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34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믿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4월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필립 얀시, P.71
한국 권투선수와 레이 맨시니에 대하여 간증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1982년 11월 13일 21세 맨시니는 27세 대한민국 도전자 김득구를 만나게 됩니다. 장소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시저스 팔레스(Caesars Palace) 경기장입니다. 15 라운드 경기중 14 라운드 동안 김득구를 쉽게 타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4라운드에 카운터 펀치를 맞고 뇌손상으로 5일 뒤에 사망하게 됩니다.
김득구 어머니의 인터뷰 “의사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여도 살리질 못했으니 선생님 이제 그만 괴롭히고 (호흡기 떼는 것을) 내가 허락합니다. 내 자식은, 김득구 선수는 세상을 떴거니와. 내가 나라에다가 바치고 갑니다. 그런지들 아슈…”
맨시니는 대한민국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후에 극한 우울증에 빠졌고, 맨시니는 김득구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게 되었고 반성의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맨시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을 빼앗기고 복싱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 경기의 결과 선수들의 안정을 위하여 복식 풀 라운드 15를 12라운드로 단축하게 됩니다.
결혼식도 못 올린 약혼녀는 스물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고푼 시절 헝그리 복서로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된 불운의 복서입니다.
김득구의 약혼녀 이영미(53세), 이들 김지완(29세)와 맨시니(51세)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린 아이 때 기완씨를 안고 있는 어머니 이영미는 김득구 선수가 숨질 당시 김지완을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이영미씨와 김지완씨는 언론 접촉을 극구 꺼렸습니다. 하지만 맨시니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싸웠던 복서로서 아버지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영미씨와 김지완씨를 설득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의사로서 일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대견스럽다고 하였습니다. 메시니는 지완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뭔가 이제서야 제 인생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의 끈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경기를 봤는데, 정말 30년 전에 엄마 뱃속에 있던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웠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가슴 깊이 느꼈어요.”
아버지의 경기를 본 후 맨시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어먹고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맨시니를 만나기 위하여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자네를 만나고 싶었다네. 자네 역시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막상 만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 맨시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 이제 제가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지완씨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이제 아저씨도 편하게 사실 때가 됐어요.”저녁을 먹으며 “난 그 사건 이후 평생을 죄책감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복싱에 대한 열정도 다 사라졌고요.” 맨시니의 말에 지완씨는 “건강을 위해서도 빨리 그만두길 잘하셨다”면서 “저도 사실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경기를 본 뒤 당신을 향해 증오심이 생겼었죠. 하지만 차분해진 뒤 다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당신의 잘못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김득구의 아내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아기를 가지고 있었잖아요. 저한테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거였어요.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했죠.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 우리 가족, 그리고 맨시니 가족도 칠흑 같은 과거에서 비로소 해방된 것 같아요.”
2. 본문해석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1)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이 말씀은 다니엘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러간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느브갓네살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죄로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단 3:23-37).
2) 칼날을 피하기도하며는 엘리야 시대 때에 이세벨의 때이기도 하고, 예레미야 때 여호야김을 피하기도하고, 다윗도 사울왕의 칼날을 피하기도하여 도망다닌 것,
3)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된 것은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제일 보잘 것 없는 가문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300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삿 6:31)
4) 연약한 여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금식기도한 후에 아하수에로 왕앞으로 나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1) 구약시대 열왕기상 17장에 사르밧과부와 수넴여인입니다. 사르밧과부는 엘리야를 위하여 자신의 먹을 양식을 공괘함으로 기근 가운데 살아남았습니다. 수넴여인(왕하 4장)은 엘리사를 공괘함으로 아들을 얻게 되었고 죽게 되는 과정속에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2) 나인성 과부(눅 7장), 나사로의 부활 (요 11장), 도로가의 선행으로 베드로가 그녀를 살리고(행 9장)
3)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행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더 좋은 부활은 헬라어로 크레이트토노스라는 단어인데 일시적인 부활이 아니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수넴여인의 아들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나사로도, 도로가도 부활하였지만 다 죽었습니다. 이곳의 더 좋은 부활은 완전한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격게 되었습니다. (렘 20장 2절), 사람들로부터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으며(렘 29:7), 구덩이속의 진흙에 던져지기도 하였다(렘 38:6).(33장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1) 돌로 치는 것,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는 회개를 촉구하자 유대인들은 예레미야를 돌로 처 죽였습니다.
2)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라고 탄식하셨다(마23: 37)
3) 사도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는 것에 증인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의 제자 순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KGnFI0zkEw
4) 톱으로 켜는 것
이사야가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어떤 선지자입니까? 히스기야를 바르게 모범적으로 이끈 선지자입니다. 어찌보면 정말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메시야(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였고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185,000명의 앗수르 군대를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동안 연장할 수 있도록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15년동안 연장받아 한 일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기 자랑, 천하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를 자신 뒤에 왕으로 앉히고 죽은 사람입니다. 이 므낫세가 이사야를 톱으로 켜 죽였습니다.
●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핍박이나 환난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 교회에 대한 믿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서 유리한다 하여도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우선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의 보상을 위하여 영원한 천국의 보상을 위하여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있는 성도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세상을 두렵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세상을 감당치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조금만 어려워도 교회 나오지 않고, 조금만 어려워도 믿음이 흔들리고,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조건부 믿음입니다. If의 믿음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예수님을 잘 믿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번창하면 내가 행복해진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내가 성공한다면 그때서야 나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교회에서 여분의 물질을 드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반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if(조건의 믿음이 아니라), even if (비록 어렵다하고 할찌라도)입니다. 비록 할지라도의 신앙은 비록 악한자들이 번성하더라도, 겟세마네에서 피와 땅을 흘리며 기도하더라도, 갈보리에서 나의 잔을 마시더라도, 그래도 나는 나의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욥도 부르짖었다.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할 것입니다. (욥 13장 15절.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현대인의 성경 참조.
바울은 고전 4장 11절에 자신을 둘러싼 비참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말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후 12장 7절에 육체에 가시를 없에 달라고 3번 기도하였을지라도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긴급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것 같은 시간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아에 계시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는 기간을 오래동안 견뎌 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가는 우리도 때로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진기한 경험을 하겠지만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성경의 무수한 약속들이 새빨간 거짓말처럼 보이는 시간도 겪어야할 것이다.
하박국 3장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11: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믿음을 지키면서 살았지만,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영원한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39절의 약속된 것이란 “약속의 완전한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아벨부터 시작하여 지금 우리 시대에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을 받고 있는 모든 자들입니다.
영원한 약속은 히브리서 9장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확신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장모님의 기도 “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의지할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보내주세요. 갈 곳이 없습니다. ”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용광로는 눈에 보이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었고, 뒤로 물러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스톱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확신으로 고(go)를 외치지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살아계심으로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좋은 것을 예배하십니다.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시편 119: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두려움과 믿음 사이에 무엇이 사람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가?”
이러한 믿음은 하룻 밤 사이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계속적인 의심에 의심을 격고 고난을 격게 되면 의심의 안개가 걷히고 뚜렷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부자들은 고난 속에 이 고난을 물러가게 기도하지만, 가난한 성도들은 이 고난을 견딜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갈등 속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에 올랐고, 욥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종기를 긁었고, 다윗은 동굴 속에 숨어야 했고, 엘리야는 몹시 침울한 상태에서 사막으로 들어갔으며, 모세는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하나님께 간청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이나 수단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과 우리가 어려움을 격는 것과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지진, 전쟁이 계속적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어려움 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시계추처럼 신앙에서 불신앙으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계속 왔다갔다 합니다. 결국 머물 곳은 어느쪽일까? 한번도 신앙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트런트 러셀에게 한 여성이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생각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어 천국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당신은 뭐라고 말할 건가요? “저는 신이시여, 왜 우리들에게 충분한 증거를 주시지 않습니까?”
너희들도 가려느냐 예수님이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듯, 또 한편으로는 체념한 듯한 말투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요 6장 60절)
현대사회는 지성과 그럴듯한 외모, 자신감 있고 세련된 태도를 높게 평가합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계획하신 일을 이루려 하실 때에 하나님을 믿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 “부리단의 당나귀(Buridan’s Ass)”
14세기의 한 프랑스 수도사는 당나귀 우화를 통해 그 유명한 딜레마를 설명했다. 한 당나귀가 멀찍이 떨어뜨려 둔 두 개의 건초더미의 정중앙에 서 있습니다. 둘 다 똑 같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당나귀는 양쪽의 건초더미들을 번갈아 처다보며 머물거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할지 결정해 줄 적절한 논리가 그 당나귀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건초더미는 서로 비슷해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측더미로 가면 좌측더미가 더 많아 보였고, 좌측더미로 가면 우측더미가 더 크고 먹음직스러웠다. 결국 당나귀는 두 건초더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아침에 굶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결단의 중요성에 대한 일화입니다.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면 신앙을 선택하지 못하고 우물주물하다가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 길이 나은 선택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최악의 선택”보다 더 불행합니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시카코의 우리교회의 한밤중 기도회를 밤중에 모이는 것이 안전할 것일까?
극빈층의 사람과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도하실까요? 한 시간 두시간이면 될까요? 우리는 밤새도록 기도할 겁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노인이고 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고 믿음이 있고, 어차피 우리는 잠도 많이 안자요, 필요하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밤새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아무도 예상 못하는 곳에서 자라고 당연히 성장할 줄 알았던 곳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 편에서만 일방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침 받는 사람의 믿음에 의해서도 좌우되었습니다. 백부장은 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자기 하인이 나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눅7:9)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지 개들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고집센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장 28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신앙과 대조하였을 때에 뒤처지는 장면들을 보게됩니다. 예수님의 사촌은 훗날 세례요한 역시 예수님의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열두 제자중에 도마는 의심했습니다. 예수님을 세번이나 저주한 베드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 고백은 복음서에 나오는 기도 중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고뇌에 찬 기도입니다. 나는 이러한 고백이 믿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고처주실 분이 베드로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이였습니다. 지금까지 의심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의심이 우리를 깊은 믿음으로 인도해 주는 대신 믿음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도 있습니다.
마땅히 의문을 품어야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신앙의 형태들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의심 덕분에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영적 무기력증을 무방하는 정신병처럼 작용하여 나와 정 반대의 결과를 낳기도합니다.
밀턴의 작품중에 사탄은 천국에서 섬기는 거보다 지옥에서 군림하는 것이 낫다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팔을 비틀고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을 믿으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앙을 부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증거들로 넘처나지만 확신하기에는 또한 너무 부족한 증거들도 많이 있습니다.
연세대 정문에 들어서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지혜로 자유케하십니다. 복음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죽이려고하였습니다. 복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이 자유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의 힘입니다. 질병에서부터 또한 자유롭게 되는 것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능력입니다. 세브란스 정문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질병에서 자유케한다고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