기 위하여 찾아가신 것입니다.

 

당시의 율법으로는 예수님이 안식일날 일하면 안되지만 예수님은 그 환자의 성숙을 위하여 치료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38년된 병자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더 성숙할수 있도록 더 일할수 있도록 완전한 치료를 주시기 위하여 오늘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여도 닭은 독수리가 될수 없습니다.

여러분 고양이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호랑이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반드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는 절대 일하지 않으십니다. 기독교가 성장할 때에 기독교가 순수해지고 강할 때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입니다. 더 성숙하고 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는 기간이 바로 하나님이 침묵하고 일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이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안식일에도 일하신 것 같이 매일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마마보이, 파파보이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우리가 성장할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공원이나 산에 가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안내문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다보면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동물원에서도 육식성 동물들이 본성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살아있는 먹이를 주기도합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오히려 야생성을 떨어뜨려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것ㅇ비니다.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주의 별명이 팰리컨 주입니다. 부리가 주걱처럼 생겼다고하여 펠리컨컨 주입니다. 특별히 펠리컨이 해변에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이곳은 지금도 매년 수만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관광명소입니다. 어느 수간부터 이곳의 펠리컨들은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것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동물보호단체와 학자들은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페리컨의 야생성이 파괴되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결국 주 정부는 팰리컨에게 먹이주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주정부의 이러한 조치로 펠리컨들이 야생성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어가는 펠리컨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주정부관계자들은 당황하게 되었고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 이 지역의 펠리컨들은 사람들이 던져 주는 먹이를 받아먹은 탓에 야생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먹이를 주지 않자 스스로 먹이를 잡아먹을 수 없었던 펠릴컨들은 결국 굶어죽고 만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른 지역에 사는야생 페릴컨들을 잡아와 함께 생활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야생 펠리컨들은 다른 지역의 야생 펠리컨들을 이주시켰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해결책이 될 것인가 의구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나비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나비의 생애는 애벌레와 번데기 그리고 성충으로 구분됩니다.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는 성충이 되기 위해서 번데기의 시기를 반드시 거쳐야합니다. 보통 7일 동안 번데기의 시간을 보내고 껍질에서 나오는데 이때 껍질을 뚤고 나오는 모습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돠와준다면 나비는 냐약해져서 결코 날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녀가 혼자서 먹을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할 때가 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 피가 흘러도 일으켜 세워주지 말아야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못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시는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의 기간동안 후반기 사역은 제자들의 사역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고울마다 보내시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기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거나 그분이 아무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할 것은 하나님은 무능하신 분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 분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급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면 신학교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4년동안 그렇게 가난한 신학생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하여 전도사 생활을 해야하는데 전도사 생활이 눈에 차지 않습니다. 보수도 적고 그리고 일하는 것이 대기업 수준도 아니고 구멍가계수준이라서 놀고 먹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작은 일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권면하였지만 나는 그런일 하기 위하여 신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큰소리만 치고 다는 전도사님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전도사님이 여전히 망상에 꿈을 꾸면서 살고있다고합니다. 작은 일에서 실천하고 더 큰일로 성숙해 나가는 꿈을 꾸워야합니다.

 

  1. 함께 일하므로 상급을 주기 위함입니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우리를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폴스티븐스는 “하나님을 위해일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그분과 함께 일해야했습니다.”

 

하나님은 돌들에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수 있는 분이라고 (눅3장 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고 우리에게 보람을 주시기 위하여 그분의 일들을 우리에게 맞기 시고 그것들을 통하여 상급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 이웃을 돌보는 일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이 거룩한 부르심에 우리가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 굶주린 영혼, 질병으로 고생하는 영혼 사고와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아프리카에 굶어죽는 인원들을 유럽에서 책임질수 있습니다. 남미에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국과 케나다에서 책임질 수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이 세상은 고통으로 홍역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어려운 나라들을 돕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것입니다. 그들에게 상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동안 200만명이나 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일하고 게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들을 먹이지 않고 계시는냐? 우리들과 함께 일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함께 동참하여 더 좋은 사회로 나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것을 사용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작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하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기적을 베풀기 전에 먼저 너희에게 있는 것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어린아이와 사역을 동역하셨던 것입니다.

 

1898년 독일의 화학자 알프레드 에인혼은 인류의 비중독성 마취제를 개발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수술용 마취제로 코카인을 활용하였습니다. 코카인이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후 중독성이 없는 새로은 코카인이라는 뜻의 노보카인을 발명하였습니다. 에이혼은 자신이 발명한 마취제를 의사들이 사용하게 하려고 그의 남은 생애 20년을 쏟어부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취제는 외과의사들보다 치과의사들이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었을 때에 에인혼은 불쾌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이 사람을 죽이는 칼로 둔갑하여 사용하거나, 야구방망이가 야구장에서 사용하지 않고 조폭들에의하여 사용하게 된다면 누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겠습니까?

 

 

  1.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예수님
  2.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첫날부터 6일까지 일하시고 쉬셨는데 안식하셨는데 우리가 무엇이관데 주일까지도 일하느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쉬어야합니다. 안식해야합니다. 하나님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식하였다고 하여 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안식은 쉼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좋은 복으로 더해주기 위한 하나님의 지켜봄입니다.

 

유대인들은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식일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쉼이 있어야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을 가지고 안식하지 못하도록 더 많은 안식의 율법을 만들어놓았습니다. 39가지의 일들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버턴을 누루는 일을 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엘리베이터가 각층마다 설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안식일날 불을 피울수 없도록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걸어갈수 없도록 걸어다니는 길이도 정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아닙니다. 안식일날 아프지말아야합니까? 병원을 가지 말아야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사람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고 예수님의 일하는 모습입니다.

 

안식을 통하여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 없이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달란트의 비유가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는 한달란트는 엉청난 것일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3명의 사람들중에 가장 현명하고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작은 것을 맞겼다고 신학자가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저에게 어찌보면 한달란트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10명에서 15명의 성도를 모시고 포기 하지 않고 지금까지 18년동안 함께 온 성도들에게 감사합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결과를 남겼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았는냐의 평가입니다.

 

개나 소나 다 목사가 된다는 비판논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자질을 높여야한다는 말에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작은 종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보일러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사들만 실험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합니다. 모두 박사들만 있으면 그 실험실에서 실험할 수 있도록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하는데 그 기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박사가 아니라 손재주가 좋은 사람으로 선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아닌 손도 필요하다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500년의 역사를 발전 시켰는데 어던 목사님이 위대한 목사님입니다. 루터, 칼벵, 웨슬리, 길선주, 주기철, 김준곤, 조용기 옥한흠, 김삼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런 빛없이 작은 달란트를 받아서 농어촌에서 헌신적으로 목회한 목사님이 위대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과 저도 예수님처럼 끝이없이 예수님의 작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비록 메스컴에 세상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들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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