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41절 주님과 동행하는 삶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4월 21일

  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1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이시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세미하게 흐르는 복음은 바로 곳곳에서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예수님이 신약에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우리의 산 소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심을 알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임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위대함과 창조주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셋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함은 어떤 책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그 언약의 말씀이 오늘 이시간에 우리 시대에 말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신앙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속대로 이루워질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제가 우리 안수집사님과 청년들과 필리핀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윤정열목사님에게 센페르난도를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필리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센페르난도로 가기 전날 벨릭스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와서 때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와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제정적으로 어려우니 오셔서서 예배드리고 헌금좀 해달라는 속셈입니다. 윤정열목사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성도님들이 철야를 하든지 말든지 먼저 약속되어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센페르난도로 미리 돈도 보내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약속은 구두로 해도 지켜야하는데 하나님은 문서로 친히 약속의 말씀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이루워주시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 당시의 사건과 지금 우리의 상황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바로 성령입니다. 2000년전의 사건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령님이 없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님이 계심으로 오늘날도 성경의 사건들이 우리 삶에 기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님의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설교할고 있을 때도 성령의 충만함을 느낄 때에 아우라가 느껴지고, 성령의 Feeling을 느껴집니다. 성령님 주신는 감동이 밀려올 때에는 눈물이 나고 머리가 무엇인가? 큰 감동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지만 신앙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스토리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또 마리아는 예수님이 요셉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왜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관례 (형식)를 벗어버야합니다.

  1.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관계를 따른 신앙은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신앙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예배 드리러 오는데 형식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교회 오지 않으면 무엇인가 허전하고, 그동안 믿었는데 오늘도 믿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에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을 가지고 와야합니다.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억지로 교회오거나, 억지로 헌금하고, 억지로 신앙생활하거나, 억지로 남 보이기 위하여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바디메오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것 처럼 우리의 형식적인 신앙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앞에 나와야합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찬송하거나,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척 하면 예수님을 마음속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없으면 근심하게 됩니다.

  1.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 마음에 근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예수님 없이 교회 오거나 신앙생활하면 슬픔과 근심이 있지만, 예수님이 있으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무척이나 바쁩니다. 미술학원에 가야하고, 태권도 도장에도 가야하고, 웅변학원에 가야하고 수학학원, 영어학원 가야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예배하는 것은 뒷 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너무 너무 불쌍합니다. 고등학교 야자를 아십니까? 아침 일찍 등교하여, 밤 10시까지 공부해야합니다. 그것도 매일입니다. 혹시 제수라도 하면 어떻습니까? 공부의 지옥입니다.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우리는 세상의 형편에 맞추어 살다보니 예배는 뒷전입니다. 군생활을 하고 3년이 지나고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직장생활을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일에 너무 바쁘면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순위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는 일 예배드리러 주일날 주님 앞에 나오는 일입니다. (자갈, 작은 돌, 모래, 물, 철학교수의 예화)

둘째로 행사주의 매여있는 신앙

  1.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예배하는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너무 절기에 매여서 신앙생활하는 것 같습니다. 사순절, 부활절, 맥추절, 여름성경학교,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행사, 등으로 일년의 행사를 치룹니다.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철야, 모든 것이 행사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가 너무 좋아서 한번 더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형성되어야지 억지로 주일 2부를 드리거나 강요로 예배를 드리면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 모든 행사를 하는 이유는 좀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좋아서 더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를 잃어버리고 걷는 길은 헛된 수고의 길이었습니다. 열심히 가고 가도 다시 와야 합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사업은 하면 할수록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우리 인생의 삶은 보장이 없는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가정은 진정한 행복이 없는 불행한 삶만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 남편이 믿는 예수님, 우리 아내가 믿는 예수님 나는 절대로 믿지 않겠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더 정직하기 못하고 신뢰할 수 없습니다. 정말 생활이 개차반입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대한 기록과 고대 로마 시대에서 검은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먹었다는 기록. 다른 속설은 유대교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기원전 1세기에 힐렐이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사원이 존재했을 때 힐렐이 한 일은 이것이다. 그는 어린 양고기와 무교병, 씁쓸한 허브를 하나로 싸서 먹었다.” 오늘날 같은 형태의 샌드위치가 개발 된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영국 샌드위치 가문의 4대 백작인 존 몬태규 백작(1718년∼1792년)가 하인들에게 명하여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이 음식을 개발한 것이다. 빵에 채소, 고기를 끼워넣어 먹었다. 기차 안이나 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등 그 간편함 때문에 먹는 사람들이 많아져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라 부르게 되었다. 또다른 속설은 존 몬태규 백작(1718년∼1792년)의 이름에서 음식명이 유래한 것은 사실은 트럼프 도박을 식사할 시간까지 아끼면서 즐겨했는데 트럼프를 하면서 먹을 수 있는 식사로 샌드위치를 생각해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는 샌드위치 백작이 해군 제독 당시 무능과 부패로 악명이 높았던 그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이라는 주장이 있다. 시간을 아껴가면서 세상의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는데 우리는 시간을 아껴가면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당구치면서 짜장면 먹기)

세 번째, 동행하는 줄 착각하는 신앙입니다.

  1.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들의 뒤로 졸졸 따라오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동행 중에 있는 줄 알았으나, 예수가 없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요셉과 마리아의 착각은 모든 행사가 무사히 잘 끝났다고 생각하고 안도하였기 때문에 착각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착각은 아이가 부모를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올 때도 따라왔으니 갈 때도 따라오겠지 하는 착각입니다.

셋째로, 세상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고 주변의 생각 때문에 착각할 수 있습니다.

설이나 추석에 모든 성도들이 예배의 관심보다는 오직 명절날에 관심이 있어 교회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음식을 만드는 분들은 주일 날 음식을 무엇을 만들까하는 생각으로 예배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처럼 하지 말고 마리아처럼 예배가 중요하니 예배 먼저의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셋째, 세상의 즐거움이 있으면 예배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우면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스포츠, 등산, 사교모임, TV, 가족의 문제 때문에 예배는 뒷전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예수님 없이 설교합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니 예수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하다보니 예수가 없는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착각이 문제입니다. 예수가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아는 착각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가 우리를 따라오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곳이 어디입니까?그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네번째,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곳 성전

  1.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우리가 성전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성전입니다. 예수의 부모들이 예수를 찾아 헤매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야단을 칩니다. 그 소리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혼난 일이 있으면, 또는 집에 늦게 들어가면, 성전에 들려서 기도하고 온다면 아버지가 혼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신앙적으로 존경하는 분입니다.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들고 백인주의자들로부터 위험을 당할 때에는 밤을 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당시 많은 교계 목사님들이 백악관에 찾아와서 조찬 기도회를 하고 돌아갈 때면 링컨 대통령을 위로하는 말로 “각하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각하 편에 있으니까요”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링컨 대통령은 정색을 하면서 “나는 하나님이 내 편에 있는 것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 편에 있기를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결론 : 성도님은 예수님이 여러분들 마음에 계십니까?

미국 LA 은혜한인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부흥회를 하고 나면 강사비를 줍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여겼지만, 강사비를 왜 안 주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답니다.

당시 그분은 뉴욕을 들러서 다시 LA에 왔다가 귀국하는 일정이었답니다. 목사님은 그냥 뉴욕으로 왔습니다.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31번가에서 내려 혼자 짐을 들고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때 흑인 5명 정도가 목사님을 둘러싸더니 칼을 들이대며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할 수 없이 다 내놓았습니다. 지갑은 물론 패스포트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돈도 다 털리고 말았습니다. 영사관에 가서 임시 패스포트를 만들어 가지고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아는 이에게 좀 빌려서 비행기 표까지 다시 구입해 가지고 다시 LA로 왔답니다.

LA 은혜한인교회 김광신 목사님이 재정부장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사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너무나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재정부장님이 강사비를 직접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나에게 드리게 하고 싶어서 내 책상 위에 강사비를 놓아두었습니다. 나는 드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분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알았습니다. 만일 그때 강사비를 받았더라면 아마 그 돈까지도 다 빼앗겼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유익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총회신문, 권동준목사님 설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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