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69절

성원교회 홍철기목사

2023년 8월 9일 금요철야

마 26:69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 26: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 26: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 26: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마 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십자가의 사역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입니다. 이 사역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꼭 은혜가 있습니다.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수제자가 되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베드로는 3년 반동안 열심히 주님의 옆에서 따라다니며 주님의 사역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74절에 보니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중에는 예수님을 저주할 자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배드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만 예수님을 부인했을까요? 우리도 그러한 상황이 되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배반했는데 우리도 배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왜 베드로는 실수했습니까? 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이 미리 예언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예언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다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경고합니다.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현대어로 말하면 제들은 몰라도 예수님 저는 아닙니다. 교만과 자만으로 가득한 답변입니다.

어떤 사람도 신앙에 장담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내 때문에 거짓말을 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며, 불의 사자 엘리야도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과 싸워서 이겼지만 이세벨 여인의 말 한마디에 낙담하고 죽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찬송가 460장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지금까지 35년동안 목회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성도가 있습니다. 임권자 집사님입니다. 교구장 시절에 어려움을 당하여 혼자서 딸 둘을 끼우면서 효자동에서 살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딸들을 키웠습니다. 딸들이 다 잘되어서 의사가 되고 평안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되기까지 임권자 집사님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15년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지금은 딸 집에 사시는지 아니면 혼자 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교회를 도와준 연도 만큼 복을 달라고 한번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찬 498)

  1.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지금 오셨네

  2.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3.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나의 모든 소원 던져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4.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나의 소망되는 구주 예수님

[후렴]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1.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는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한 시 동안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욥 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마귀는 땅에 두루 돌아 다니면서 교만한자 자만한자 기도하지 않는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하지 않아도 돼, 나는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으니, 내가 내 믿음 잘 알고 있으니 하나님만 알면 되는 것이지 하고 자만하는 사람들에게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마다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싸움입니다. 기도는 씨름입니다. 기도는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영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육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영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육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남을 보이기 위하여 바리세인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나 우리 인간에게 항상 기회를 주시지만 영원히 주지 않습니다. 기도 시간은 유한합니다. 영원히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오늘 눈을 떠야 사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구제세 성도가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건강한 나무가 쓰러지니 그냥 한번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찮은 딱정벌레들이 그 거목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딱정벌레들이 나무껍질을 벗기고 나무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파고 들어가 마침내 수령 400년의 이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린 것이었다. 벼락과 태풍과 눈사태도 당당히 이긴 거목이 이렇듯 작은 벌레들에게 어이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간증

82년도에 면목동에서 목회을 시작할 때의 일입니다. 저에게는 김명숙집사님이 참으로 귀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 당시 교회를 개척하고 조그마한 성전을 얻어서 가려는데 이 집사님이 혼자서 천 오백만원을 헌금하게 되었습니다. 면목 4동에서 면목 8동으로 옴기게 되었습니다. 김명숙집사님의 헌금으로 인하여 교히는 날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는데 집사님 남편이 운영하는 중곡동에 있는 피역공장이 부도가 나서 가족들이 다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교회에다 건축헌금을 했으면 잘되야하는데 방해 버린 것입니다. 남편은 야밤에 도주하게 되었고 김명숙집사는 자녀를 대리고 한 달에게 7만원짜리 월세방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명숙집사는 실망하지 않고 목사님을 모시고 이사예배를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얼마나 작든지 3사람 앉으면 전부였습니다. 하는수 없이 목사님은 길에서 예배를 드리고 심방집사와 김명숙집사님 3명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하염없이 울기만 하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목사인 나에게는 참으로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처럼 느끼게 되었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건축헌금을 드렸으면 잘 되어야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김명숙집사는 목사인 나를 위로하기 바빴습니다. “ 목사님 실망하실 필요없습니다. 미안해 하실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곧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라고 위로하였습니다. 목사보다 10배 20배 훌륭한 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반대 하던 남편은 오고 갈 때가 없으니까? 교회 장의자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새벽기도 인원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생활하는 김명숙집사에게 여선교회에서는 성미로 구제하여고 성도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잠을 잔지 2주일만에 남편을 대리고 김명숙집사는 삼각산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는 거절할 수 없어서 삼각산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삼각산은 능력 봉에는 능력이 임하는 곳입니다. 많은 주의 종과 성도들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는 곳이 아니라 음지로 능력기도한다고 기도하다가 악한 영에 씌우게 되었습니다. 김명숙집사는 삼각산에 자주 왔다가 갔다 했기 때문에 저인 목사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 남편 부탁드립니다. 혼자서 기도하려고 나갔습니다. 김명숙집사의 남편은 같이 통성을 기도하는데 이 사람은 별만 세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초신자였기 때문에 기도할 것이 없어 그렇게 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저는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한 3시간쯤 기도하고 난 뒤 새벽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 되었는데 김명숙집사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명숙 남편과 함께 김명숙 집사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능력봉에서 연애인 교회까지 2번을 올라갔다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해가 뜨고 걱정이 생겼습니다.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의 얼굴을 시커면 연탄색으로 변했고 생명을 걸고 저와 같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시간 정도 되었을가요? 그때 김명숙 집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몸에 구렁이가 김명숙집사를 감고 삼킬 것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뱀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 찍었던 것입니다. 뱀은 7곱길로 도망하여 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정신을 차린 남편 김명숙집사는 정신이 온전하여저서 교회로 내려와 다시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김명숙집사가 너무 자만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쌘 마귀가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시험한 것입니다. 그 후 남편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게 되었고 사업도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1983년도 용마산 근처에 최고급 빌라를 지었는데 수 몇억대 되는 최고급빌라를 김명숙집사 가정이 첫 번째로 입주하였습니다.

  1. 베드로의 실수는 육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2.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3.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 육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영적으로 해결해야합니다. 예전에는 우리 평강이를 키울 때에 훈계하고 때려서 육적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이 자녀를 하나 더 주신다면 영적으로 사랑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우리 축복이가 사랑으로 키웠더니 나를 사랑합니다.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베드로는 무사가 아니라 어부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예전에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부로서 칼을 쓸 때에는 생선을 잡아서 회를 칠 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쿠샤처럼 회칼 들고 사람을 찌르고 사람을 상처내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검을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치료하셨습니다.

기독교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마귀의 방법인 힘으로 혈기로 칼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먼저 예배함으로 해결하고 기도로 해결해야합니다.

  1.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그러한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해결하려고 하면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십자가의 구원의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철저히 죽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였습니다.

옛날에 습관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풍랑가운데 나타났다고 말을 들을 때에 물위로 걸어가다가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기도하지 않은 목회자, 기도하지 않은 성도들로 인하여 예수님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최제영목사입니다. 북한을 왕래한 목사입니다. 적군의 묘지에 참배하고 종북성향의 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평양의 음식점이 서울보더 더 고급지다고 하고 북한에는 종교활동이 더 자유롭다고 합니다.

기도하지 않았을 때에는 칼고 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기도할 때에는 예수님의 방법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 않습니다. 그 길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방법이지만 그 길만이 세상을 구원할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세상의 방법으로 교회를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로, 교회에서 자기 자랑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죽으심으로 헌신으로 용서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교회 내에서 그렇게 살아가야합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자신이 옛날에 건달이고 주먹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나면 세상사람들을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웃통을 벗고 이 새끼들이 너희들 네가 옛날에 누구인줄 알아 하면서 문제를 무력으로 하려고 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참으로 무식한 발상입니다. 말고의 귀를 짜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 십자가의 방법으로 가게 될 때에 복음이 나오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혈기로 부모님에 대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일을 시비와 원방으로 해결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먼저 죽고 내가 먼저 헌신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여러분들을 더 놀라운 은혜의 축복으로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칼을 사용하면 칼로 망하듯이

혈기를 사용하면 혈기로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다 육이 깨지고 영이 살아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깨지고, 가치관이 깨지고, 죄성들이 깨져 성령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베드로의 실수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소들과 함께 앉았더라 ”

베드로는 자신이 한 말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다 버려도 나는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상당히 저돌적이고 무대포인 사람입니다. 물결 위로 걸을 때나 변화산에서도 늘 저돌적인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멀리서서 예수님의 제자인지 알지 못하도록, 긴가 민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변화산에서도 주님의 변화된 형상을 볼수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고치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도 할 수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신앙생활하는데 멀리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야 복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봉사하고 내가 먼저 예배드리고, 내가 먼저 신앙고백하고 내가 먼저 기도하고 내가 주님을 가까이 따라갈 때에 주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룻기 1장 14절에 붙좇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붙좇다는 말을 더 달라붙다, 히브리어로 다바르입니다. (그들이 서로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예수님을 배반하는 특징중에 하나가 멀리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할 때에 멀리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도망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교회를 한 주일 나가지 않으면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데 한 주 두 주 세 주 나가지 않으면 마음의 부담이 없습니다.

명성교회가 부흥하게 되는 것은 명성교회 주변으로 모든 성도들이 다 이사오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대원아파트 앞으로 다 이사오는 것입니다. 록펠로라는 대 부호는 성전에 제일 앞자리 앉아서 하나님을 말씀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열성당원 어머니들은 강남 8학군에 들어가기 위하여 그 비싼 땅 강남 아파트를 사서 그리로 이사한다고 합니다.

유두고가 왜 죽었습니까? 바울의 설교 멀리서 창틀에서 졸다가 떨어저 죽었습니다. 왜 창들에 앉는지 모르겠습니다. 창틀은 세상과 교회의 중간입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 하나님 안에 있으면 졸아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 364)

  1.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2. 내 고생하는 것 옛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후렴]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성경은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안지 말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술집에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기생집에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고스돕치는데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자리를 구별해야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설 자리, 앉을 자리를 구별하여 앉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에 지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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