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15절 금요철야
성원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2월 6일
(고전 16:15) ○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고전 16:16)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는 죽은 유령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대하였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인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Oedupus complex) 히틀러의 어머니는 성적으로 음난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어머니를 미워합니다. 어머니 클라라 (Klara polzl) 1907년에 유방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에 어머니의 행실은 아버지가 장사하기 위하여 여러날 집을 비우면 돈 많은 유대인들과 성적으로 물난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계속적인 유대인과의 동거로 인하여 유대인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사춘기 시절에 예술적인 재능이 있어 화가로 지망하여 비인(Vienna)에 미술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입학시험을 치루었는데 불합격하였습니다. 일년을 재수하여 응시하였지만 떨어졌습니다. 심사위원 7명중 4명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즉시 미술학교 교장에게 “나를 낙방시킨 유태인들은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이 화가가 되는 꿈을 접게 한 사람이 유대인입니다.
셋째로 유대인 약혼녀에게 거절된 것입니다. 히틀러는 모델출신인 여성에 심취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시를 써보내며 구애를 하였습니다. 히틀러의 시와 예술을 비웃으며 구혼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녀는 유대인 남성과 결혼했는데 결혼식장에서 ‘우리들의 게르만 여성’을 유혹하는 유대인을 공격하자는 구호로 난동을 부리다 경찰관에게 내쫒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게 스데바나를 닮는 성도가 됩시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상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상이 있습니다. 이 형상에게 절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사람만이 직접 만드셨습니다. 자신의 생령과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창세기 1:26-27절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형상은 실물을 떠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광화문에 가면 세종대왕,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이 생겼지만 세종대왕, 이순신은 아닙니다.
자신의 형상을 만들고 자기 자화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느브갓넷살이고, 일본의 천황입니다. 그것에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낮은 존재로서 살라는 것입니다. 형상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바벨탑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명성에 힘입어서 자신의 이름을 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내기에 바쁘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게 영광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바로 기도이고 더 영적으로 깊이 오래 기도하는 것은 방언기도입니다.
성경을 구성하는 세 분류명인 토라(תורה, 율법서), 네비임(נביאים, 예언서), 케투빔(כתובים, 성문서)을 늘여서 쓴 형태이며, 각 분류명 맨 앞글자를 따서 약칭 ‘타나크(תנ”ך)’가 되었다.
그런데 케투빔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잘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는가? 그것은 말씀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1. 스데바나는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고전 16:15) ○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고린도교회를 보면 참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내의 분쟁의 문제, 불륜의 문제, 제사의 문제, 은사의 문제입니다. 이떼 고린도 교회에서 3사람이 왔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입니다. 스데바나는 유일하게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뜻은 면류관입니다. 브드나도는 행운입니다. 아가이고는 아가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이들은 노예가 않니가합니다. 그들이 바울을 방문하였고 그로 인하여 성경은 이들 때문에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스데바나는 사도 바울에게 첫열매입니다. 사람이 사과나 배를 심고 여러해를 기다려 첫 과일 얻으면 얼마나 먹고 싶습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제사장께 드립니다. 다음에는 십분의 일만 드려도 됩니다. 그 나머지가 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표현입니다. 첫열매가 바로 스데바나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이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첫열매입니다. 스데바네는 어떤 사람입니까?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성도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기다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일예배를 Sunday service입니다. 주일날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섬긴 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네는 자신의 집을 Open house 했습니다. 그리고 스데바나의 집이 교회가 된 것입니다. 개척교회가 된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주의 종도 아니고 그저 노예이며 평신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한두번 사람들을 섬길수 있습니다. 한두번 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헌신적으로 자신의 집을 내어 놓고 섬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에게 오직 한 사람 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섬김에서 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김에 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평생 잘 섬기다가 한번 마음에 교만이나 사람으로 인하여 시험이 오면 섬김을 포기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의 마음을 이간질합니다. 이정도면 됐지 나이도 이만큼 됐는데 다른 사람이 혹시 알아주지 않는가 한는 마음이 들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섬김입니다. 더욱 겸손이 지속적으로 삼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기록하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차량으로 섬기고, 주보를 나누워주며 섬기고, 음식으로 섬기고 물질로 섬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식모가 되고, 하인이되고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존경받고 대접받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회에서는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교회에서 섬겨야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사람을 섬기지 않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서도 섬기기로 작정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자정한 것입니다.
미해병이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주둔하고 있을 때 테러분자들이 미 해병대 본부를 폭파시켰습니다. 이때 전사한 사람은 무려 200명이나 되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사령관 폴 켈리는 베이루트로 날아가서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훈장을 달아주었습니다. 여러 전쟁을 겪은 사령관은 강인하고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중상을 입은 병사들에게 한 사람씩 훈장을 달아주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중에도 많이 다친 한 군인은 온몸에 고무 호수를 꽂고 있었고 붕대를 감은 채 있어서 보이지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군인은 팔을 내밀어 장군의 어깨에 달린 별을 더듬어보면서 과연 사령관인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병은 침대 시트에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데 잘 알아볼 수 가 없어서 간호사에게 펜과 종이를 갖다 주니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Semper Fidelis,” (셈퍼 피델리스) Latin for “Always Faithful,” seeks to strengthen the core values of honor, courage and commitment, that the nation expects of men and women who aspire to be Marines.
Always faithful은 항상 충성하자는 말입니다. 라틴어로 이 모습을 보고 사령관은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교회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변덕스러운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침에 좋았다가 저녁에 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 섬기기로 작정하였으면 죽을 때까지 섬겨야하하는 것입니다. 한번 약속을 지키기로 하면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한번 교회에 충성하기로 하였으면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13절 “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하는니라”
2. 시원케하는 것입니다.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우리는 추운 겨울에 뜨끈뜨근한 오댕국을 먹으면서 아이 시원하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뜨거우면서 어른신들은 아이 시원하다 하십니다.
여름 햇살에 솔솔부는 산들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그늘아래서 땀방울이 맺힌 얼굴에 바람이 닿을 때 우리는 시원하다고 합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분이 상쾌하다는 뜻입니다.
지난 98년동에 골프의 여왕 박세리가 벙커의 물에 빠진 공을 쳐 올리기 위해 양말을 벗은 흰발목을 내놓고 물에 들어가 공을 처올려 우승을 했습니다. 다시 모든 한국인은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LA 다저스 시절에 박찬호가 20승을 할때 우리의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홍명보가 월드컵 4강전에서 승부차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대니서 한국이름으로 서지윤입니다. 그는 People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명의 젊은이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대학졸업장도 없습니다. 그는 12살 때 부산 해운대를 찾아가 바다가 더러워진 것을 보고 대통령케 해결책을 호소한 학생입니다. 한국에서 온 것은 모피옷을 입지 말자는 환경운동을 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대니 서는 하루에 15분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시간을 쓰면 세상이 바꿀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시원한 사람이 있고 답답한 사람이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오면 기겁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이 서로 자리를 비껴주며 앉으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보면 좋은 사람,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분위를 참깨처럼 고소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만 오면 다 파토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원어에는 시원하다라는 헬라어는 에네파우산입니다. 이 단어는 원기를 회복하여 숨을 주는 것이다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단순한 육체적인 시원함 뿐만아니라 정신적 영적인 시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듣고 시원해야지 한주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장노님의 간증입니다. 장노님이 새벽기도 때 가지 못하니까? 안 사람인 권사님을 보내어 주의 종이 무슨 기도하는지 새벽기도 시간에 잘 듣고 와서 나에게 가르처 다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원하는 사항이 바로 기도 속에 있다고 믿은 장노님의 말씀입니다. 그 장노님은 주의 종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습니다.
각 대학마다 합격자 명단을 계시하는 합격자 발표가 있습니다. 부모님들과 자녀들이 함께 가서 자기 이름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자기 자녀의 이름이 있으면 어머니와 아들이, 혹은 아버지와 딸이 얼싸안고 펄떡펄떡 뛰는데 그때야말로 하늘에 치솟을 만큼 시원함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시험 뒷바라지했습니까? 잠을 잤습니까? 제대로 어디 외출한번 했습니까? 오직 아이의 학교 합격을 위해서 오랫동안 시간을 허비하고 수고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보람을 안았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사람이 보람을 찾을 때, 시원하고 기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스데바나가 이토록 보람을 안겨주니깐 얼마나 기쁜지 그야말로 바울은 그 감격과 그 마음을 그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나 스스로가 현재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희생한 부모님이 게시고 또 나를 키우기 위해서 헌신한 아내 혹은 남편, 가족도 있고 또 나를 양육한 스승도 있고 그 외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땀으로 인해 현재의 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차례인 것입니다.
심방을 하다보면 본인의 입술로 간증하기를 ‘우리 아버님은 목사님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장로님이십니다. 우리 아버님은 한국 교회 초대교회의 교역자이십니다.’ 또 말하기를 ‘저희 부모님은 온 집안의 가산을 털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봉사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을 종종 뵙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신앙생활은 주일성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 너의 산소 같은 여자이고 싶다. 함께 있지만 그 함께 있음이 불편하지 않고, 떨어질레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그런 너의 소중한 존재이고 싶다.”
시인 배영혜씨의 ‘산소 같은 여자’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 ‘산소 같은 여자’란, 소중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산소는 공기의 21%를 차지하며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기체이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정글과 밀림이 중요한 것은 신선한 산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공기 중에 들어있는 산소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어느 회사의 광고에서 상큼한 여자를 ‘산소 같은 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햇빛과 바람과 산소!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전부가 공짜이다. 그렇다고 햇볕이나 바람이나 산소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들 중에는 돈으로는 결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커다란 가치를 지닌 것들이 참 많이 있다. 이를테면, 가족, 친구, 연인! 모두 다 우리 인생의 햇볕과 바람과 산소 같은 사람들이다.
이렇듯 산소 같은 사람은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바울이 전도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바울이 힘들었을 때,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그리고 ‘아가이고’와 같은 사람들이 바울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고마운 도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분명한 것은 세상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 역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3. 알아주는 것입니다.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교회에서는 누구를 알아주라는 것입니까? 주님만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사람을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교회의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이있고 권력있는 사람이 일꾼이 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비록 나이가 드셔도 변함없이 새벽마다 와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맞겨진 일은 성실히 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젊은이들을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인사하고,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holy kiss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서상 맞지가 않습니다. 여성들끼리는 가볍게 안아주고, 추운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