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왠지 심술굳고 짜증날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빼뚤게 보이고 기쁜 나쁜 분위기가 계속적으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마음이 맑아지는 글이라고 오는날 남산편지에서 글이 왔습니다.
*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그래, 나는 오늘도 헛되이 보냈다. 아니 오늘 뿐인가, 어제도 그제도 계속 헛되이 보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어제 죽은 사람 대신 내가 살아 있어 미안해 하란 말인가.)
*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으면 한결같은 삶이 별 볼이 없다는 뜻 아닌지?)
*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말이다. 우산을 들어 주면 둘 다 조금씩이라도 비를 피할 텐데 왜 멀쩡한 우산을 두고 함께 비를 맞아야 하지?)
*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늘 잘 풀리고, 그건 오래 간다.
내 삶은 잘 풀리지 않는다. 그것도 오래 간다.)
*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운다. 부족한 사람에게서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운다.
(‘부족함’ ‘넘침’을 배워서 무엇 하는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음’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이 말은 정말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난 기분파이고, 걸핏하면 내 말을 내가 어기고, 어떤 때는 똑똑하고 어떤 때는 바보고, 절대 나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없단 말인가?)
어쩌면 누구든지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작은 귀신이 살고 있다.
무슨 커다란 범죄 욕구는 아니더라도 가발을 쓴 사람을 보면 가발을 벗겨 보고 싶은 충동,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사람을 한 번쯤 쿡 건드리고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 아름답고 완벽한 화음으로 노래 부르는 합창단이 있다면 갑자기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보고 싶은 충동, 아주 조용한 성당이나 도서관에 들어가면 “아-악!”하고 소리 질러 보고 싶은 충동, 굽이 아주 높고 가는 구두를 신고 얌전하게 걸어가는 여자를 보면서 구두굽이 톡 부러지면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 등, 조화보다는 부조화, 타협보다는 갈등을 위해 논리도 체면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도깨비는 누구에게나 잠복해 있어서 언제라도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도깨비와 같은 악한 영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 마음 속에 성령을 모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리 많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이 있다면 1)사랑하는 사람들, 2)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 3) 나의 능력과 재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펀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줍니다.
3%의 좋은 생각
잠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생명이 있고 생명이 없는 패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생명의 근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사람은 지켜야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돈도 지켜야하고 나라와 민족도 지켜야합니다. 우리 경제도 문화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싫지 않을 때에 마음을 지켜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환경의 장애를 줌으로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열심히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와 여성분들의 특징은 과거의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 때문에 눈물을 짖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지금은 그렇게 잘 살고 있어도 옛날에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며 울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내가 옛날에 질병을 걸렸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1만번씩 외칩시다. 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는 낳아있습니다. 생각을 그렇게 가지면 그러한 행동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이영순집사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는 낳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벽기도회 나올 수 있습니다. 나는 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 사모님은 머리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서 합정역 정서남 권사님쪽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그곳을 찾는데 무려 30분을 해매고 떡복기 집앞에 어디인지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장점이 있습니다. 옛날에 공부한 것 그리고 옛날의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들을 기억하면 좋은데 나쁜 일들을 기억하고 있으면 늘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주혜숙 전도님과 함께 전을 붙이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폐백을 준비한 닭 2마리를 현관에다 보관하고 계신 이야기를 하면서 그 먹는 것을 왜 현관에 보관하고 계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 마음 넓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뚤어지는 마귀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넓은 마음으로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 54: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사 54: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백설 공주학습법이라는 책의 내용에 보니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주도형 학습형이 되면 성공한다고 합니다. 남이 가르처 주는 것을 배우고, 학원에서 가르처는 것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공부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남이 시켜서 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봉사하고 내가 스스로 감사하고 내가 스스로 일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여러분들을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넣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늘 성령의 충만함을 품고 있으면 그러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기 때문에 자신을 팔기 위하여 온 가룟유다에게 이렇게 자신을 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 26:50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님은 자신을 찌른 로마 군병까지도 예수님의 생각은 그들에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러 왔기 때문에 십자가 위해서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행동의 3%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섞지 않는 것은 3%의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으로 선을 이기는 3%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만으로 마음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루종일 멍청하니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수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했으면 행동해야하는 것입니다.
악으로 선을 이기는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쫒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각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 생각은 어떤 생각이였습니까? 예수님에게 칭찬을 그 앞 절에서 받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로 간다고 하니까? 베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넘어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넘어짐보다 더 큰 죽음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나 죽음은 완전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넘어짐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고난이 오면 그것이 저주받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주의 종으로서 부교역자 시절에 기도원으로 발령나면 그것이 저주받은 길처럼 생각하엿습니다. 담임목사님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그길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길은 축복의 길이고 자신을 성숙한 길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요셉의 길입니다. 요셉의 길은 종의 길이고, 요셉의 길은 감옥의 길이였습니다. 그러나 길 속에서 국무총리의 길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요셉의 길을 설교하고 그 길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넘어짐으로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망할 것인가?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고.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00년대로 돌아가 제가 예레미야처럼 예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점령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싸우지 말고 이완용처럼 항복하자라고 말하였다면 모든 국민들이 나를 삯군 목자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싸우다가 죽어야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베드로의 생각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그리고 자신들은 그 밑에서 한자리 해먹을 생각으로 인생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니까? 완전히 베드로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산모가 순산할 때에 고난이 필요합니다. 피를 흘리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제왕절게 하려는 산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후유증이 많고 그리고 더 흉터가 많은 길입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다른 나라의 의사들 보다 제왕절게를 더 많이 시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도 벌고 인심도 쓰고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려운 삶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렛다과부를 통하여 먹고 죽으려는 그 기름과 떡과 물을 하나님의 종에게 드림으로 하나님의 복이 더 임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정말로 사울왕에게 철저히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더 용서와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이라는 과부가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공경하기 위하여 구걸하면 베들레헴에 살았습니다. 부모공경하다가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90%의 좋은 길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을 치료하고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그리고 주옥같은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약 10%, 아니 3%정도의 삶 속에서 약 1주일입니다. 3년반중에 일주일입니다. 그 일주일의 기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으로 가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그렇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늘 행복하고 축복으로 복을 받고 살지만 결정적인 상황이 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합니다.
강원도 홍천군 희망리에 용간난 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1979년 할아버지가 남편이 약초를 캐러갔다가 담뱃불을 잘못 떨어뜨리는 바람에 국유림의 일부를 태웠습니다. 국유림 관리소는 할아버지에게 산불피해 입힌 죄로 벌금 13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살림이 극도로 어려워서 분할 상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얼마 있다가 중풍을 숨을 거두셨고, 간난이 할머니에게 벌금을 내 대신 꼭 갚아 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할머니 형편에 따라 3만원에서 10만원에 이른 벌금을 꼬박꼬박 납부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난 지나 2001 가을에야 드디어 벌급을 완납하였습니다. 아! 저승에 있는 남편이 편안히 쉴수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수억원씩 수천억씩 해먹은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간난이 할머니는 오랜 기간동안 꼬박꼬막 그돈을 갚았다니 참으로 남의 나라 사람처럼 느껴지는 할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눅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눅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눅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눅 7: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큰 죄가 있는 이 여인은 자신의 옥합을 깨드려 예수님의 발 앞에 부워드렸을때에 이기적인 가룟유다는 돈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꾸짖었습니다. 이 간난이 할머니 처럼 주님께 많은 것으로 못드려도 내 생애의 3%만이라도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될 때에 더 놀라운 기적의 감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우리교회에서 늘 청년들을 통하여 교회에서 20만원 30만원씩 재정을 들여서 과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돈을 우리 교회 로델선교사가 함께하는 흰돌 신학교 목회자 중에 전기사고로 고통당하고 있는 목회자 가정을 위하여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