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1월 4일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늘 본문의 핵심단어는 안식입니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안식을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돈을 들여 여행도, 명상도, 휴식도 취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안식을 할 수 있는 것은 더 피로만 싸이지 진정한 안식은 없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전라도 지역을 선교했던 남 장로교 소속 유진 벨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 황톳길을 덜컹거리며 가고 있었답니다. 선교사는 시골길에서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한 할머니를 보았답니다. 마침 가는 방향도 같아 할머니를 차에 태웠답니다. 그런데 차를 탄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계속해서 바닥에 내리지 않고 머리에 이고 있었답니다. 차가 커브를 돌면 몸이 쏠리는데 이고 있는 짐과 함께 몸도 커브를 틀었답니다. 백미러로 보니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이고 애를 쓰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짐이 무거울 텐데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차타는 것만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내려놓겠소?”하면서 송구스러워하더랍니다.

어거스틴은「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 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안식』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이라는 말 앞에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1절에『그의 안식』,

3절에『저 안식』,『내 안식』,

5절에도『내 안식』,

10절에도『그의 안식』,

11절에『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대하여 7일째 안식하는 날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말이 없습니다. 6일은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7일째 되는 하나님의 안식에는 아침도 저녁도 없습니다.

창세기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1절에『우리는 두려워 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1절에『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찌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 할찌니 무엇을 두려워해야합니까?

불신앙과 불순종의 악을 피하기 위해 극도로 주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불신앙적 공포가 아니라 무관심에서 깨어나게 하는 영적 경각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적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안식의 약속을 받고도 안식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에 들어가려면 열정과 인내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 된 것입니다. 아니 은혜 받은 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는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열심을 갖게 합니다. 안식은 사모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식의 좋은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

안식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고 그 행함에 따라서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릴 때 학교를 다닐 때 숙제를 하지 않고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빨리 숙제를 하라고 하는데 놀고 싶어서 계속 놀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마음이 편안하십니까? 할일을 하지 못하고 남겨두고 놀면 그 것은 안식이 아닙니다. 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는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살면 아무리 쉬어도 절대로 안식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276명과 더불어 배를 타고 죄수의 신세로 지금 알렉산드리아호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는 풍랑이 치는 그 배 위에서 쉴 수 있었습니다.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안심하라! 우리가 조그마한 어려움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손상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사도바울은 풍랑가운데서 안식을 맛볼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1.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2.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예수님의 소식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복음”(갈 1:7; 빌 1:27)이라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눈먼 자에게 복음을, 누릴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 복음이 가난의 저주에서 축복으로, 질병에서 치료로, 세브란스병원, 눌린자들 정신적으로 눌린 자들이 치료가 일어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는 명령은 예수님을 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의 죄의 모든 저주를 다 지불하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그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놀라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절에『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들어가는도다』라고 하는 말은 현재 벌써 들어가고, 계속하여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 속에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안식』이란 말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이란 말은 헬라어 (카타파우시스)라는 말로서 평화의 절정으로서의 쉼과 휴식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찬송합니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 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찬송가 466장)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

본문 3절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 가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므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곧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 속에 살았습니다.

여러분 천국의 개념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고 아직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가 어느 날 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나 모두가 죽음의 공포 속에 있었습니다. 웨슬레도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라비안 교도들은 평안하게 찬송하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웨슬레는 당신들은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데 무엇이 무서우냐고 말했습니다. 웨슬레는 이 말을 듣고 그들의 믿음에 놀랐습니다.

찬송가 441장을 썼습니다.「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숨겨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주님은「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갈보리교회를 시무하시는 척 스미스 목사님께서 갖은 수단과 방법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교회를 잘 이끌며 700명 출석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웬일인지 그 후 아무리 노력해도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였지만 여전히 교회는 그 상태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는「하나님! 이제 난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쓸 방법도 없습니다. 내일부터 낚시질이나 다니겠습니다」하고는 정말 낚시질을 나갔습니다. 차라리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때부터 교회가 성장하여 지금은 1만 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안식이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대륙적 기질이 있어서 모두를 크게 생각하며 평안함과 안식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속담 가운데「오늘 못 죽으면 내일 죽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노벨이 세계에서 제일 권위 있는 상을 만들게 된 동기는 이러합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습니다. 일류 평화를 위하여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다이너마이트는 인간을 가장 많이 죽였습니다. 그는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었지만 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신문 기사를 보던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은 노벨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벨의 형을 노벨로 착각하고 ‘노벨, 사망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을까?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노벨은 복잡한 심경으로 숙고한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쯤 되었을 때 그의 유일한 소망은 인류의 평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재산을 들여 매년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공헌한 과학자, 정치가 문학가에게 상을 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1901년부터 그가 죽은 날인 12월 10일은 스웨덴 왕국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날로 정하여 실시하고 있습니다. 노벨은 죽었어도 평화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안식을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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