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장 1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4월 26일

벧후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1.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사도 베드로는 나이가 들면서 신앙의 연도가 깊어지고 성숙해 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전후서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실루아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 시몬 베드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노예, 하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종이기 보다는 가장 수제자요, 초대교회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였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를 인근에서 보았던 사도입니다. 변화산에서 그리고 풍랑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난 뒤에도 베드로에게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사명을 맡기신 분입니다

사도바울이 삶의 지혜를 통하여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전서 5:5-7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벼가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지혜는 머리를 숙여 기도하고 겸손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금만 교만하면 바로 사탄과 마귀가 되는 모습을 볼 수있습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면 알 수록 은혜와 평강이 넘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신앙의 겉멋만 들을 때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도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이 였지만 예수님을 알면 알 수록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평안은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고 말하기를 “빨리 일어서라” 하니 쇠사슬이 그의 두 손목에서 풀려지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리고 “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 “겉옷을 두르고, 나를 따라오너라” 감방에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풍랑 가운데 주무시는 것은 마음속에 은혜와 평강이 넘처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순교할 때에 두럽지만 죽어도 살게 된다면 마음에 은혜와 평강이 넘처나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미국의 경우 로얄층은 5층에서 7층까지이고 높이 올라갈 수록 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파트의 경우 고층이나 대단지 아파트가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고층으로 올라 갈수록 모기나 유충들이 없고 소음이 들리지 않아서 고층을 선호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1층에서 3층이 좋습니다.

1층은 믿음의 층입니다.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합니다.

유년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천지창조 보다 교과서를 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의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교과서보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가르처야합니다.

교회를 지을 때에 생각납니다. 교회의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지층의 콘크리트와 철근을 얼마나 많이 넣는지 모릅니다. 높은 신앙의 단계, 신의 성품의 단계에 올라갈 수록 믿음이 큰 믿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스로보니게 여인에게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큰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칭찬받은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할 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믿음은 건물의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 위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축복합니다. 치료도 복도 믿음의 고백으로 부터 나옵니다.

2층은 덕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오직 믿음도 있어야하지만 덕있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여러분 왜 어린 아이들이나 어린 고양이가 귀여운 줄 아십니까? 살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뼈지만, 덕은 살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어질고 행동이 바르며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성품을 덕 있다고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나가서 덕있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이지만, 덕은 행동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덕이 없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품과 상처를 줍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덕 있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덕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여 자비를 베푸는 마음입니다. 전쟁에 싸우는 용사는 용장이 있지만 전쟁과 전쟁 중에서 덕장이 필요합니다. 우리 지방회 목사님 중에 김덕장 목사님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개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영어로 덕을 Good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덕은 참으로 좋은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삼층은 지식입니다.

지식에는 여러종류의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1+1=2와 같은 세상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지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여 쌓아가는 지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쌓아지면 오병이어 기적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고기 2마리 보리떡 다섯개가 지식적으로 한 사람만 먹을 수 있지만 오천명을 먹을 수있는 것이 지식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은 공부를 잘하므로 좋은 의사가 되고, 좋은 법관이 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지식만으로 세상을 살 수없습니다. 좋은 의사도 많이 있지만 악한 의사도 있습니다. 좋은 법관, 검사, 변호사도 있지만 악한 변호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신앙의 지식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아름다운 나무로 성장합니다. 어린 나무 일수록 사람이 밟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그러나 큰 나무가 되면 아무리 사람이 밟아도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무로 인하여 여러가지 이득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려면 영어를 알아들어야합니다. 영어를 알고 가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잘 모르는 분이 미국에 가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목사님들과 함께 모임이 있고 사모님은 늦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푼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호텔 종업원에게 꼬끼요 했더니 치킨을 갔다 주었다고합니다. 요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층은 절제입니다.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사람에게 하나님이 지식을 주셨는데 그것을 절제하면서 사용해야합니다.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이 두려운 것은 그들이 핵무기를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사에게 칼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이지만 강도에게 칼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입니다. 이처럼 칼은 잘 사용하는 것, 절제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24장 25절에 사도 바울이 벨릭스 앞에서 기독교를 설명할 때에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말씀할 때에 벨릭스가 두려운 마음이 나서 떨면서 다음 기회에 하자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번 결심하지만 여전히 술먹고, 여전히 금연하지 못하고 다시 술먹고 담배피는 행동을 합니다. 절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잠언 26장 32절『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고 싸우게 만들고 살인하게 만드는 요소가 절제하지 못함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효상효(以孝喪孝)라고 말이 있습니다. 효도로써 효도를 상한다는 말입니다. 효성이 지극한 나머지 어버이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병이 나거나 죽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고향집에 효도하러 갔다가 대판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혈기를 절제해야합니다.

오층은 인내입니다.

집안을 안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인내입니다. 참고 견대는 것입니다. 잠언 24장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집의 설계도는 지혜입니다. 명철로 견고하게 되고 방들은 지식을 체워지는데 그 지식을 체우기까지 인내해야합니다.

안전한 집은 흔들림에 잘 견뎌야합니다. 지진으로 흔들림, 태풍과 바람으로 흔들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바로 견고함입니다. 1991년 필리핀에 지진을 격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무너졌는데 신학교 건물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미국 선교사님들이 건물을 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엄청 철근을 많이 넣고 내진설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비행기와 차량을 테스트 합니다. 중국 차량은 1년도 안되어서 고장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제가 10년을 넘게 타도 고장이 나지 않습니다. 이 만큼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도 하나님이 인내력을 테스트 합니다. 야곱은 20년 세월을 통과하여 자신의 부를 얻고 자식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40년의 인내력을 시험받았습니다. 갈렙은 85세가 되어도 믿음이 흔들림 없어서 여부스 족속의 산지를 얻었습니다.

6층은 경건의 층입니다.

경건은 새벽기도회 나오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모릅니다. 경건하기 위하여 새벽기도회 나옵니다. 경건하기 위하여 새벽에 오랫동안 기도로 연단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경건이라는 단어 어울리지 않습니다.

경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곁에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으로 눈으로 읽지 않고 마음으로 읽어야합니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읽어야합니다. 소설책 읽듯이 읽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읽어야 합니다. 작은 목표를 세워놓고 읽어야합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하루에 한장이라도 읽어야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읽어야합니다. 저는 저녁에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장모님과 지동현권사님이 예배들이러 오는 청년들에게 당부한 기억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 때에는 여성들이 저렇게 다니면 아주 혼났어요 경건하지 못하게 살을 내 놓고 배를 내놓고 다니면 음난 마귀가 틈타요 하면서 말씀하신 적이 기억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전쟁으로 멸망당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 당하는 이유도 우상과 음난입니다. 로마도 성적인 문난으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원로원의 술과 포도주로 인하여 경건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7층은 형제 우애입니다.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가 다르긴 하지만 영적으로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Brother and sister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이러한 형제와 자매들이 연합하여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형제, 자매에 우애가 없으면 혈관이 막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피가 돌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혈관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콜레스톨 약을 먹고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가난하기 때문에 부모님 방과 자녀들 방이 딱 둘이였습니다. 우리 오남매는 한 이불 속에서 살았습니다. 추운 겨울날 서로 이불을 덮으로 잡아당기다가 찢어지기도하고 서로 음식을 더 먹기 위하여 싸우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육선이 가득한데도 모이지 않고 서로 자신의 삶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가난한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서로 우애있게 살아야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들을 나 몰라하며 무관심하거나 남에게 미루면 교회에 여러가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8층은 사랑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사랑입니다.

35세 된 목사님이 사냥을 갔다가 멀리 노루 한 마리를 보고 조준하여 쐈는데 달려가 보니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 총에 죽은 것입니다. 법의 심판도 받아야 하지만,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지고 목사직을 사임해야만 하는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내 목회는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와 언론이 들끓었습니다. 교인들은 사람을 죽인 목사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느냐,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나가라고 난리가 났고. 교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직들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 죽인 젊은 목사님을 어느 교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한번 용서합시다!” 이 한 사람의 용서의 제안을 온 교인들이 받아들이고, 믿어주고, 용서를 베풀어서 그분은 그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게 되었고, 그 뒤로 목회 철학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설교할 때마다, 교회는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미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목사님은 미국 침례교 총회장, 세계 침례교 총재를 지냈고, 54권의 저서를 쓴 크리스웰 목사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빚진 자)를 사(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베드로전서 4장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준 셈, 야벳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함은 저주를 받아 그의 후손들이 흑인의 천대를 받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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