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셨네 …. 우리
김수환추기경의 죽음을 선종이라하는 국민일보를 보고 선종이란 무슨 뜻인가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인터넷을 뒤저보았습니다. 죽음을 의미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한자어로 善終이라는 끝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즉 선종이라는 뜻은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선종이라고 하지 않고 소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죽었다. 또는 별세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용어를 열반(涅槃) 이라고 하기도 하고 입적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말은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제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천도교에서는 환원이라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逝去(서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웰 다잉(well-dying)의 열풍을 일으키고 어떻게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 할까 하는 사람이 많아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통하여
1) 첫째로 김수환 추기경을 따라서 안구기증자가 많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국민들에게 많은 파장을 끼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2) 그가 죽으면서 통장잔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지 물질에 생명을 걸게 됩니다. 국민들에게 나눔과 청빈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동안 어떻게 하면 선한 싸움을 살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죽는 시절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과거를 회고할 때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할하면 잘 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대부분이 안타까움과 후회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유교를 창시한 공자도 오십이지(五十而之)에 사십구년지비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50살이되어 49세때의 잘못을 후회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일가?
여러분 성경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나옵니다. 그 죽음을 크게 2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왜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하였는가? 그는 정말로 험학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남을 속이고 그리고 이리 도망다니고 저리 도망다니고 그리고 말년에서 가나안 땅이 아니 애굽의 땅으로 내려가서 바로 앞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때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그리고 달려갈 길을 잘 달렸다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갑니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은 한평생을 살면서 자신을 돌아볼 때에 예수님을 만날 때와 만나지 않았을 때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총독 벨렉스각하에게 사도 바울을 평가한 말입니다. 예수이단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행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자신을 예수님 앞에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바울은 죽음 앞에서 ( 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
관제란 무슨말입니까? 관제라는 말은 영어로 drink offering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5장에서 제단 위의 제물 붓는 물을 말합니다. 한자어로 관제(灌祭)라고 쓰여있는데 관(灌)은 씻다 마시다. 제(祭)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정성을 들인 제사, 마지막 제사라는 것입니다.
7절 본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어짜피 태어나면서 싸움이 시작됩니다. 병과의 싸움 그리고 학교 친구들과의 싸움(경쟁?), 그리고 직장에서 승진의 싸움 수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싸움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과 복음의 싸움을 싸웠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인생의 싸움 중에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이라고 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최대의 싸움은 “내가 나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산중의 도적은 능리 막을 수 있으나 마음속에 도적은 이기기 어렵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32절에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미신과 그리고 자기동족의 괴롭힘, 헬라의 철학과의 싸움 그리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이제 복음을 증거하고 이제 개선장군처럼 하늘나라로 입성하게 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의의 면류관을 예배하였다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며 싸움을 합니다. 요즘은 영어에 열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열픙이 아니라 광풍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조금 부족하면 무슨 큰 낙오자가 된 것처럼 크게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필리핀 도우미 (헬퍼) 경쟁입니다.
교육에 인생을 건 나라처럼 온 나라가 아이들 성적에 목숨을 거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실과 대구의 아이들 성적을 조작하고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아에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먼저 승리의 깃발을 먼저 꼽기를 원합니다. 남보다 한발 앞서서 달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찌보면 토끼와 거북이처럼 그러한 경주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쉬어서는 안되고 조바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1) 여러분 토끼가 진 이유가 무엇일까? 토끼는 처음부터 거북만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강 건너의 큰 교회도 아니고 천주교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거북이처럼 예수님이 목표인 것입니다.
2) 토끼의 자만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거북이를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만감이 사람으로 하여금 패배하게 만듭니다. 예수님도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토끼는 겸손과 성실이 없습니다.
토끼의 경주의 제안이고 거북이는 제의에 대하여 자신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과의 싸웠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도 늦게 시작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의 속도가 아니라 열심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인생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즐거움이 유혹할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끝임없이 상받기 위하여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파랑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법학을 공부하였지만 변호사가 되지 않고 프랑스에서 시와 희극을 쓰기 시작하여 1911년에는 노벨 문학상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내용에 크리스마스 이브날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창문을 통하여 부잣집 아이들의 파티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가난한 나무꾼이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인데도 맛있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벨링코할머니를 통하여 파랑새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 새 만 있으면 행복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파랑새를 찾기위하여 떠납니다. 추억의 나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이야기 나라입니다. 추억의 나라에서 자지고 온 새도 파랑새가 아니라 검정새가 되었습니다. 밤의 궁전의 나라입니다. 화려한 궁전들이 있지만 그곳은 병균과 전쟁, 질병들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 곳에서 얻은 새도 그 밤에 궁전에서 나올 때에 죽고 말았습니다. 행복의 궁전의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황금과 그리고 좋은 음식이있는 나라였습니다. 뚱뚱하고 앉아서 술을 먹고 그리고 음식을 먹고 사치하고 게으름의 나라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새도 나오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미래의 궁전의 나라입니다. 빛의 여왕을 따라갔습니다. 궁전은 빛이 파란색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의 궁전에서 희망을 이야기 했지만 그곳에 얻은 파랑새는 빨강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일입니까? 자신의 집에 끼우는 작은 새가 파란 새로 변화고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1) 모든 사람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그 파랑새를 갖았지만 그 파랑새는 진정한 생복이 아닌것입니다. 추억, 밤의 화려함, 황금, 음식, 그리고 미래까지도 다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만족하고 사는 것이 행복의 파랑새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파랑새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우리 집사님들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워 먹고 누군가 주었을지 모른 사과를 같이 나누워 먹는 것이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안에서 교제하고 같이 예배드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가장 돈 많은 사람의 아들 이건희씨의 아들 이재용삼성 상무가 그렇게 돈이 많은데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아내가 키우고 그리고 그 자녀들 이재용상무에게 있다고 합의하고 그리고 이혼 합의금으로 1000억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행복을 주는 분이 행복자라고 하면 행복자인 것입니다. 신명기서에서는 당신을 행복자라고 하였습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선한 싸움이라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로우신 재판장)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늘나라에게 다 온 것처럼 간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믿은 성도들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조건이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는 조건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달려가는 경주 길에도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100m 달리기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나인으로 달리지 않는다. 여러분 다른 길을 가면 파울이 되는 것입니다. 박태환 선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타이빙을 2번 하였다고 하여서 실격당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다른 라인으로 달리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고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믿음으로 치료가 임하고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믿음이 바로 은과 금보다 낳다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인정받아야 진정한 인정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장례식에 가장 많이 온 사람들이 인터넷에 보았습니다. 제일 많이 장례조문객은 1949년 김구선생님의 장례식으로 100만명이상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 김득중 편사연구사에 따르면 장례가 10일장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조문객수는 2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민장으로 치루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는 전국가지에서 200만여명이 추모를 치루었다고합니다. 광화문과 시청과 동작동을 잊는 길에 수많은 인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교인으로 1993년에 성철스님이 10만명이 최고라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4일동안 40만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는 길을 추모하여도 자신의 부족함을 통하여 김수환 추기경처럼 아름답게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의 충동일 것입니다. 장례조문객이 가장 많은 김구선생님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상급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 나라의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하늘에서 어떤 모습으로 계실지 궁금합니다. 하늘에 있지 않고 조금 섭섭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지옥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보기 초라해 보이는 선교사도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숨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예수님이 스데반이 죽을때에 하늘 보좌에서 일어나셨다고 하였습니다. 김수환추기경이 세례명이 스데반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바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대해 보여도 자신과 자신을 비교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서 늘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우리에게 영향을 준 사람의 글을 읽습니다. 그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입니다. 그분이 로스엔젤레스에 사셨는데 죽기 전에 목사님들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스와 우유를 각자의 잔에 따랐는데 그 우유의 잔을 한방울도 안남기고 다 마시더 랍니다. 왜 그렇게 깨끗하게 먹습니까? 하였더니. 이렇게 답변하였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다가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이러한 꿈을 종종꾸웠습니다. 돈을 줍는 꿈입니다. 그것도 하루만 꿈을 꾼것이 아니라 매일처럼 꾸었습니다. 저의 가정에 돈이 없어서 돈의 꿈을 꾼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제 책상에다 숨기고 그리고 그 돈을 제 벼개 밑에다가 숨기는 것입니다. 그 꿈에서 일어나면 돈이 없는 것입니다.
하루는 돈이 1000원짜리를 주운적이 있습니다. 500원자리를 주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한번은 10000원짜리를 담배값에서 주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에 종종 담배값이 떨어져있으면 종종 발로 한번 차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제가 돈을 주운적은 대학교다닐 때까지 5번 정도됩니다. 군대 갔다 오고 난 뒤에는 돈을 한번도 줍지 못했습니다.
어린시절에는 돈에 대한 꿈을 꾸면 그 돈을 다 쓰지 못하고 그리고 돈을 내 손에 없는 것을 보고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꿈을 꾸면 절대로 돈을 주워서 빨리 빵집에가서 단팥방을 사먹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다 쓰고 꿈을 깨든지 하는 것이 소원이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찮가지입니다. 열심히 돈을 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돈을 다쓰지 못하는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추기경이 존경을 받는 것은 바로 그의 통장 잔고에 한 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돈을 사용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자신의 몸의 통장을 다 사용하셨습니다. 그 몸속에 있는 물과 피를 한방울도 남김없이 다 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한점 남김없이 죽으시는 모습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남김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나를 위하여 사용하지 말라고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우리 청년들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사용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김수환추기경이 안구를 기증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2008년도에 안구뿐만아니라 신장 모든 장기 뼈까지 기증하였습니다. 정말 좋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쓰고 남은 물질 때문에 자녀들이 싸우고 그리고 그 물질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얼마큼 물려주고 나머지 부분은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하나님에게나 그리고 사람에게 좋은 일인 것입니다.
2)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칼람에 이러한 내용을 썼습니다. 칼럼에 3종류의 심장이있는데 20대의 운동선수의 심장, 무용선수의 30대 신장, 그중에 40년동안 은행에서 일한 70대의 심장을 원하는 노인처럼 우리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그것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년전에는 천주교가 부패하여 종교개혁을 하였는데 지금은 기독교보다는 천주교가 더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 목회자로 반성하게 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별거 아니 일에 신학적인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