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사람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에 대한 소원, 건강의 소원, 물질의 소원, 질병 치료에 대한 소원입니다.
성경 잠언에서는 소원을 이루는 것은 생명나무라고 하였는데 생명나무는 바로 십자가 보혈의 나무입니다.
사람의 소원이 더디 이루면 마음이 상하게 되며 마음이 허탈해지는 것입니다. 이로인하여 분노하고 병이 생기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 처럼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자식 낳는 문제로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한나는 하나님 방법으로 성전에서 기도함으로 해결하였습니다. 한나는 얼마는 열심히 기도했던지 그 모습이 술취하였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에게 응답하셨고 하나님의 감사 찬송의 시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기도하면 내 마음이 즐겁고, 하나님이 나를 높여주십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남자는 부와 권력 원하고 여성들은 자녀를 원했습니다. 특별히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자녀가 부와 지위와 같은 것입니다.
조선왕조(1392년~1910년)는 태조(이성계)가 건국하여, 순종 때 일본제국에 합병될 때 까지, 27명의 왕이 518년 동안 왕노릇 했습니다.
평균 재위기간이 18년이 된었고, 길게는 영조 52년 인종은 9개월만에 독살 당했습니다.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이룬 시대는 세종대왕과 영조 대왕 때의 일입니다. 왕권이 강할 때에는 태종과 세조 때이고,
왕들은 평균 4.4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왕자는 4.7명, 공주는 4명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한명도 없던 왕도 있었습니다. 단종과 인종과 경종과 순종 왕이였습니다.
영조는 훌륭한 왕이였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무수리로 왕궁에 입궐하여 숙종의 눈에 띠어서 후궁이 되고 영조를 낳고 장희빈과 갈등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평생 입었던 누비옷을 평생입지 않고 무수리들을 돌보아 주면서 살았다고합니다. 이처럼 왕의 부인이지만 왕자가 없으면 왕으로 부터나 신하로 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됩니다.
한나 역시 자신이 자녀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 브닌나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즐겁고, 하나님의 내 뿔을 높여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면 마음이 즐겁고 여러분들의 머리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구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 때에 어떤 어려운 일에서 건짐을 받는 것도 구원이라고합니다. 한나는 이러한 자녀의 문제를 해결받은 것도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교회 옥상에 호박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호박의 꽃이 활짝 피었지만 호박 입이 열지 않고 벌들이 들어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들의 입을 넓게 열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응답의 문이 활짝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시고, 주님은 반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였을 때에 광야에서 물을 얻지 못하고 갈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반석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물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반석이 예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주님의 설교내용중에서 내 말씀을 듣고 모래위에 세운 집이 있고 반석위에 세운 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비가 오고 물나고 바람이 부딛칠 때에 넘어짐이 심한 곳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이고, 넘어지지 않는 집은 반석위에 세운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시편에서는 반석은 흔들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62편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세상에 어떤 것도 흔들립니다. 그렇게 강력한 나라도 하나님이 버리시면 다 넘어집니다. 바벨론이, 애굽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안전한 산성이요 요세시요, 반석입니다.
여러분 종이는 쉽게 찢어집니다. 그러나 그 종이가 반위에 안전한 곳에 붙어있으면 찢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쉽게 찢어지고 없어지고 말 인생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한나는 오직 의지할 분으니 하나님만인 것을 알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엘리 제사장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셨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심정을 통했다는 교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재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응답의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가 마음이 통할 때에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주인과 애정과 교감이 있어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애정과 교감이 없을 때에 주인을 물고 주인에게 해를 가하게 됩니다.
훌륭한 목회자들은 젊은 시절에 하나같이 고생하고 훈련을 잘 받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때로 훌륭한 목사님이 타락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기도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젊은 시절에 하나님이 연단을 주시지만 인간이 무엇을 조금 가졌다고 생각하면 실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7절에 낮추시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높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낮추는 것입니다. 낮추는 삶입니다. 예수님도 먼저 낮아지시고 높아지셨습니다.
요셉도 웅덩이에 떨어저 노예살이 종살이부터 시작하여 높여주셨습니다. 다윗도 사울왕의 칼을 피하여 이곳 저곳에서 숨고 적국인 아기스왕에게까지 도망하여 미친 척하였습니다.
인생에 한번 당하는 패배, 상처, 질병, 내려막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내려막길에서 오르막길로 올리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르막 길로 올리는 곳이 교회요,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증
1960년대 후반에 은퇴한 미국의 종군기자 가정에 어느 한국인 아이가 입양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동란이 끝날 무렵 이 종군기자의 양아들이 되어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는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자기만 집안에서 유독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지녔고 피부도 양부모는 물론 형제들과도 다른 노란색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빗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자 혼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술도 자주 마시며 불량배와 어울리고 패싸움도 자주 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품행이 방정하고 모든 것에 모범이 될 정도의 아이였지만 자신의 출생에 관한 그리고 신상에 관한 호기심과 괴로움은 결국 그를 방황의 길로 빠지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양부모 특히 양아버지는 전혀 꾸중을 하지 않고 사랑으로 지켜보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지극히 자애스럽게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양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나는 이렇게 피부색도 다르고 머리색도 다르나요? 왜 저는 무책임하고 방탕한 남녀의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버려져서 이 머나먼 미국까지 와서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따돌림을 받으며 살게 되었는지 정말 원망스러워요 정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아버지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란다 너는 너무나도 훌륭한 어머니의 아들이다 너의 어머니는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 훌륭한 분이란다 미국인 양아버지가 그날 밤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동란 당시 종군 기자로 근무하던 양아버지는 1.4후퇴 때 지프를 타고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후퇴하던 중이었다 합니다. 그 날은 깊은 밤이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 몹시 추웠으나 내린 눈이 쌓여있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고 양아버지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런 순간 갑자기 옆에 타고 있던 운전병이 무엇에 놀란 듯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를 세웠습니다 ” 어! 저게 뭐지? 길가에는 거의 옷을 벗은 여인이 쓰러져 있었는데 운전병이 확인해본 결과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양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그녀를 보니 그 여인은 맨 가슴에 벗은 옷 뭉치를 두 손으로 안고 온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아 마치 소중한 보물을 뺏길까 봐 몸부림치는듯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 옷 뭉치 속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쌓여 있었 간신히 숨을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양아버지는 모성애에 너무 감동하여 여인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 그 아이를 양자로 삼아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종군 기자의 양아들이 되어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며 방황과 괴로움에 몸을 떨었던 청년 자신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다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이후 아이는 달라져 열심히 공부하고 남을 위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후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힘들다는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결국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되어 군의관으로 한국 근무를 자원하여 한국으로 왔습니다 추운 겨울날 한국에 도착한 예전의 그 아이는 양 아버지에게 들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어머님의 무덤 앞에 옷을 다 벗고 밤새도록 꿇어앉아 흐느꼈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덮쳐 왔지만 그는 꼼짝도 않은 채 목숨을 버리며 자신을 살리려 했던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어머니 그 날밤은 이보다 더 추우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