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장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序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 나타나게 하는 힘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라는 것들이 여러분 삶 가운데로 나타나게 하는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믿음은 분명이 존재합니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여도 그 믿음에 집중하고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세상은 이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질이, 세상의 소식들이, 좋은 음식들과 돈이 우리를 흔들리게 합니다.
믿음으로 자신의 딸을 고치러 가고 있는 야이로는 중간에 나쁜 소식이 왔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 집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40년 전에 윤정열목사님과 함께 아독트릴에 귀신을 쫓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신학교에서 기도하고 토요일날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갔더니 귀신이 우리를 어떻게 알고 발악을 하기 시작합니다. 2층에서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팔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윤정열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장로님이 되고 그리고 그 아들이 신학교에 입학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종류
– 믿음에는 3가지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1) 작은 믿음 겨자씨와 같은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은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애쓰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시고,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자기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또 하나는 그러한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조용기목사님과 겨자씨 (권사님 콧바람) 5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세계에서 제일큰 교회로 성장
2) 큰 믿음
마태복음 8장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백부장은 자신이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적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물러가라고 명령했는데 안 물러갈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군대 질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군에서는 무슨 일을 시켜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시면 이해가 되건 되지 않건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복종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군인이 되면 충성과 순종입니다. 우리도 일단 성도가 되었으면 하나님 앞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제주도에 있는 성도가 나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 사람의 아내가 암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내는 종일 혼자 누워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라디오를 사 준 것입니다. 아내는 병석에 누워서 라디오를 통하여 방송에 나오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급히 집으로 달려갔더니 아내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내가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전화기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구급차를 부르려면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라디오 방송을 틀어 주면서 “여보, 내가 구급차를 불러올 테니 정신 잃지 말고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어요.” 그러고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조용기목사님의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치료의 손을 뻗어 여러분의 아픈 데를 고쳐 주고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치료자이심을 인정하십시오. 지금 여러분 중에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여러분은 이미 나음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흘러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 아내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는 지금까지 살려 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질병에서 나았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 치료의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저의 아픈 육신을 고쳐 주심을 믿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는 순간 마치 전기가 흐르듯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찌릿찌릿하며 온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나중에 보니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3) 온전한 믿음
히브리서 12장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완전한 믿음입니다. perfect한 믿음입니다. 완전한 믿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마치 출애굽에서 놋뱀을 바라보듯이 주님을 바라보면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바라보기만 하는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순종이 요구합니다. 믿음에 순종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신 결과로 ‘행함’을 요구하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순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 믿지 않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과 순종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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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생가 탐방 소감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존 웨슬리의 채플’(John Wesley Chapel)을 방문했다. 그가 사역했던 교회와 기념관과 무덤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오다 보니 생가 속 방문은 불가했다. 작년 이맘때 18명의 팀을 인솔해서 왔을 땐 생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때 잊을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 웨슬리가 잠들곤 했던 침대가 있는 방 안에는 성경책이 얹혀있는 작은 책상 하나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방석 하나가 놓여있다.
이 방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꿇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존 웨슬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웨슬리가 임종하기 전까지 11년 4개월을 살다 가신 곳입니다.
“아쉬운 것은 존 웨슬리의 마지막 생애 11년 4개월을 지낸 웨슬리의 집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이 늦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집 안을 보았으면 했던 것은 빌리 그래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1940년 신학생 시절, 교수님의 인솔로 영국의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을 왔었다가 존 웨슬리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웨슬리의 침실의 카펫에 두 개의 움푹 패인 자국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그 기도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Do it again, Lord. Do it again!’이라고 기도하였다는 일화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존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 빌리 그래함에게 역사하신 일을 지금 저에게 다시 행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요.
고린도후서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톨스토이의 단편 중 “세 가지 질문”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한 왕이 인생을 살아가다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가?”,“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현자에게 가서 묻자 그가 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을 얻지 못하고 나가는 길에 한 부상당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를 치료해 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왕을 죽이기 위해 매복해 있다가 친위대의 공격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현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순간’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헌신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 헌신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무디는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와 집,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사역이 다 무너져버린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디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화재가 일어나던 주일 저녁입니다.
무디는 파웰 홀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자, 이런 생애를 살아오신 예수님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다음 주일에 함께 우리가 예수님과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합시다.“라고 그날 말씀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훗날 무디는 그날 저녁의 설교를 “엄청난 실수”였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시카고 화재로 인해 무디의 저녁 집회에 참석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해놓고 곧 그 말이 사단의 속임수에 빠진 것임을 알았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청중들에게 한 주간을 두고 그들의 구원을 생각해 보라고 감히 말한 적이 없다.“ 그 다음 해인 1872년 6월 무디는 영국 런던에 있는 친구 레시목사의 초청으로 주일설교를 하게 되었고, 그날 저녁 설교 후 바로 결신을 요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