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위로 받고 싶은 날 이해 받고 싶은 날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막연한 서글픔이 목까지 치밀어 올라 더 이상
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눈물로 터져 버렸을 때
참고 또 참았던 감정이 폭발해 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때
백 마디의 말보다는 따스한 한번의 포옹으로 위로 받고 싶다. 이해 받고 싶은 날이 있다. 뭔가에 비위가 틀어져 견딜 수 없음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두서 없이 늘어놓을 때
가슴속에 차곡 차곡 쌓아 놓았던 불만들을 극히 이기적인 입장에서 억지를 부리며 털어놓을 때
천 마디의 설명보다는 정다운 한번의 눈길로 이해 받고 싶다. 살다 보면 갑자기 이런 날도 있지 않을까?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요셉의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아니한 처녀인데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게 은혜를 입었느니라. 네가 잉태하는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야가 천사에게 대답합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약 160km정도 됩니다. 서울에서 (마포구 성산동에서) 대전 우리 집까지 150km 약 3일길을 걸어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한지 6개월되었습니다.
마리야에게 놀라운 소식 임신의 소식을 가지고 엘리사벳에게 갑니다. 위로를 받기 위하여 엘리사벳에게 간 것입니다. 자신이 임신의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서로 상의하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그때에 엘리사벳은 마리야가 문안을 듣고 아이가 복중에서 뛰논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하고 그것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야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나 같은 비천한 여종을 하나님게 만세전에 택하시니 주시니 감사합니다. 특별히 복이 있다고 하니 주님의 이름이 거룩합니다.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린 자를 배불리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달을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결혼식을 올리고도 조금 일찍 아이가 태어나면 창피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랬을까요? 그러나 엘리사벳의 위로를 받고 그는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고 여자 중에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백성을 위로하라 (임경애성도)
이사야 40장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총 66권입니다. 이사야가 바로 그러합니다.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하여 그리고 40장 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위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사야 39장과 이사야 40장 이후의 말씀이 다른 저자라고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너무 말씀이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음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39장까지의 내용입니다. 멸망당하여 낙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고 위로를 주시는 말씀이 이사야 40장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살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심한 경쟁 때문입니다. 차라리 죽지 말고 다른 나라에서 경쟁하면서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한국에서 일등하는 것이 세계에서 일등하는 것입니다. 노래도, 공부도, 사업도, 컴퓨터도, 모든 부분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 아빠로부터 공부를 통하여 놀지 못하고 계속 공부만 하게 되었고, 그 많은 지식이 놀라운 창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여도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각박한 시대에 자신도 살아남기 힘든데 어떻게 애를 낳고 살것인가 걱정하기 때문에 혼자 살거나 부부끼리만 살아갑니다. 정부에서 자녀가 출생하면 70만원씩 100만원 준다고합니다. 그런데 100만원 가지고 자녀를 키울수 없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결혼한 여성들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자녀출생의 문제입니다. 나이들어서 결혼합니다. 결혼하고도 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피임을 합니다. 피임을 오래하다보면 막상 아이가 생기 위하여 임신을 하려하면 임신이 안되고 노산으로 고생하는 산모들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힘들은 시기에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에게 다시 위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40장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우리 시대의 위로
고린도후서 1장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린도후서에서 위로는 10번가량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입니다. 특별히 그 지역은 우상숭배와 음난한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책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권에 대하여 책망했습니다. 교회내에 분당에 책망했습니다. 소송에 대하여, 성적인 문제 대하여, 은사에 대하여 책망하였습니다.)
그렇게 책망한 고린도교회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와 전 세계 교회에 위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난뒤에 위로가 필요한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보셨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혼내고 책망할 때도 있지만 위로할 때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병실에 있는 분에게 병문안 중에 위로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질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찾아가 심방하면서 위로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럼 그 문제가 바로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질병 그래도 있고, 물질문제 그대로 안고 삽니다. 그런데 왜 위로 합니까? 내적으로 변화를 받고 위로를 받아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다시 극복하게 만든 내적인 힘이기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김유빈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라며 열등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십대에 절망의 끝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했다.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고, 결혼도 했지만 치유되지 못한 내면의 상처로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자신이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된 것에 절망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와 아내의 전폭적인 사랑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로부터 개척을 지원 받아 안정된 목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상처 입은 ‘한 영혼’의 울부짖음을 외면할 수 없어 아무것도 없이 홀로 ‘들어주는 사역’을 시작했다. 안정을 버리고 택한 그의 사역 길을 주님이 인도하셔서 현재 많은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 강의하고 있으며, 갓피플TV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디아스포라에 치유 상담 방송을 하고 있다.
안산 동산고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과와 신대원를 졸업했다. 미국 리버티대학교 [결혼과 가족치료](Marriage and Family Therapy, MA) 석사. 안산 동산교회의 교회개척 운동으로 시작된 은혜의 동산교회에서 부교역자로 12년간 사역했으며, 김유비닷컴 www.kimyoubi.com.
위로는 언제, 누가, 왜 하느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심방의 원칙이 있습니다. 위로의 원칙이 있습니다. 잘 놀고 있는 아이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잘 놀게 내비두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 때에, 아이가 위험에 처할 때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훈계를 어머니는 위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모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가 너 나빠서 혼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혼내 신다고 이야기 하면서 위로하는 것입니다.
2)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의 위로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하여도 그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무리 잘 위로해도 상처가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에게 찾아가서 아무리 잘 위로해도 상처가 됩니다.
욥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욥이 고난 당한다고 하여 욥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찾아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욥의 친구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위로가 됩니까? 아닙니다. 상처가 됩니다. 고난 받고 있는 것 하나님께 죄 지은 것이 있기 때문이야 회개하라고 그럼 좋은 일이 있을 거야하면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좇겨다니면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시편입니다. 그래서 고통 당할 때에 시편을 읽으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5절)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예수님이 그냥 우리를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이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위로하는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위로는 같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의 말한마디입니다.
(몰로카이 섬은 다미엔(Damien) 신부가 문둥병 환자들의 고름을 빨아주며 그들과 함께 동거하다 마침내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죽은 곳으로 유명)
고난을 당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극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만큼 고난이 있습니까? 인간이 가장 고통스럽게 서서이 죽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치료가 임하고 그 십자가를 바라 볼 때에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대상 가운데 십자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