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19절 부활주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4월 20일
-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 의심많은 도마
신앙생활은 믿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모든 말씀을 믿는 것으로 부터 출발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에 의심이 많은 성도들을 보게됩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정말 천지를 일주일만에 창조하셨어요?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낳으셨어요?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어요 하고 묻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심도 예수님의 시대에 있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도마라는 뜻은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디두모 도마에 대하여 프린스턴 대학의 일레인 페인절스 교수님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도마 복음을 반대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을 작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도마가 요한복음을 썼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도마는 처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에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요한복음 20장 25절)
FF 브루스 신학자는 도마가 우울한 성격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page 559-560) 또한 도마는 불신의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확인하고 싶은 열망으로 주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도마의 생각은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영운 pp 179-180)
고후 13장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도마도 남의 말만 믿고 믿는 것이 아니라 나가 보고 확신을 가질 때에 믿음이 확실해진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부활의 확증을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도마의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의 결론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철학은 삶의 궁금함을 묻는 것이고, 종교는 영생의 궁금함을 묻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허구인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허구가 아니라 참된 진리를 바탕으로 세워진 종교입니다.
- 의심 많은 야고보
예수님에 대한 의심이 많은 사람이 야고보서를 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고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천사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주셨지만, 동생 야고보는 어머니의 말씀만 믿고 살지 않았는가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야고보 동생을 만나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도마를 그리고 동생 야고보를 만나 주셨을 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예수님을 만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 1대 담임목사님이 되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바울이 어려운 결정을 할 때에 사도 바울의 의견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갈라디아서 1장에, 사도 바울이 회개한 후에 만 삼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사도 베드로를 만나고자 했으나 어디 갔는지 못 보고 대신 주의 형제 야고보만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 도마의 믿음의 고백
-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신앙생활의 첫걸음을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몬아 복있다, 이를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2가지를 축복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워주시겠다고, 그리고 그 교회에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도마의 고백은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예수님은 나의 반석, 예수님은 원수 마귀를 무찌르는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 가난을 해방시키시는 분,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 모든 가난의 저주를 물리치는 분, 그분은 나의 운명을 바꾸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도마의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부활의 주님이 그러한 고백을 듣고 이렇게 후대의 성도들에게 축복합니다. 나를 본 고로 믿는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신론자 볼테르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스땅달은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잉거솔 내가 하나님을 5분동안 저주할 테니 그 동안에 나를 죽이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거나 있어도 실패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테오도르 파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실패하실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인데 겨우 5분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체스터 베델(Chester Beddell)이라는 무신론자는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이 뱀으로 들끓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1908년 82세의 나이로 죽었다. 장례식 때 관을 무덤에 내려놓으려 했을 때 뱀들이 있어 뱀을 먼저 치워야 했다. 묘지지기에 의하면 다른 무덤에는 뱀이 없는데 그 무덤 주변에는 늘 뱀이 있다고 한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의심입니다. 이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의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심을 끊어버릴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025년 2월 28일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8번째 장편 영화.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에드워드 애슈턴 작가의 SF 소설 《미키7》을 원작입니다. ‘미키17’ 한 달만에 극장에서 내려졌습니다. 손실이 1천170억원 입니다. 관객수가 299만8천372명, 누적 매출액 약 296억원으로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봉준호 감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원작자인 에드워드 애슈턴이라는 사람에게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그는 생물물리학자입니다. 게임 중독자입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라는 게임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아는 게임입니다. 인류의 문명이 또 다른 행성에 옴겨 문명을 만들고 기술을 발달시키고 과학을 발달 시키는 유명한 게임입니다. 7번째 version이 나왔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수 시간동안 그곳에 빠져 중독된다고 합니다.
이 게임에 중독된 에드워드 애슈턴은 아내로 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혼하자고 하였습니다. 죽여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장 그만드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무엇인가 해야하는데 그것이 글 쓰기였습니다. 그 책이 바로 미키 7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문명이라는 게임을 그만두게 한 것도 아내요, 글을 쓰게 만든 것도 아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한가지 이상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돈에 중독되든지, 마약에 중독되든지, 술과 담배에 중독되든지, 성에 중독되든지, 도박과 게임에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세상에 중독된 사람들이 예수님의 중독된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입니다. 문명이라는 세상에 중독에서 벗어나 미키7 만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에 중독되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파스칼이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나님은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지 말라
-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서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문들을 통과하시며 제자들 가운데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샬롬하셨습니다. 다시 살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살아계신 자신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내가 한 사역을 너희들도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2장 10절: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하고 장로님하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성찬식을 하는데 성찬기를 집어 던졌습니다. 교인들이 누구도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이 소리를 지르고 성찬기를 집어 던졌는데도 그런데 학생 하나가 성가대 가운을 입고 와서 장로님을 뒤에서 탁 움겨 잡았습니다. 장로님 왜 이러세요. 그 아이 하나만 제지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장로님은 성전 계단에 내려오다가 목이 부러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말린 청년은 나중에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름 대면 다 아는 주의 종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목사에게 순종하라 잘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시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고 예수님이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목사님이 개척하였다고 목사님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성령님이 역사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여전히 응답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선성함을 무시하고, 교회 경멸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죄를 하나님이 오래 시간 보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메뚜기와 하루살이가 하루 종일 논에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날이 저물자 메뚜기는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이젠 저녁이 다 되었어.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또 놀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습니다. “메뚜기야, 내일이 뭐니? 어떻게 내일 또 놀자고 하니?”. 메뚜기는 잠시 후면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모든 동물이 다 잠을 자게 되는데 잠자는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메뚜기는 개구리와 온 여름을 함께 놀았습니다. 가을이 오고 날씨가 차가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뚜기야, 내년에 만나 다시 놀자”. 메뚜기는 내년이 뭐냐고 개구리에게 물었습니다. 개구리는 흰눈이 천지를 뒤덮고 얼음이 얼고 몹시 추워서 모든 개구리가 땅 속에 들어가서 오래 오래 겨울잠을 자고 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오는데 그 때가 내년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메뚜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사람, 하나님의 차원을 모릅니다.)
내일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천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 많은 도마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만나고 우리는 변화되어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