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5장 11절 하나님 앞에서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월 15일

잠언 15장 11.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11.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밝히 드러납니다(11(상)).”

음부는 스올, 유명은 아바돈으로 죽음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내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스올은 ‘죽은 사람의 영혼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아바돈은 무저갱을 의미하는데 지옥의 가장 깊은 한 곳, 무저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눅 8:31, 계 9:2).

그러나 이러한 세계도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마음 조차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 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가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코람데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 뜻은 코람은 앞에서, 데오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종교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주교요,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천주교의 신앙에서 기독교의 신앙으로 넘어오면서 이 코람데오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입니다.

신명기 13장 1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
1) 하나님 앞에서 생활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스스로 득도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영어적인 표현으로 Keep in mind입니다. 마음에 두어라는 뜻입니다. Keep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가지고 가라는 뜻입니다. 무엇 무엇을 보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속에 두어라는 것입니다. 명심하고 깊이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이 바로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39장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에게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해도 요셉은 단 한 순간도 코람데오의 신앙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전해 오는 옛 이야기에 의하면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자 보디발의 아내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한 얼굴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말뜻을 알고서 빙그레 미소를 짓고 화려한 자수로 장식이 된 커튼을 찢어 그것으로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이집트 신상을 머리에서부터 아래까지 덮어씌워 보지 못하도록 가린 후에 “이제 신은 우리를 보지 못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신은 여전히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 분의 눈은 결코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 분에게는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거든요.”
요세푸스에 의해서 기록된 <유대 고대사>에 의하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마지막으로 유혹하던 때는 민속 축제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여인들이 민속 의식을 즐기기 위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기 위하여 남편에게 몸이 불편하다고 핑계를 대고 홀로 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회를 얻게 되자 전보다 더 달콤한 말로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에게 자기의 애정을 받아주고 자기의 말을 따라 준다면 지금까지 누리던 특권은 물론 더 큰 특권도 누리게 될 것이지만 순결을 고집하고 자기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거절할 경우 남편에게 요셉이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말하면 보디발이 요셉보다 자신을 믿을 것이니 그러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간청할 때 요셉은 동정심도 들었고 한편으로 그녀의 협박에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요구에 응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간청을 뿌리치다가 그녀의 손에 옷을 남겨 두고 도망을 가버리자 보디발의 아내는 거절당한 분노를 못 이겨 ‘강간범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슬픈 모습을 하고는 요셉의 옷을 보여주면서 그 옷을 가지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댔습니다.
분노한 보디발 앞에서 요셉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변명을 한다고 해도 보디발 아내의 말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받아들여졌다면 주인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기로 작정했을 것입니다. 형들의 잘못을 늘 고자질하던 요셉이었는데 그동안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확실히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당시 상황에서 요셉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성실했던 요셉이었고 또 자신의 아내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인 것을 알았던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일반 죄수들의 감옥이 아닌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요셉은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든 고통을 인내로 견뎌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무죄한 희생자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창세기 39:9/ 염두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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